서울 은평구의 전원주택에 사는 채모(44)씨는 지난달 21일 화단에서 말벌집을 발견했다. 그가 신고 전화를 한 곳은 119가 아니라 한 말벌집 제거 업체였다. 채씨는 이 업체로부터 3만원의 사례금과 함께 약간의 말벌집을 받았다. 채씨는 "살아 있는 말벌과 말벌집으로 술을 담그면 피로 회복과 고혈압에 탁월하다는 소문을 듣고 업체에 채취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올여름 무더위로 말벌 출몰이 잦아지면서 '말벌주(酒)'를 담그기 위해 사설 업체에 말벌집 채취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벌은 기온이 본격적으로 상승하는 7월부터 번식력이 왕성해진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 7월까지 벌떼가 출몰했다는 119 신고 3만6648건 가운데 76%인 2만7933건이 7~9월에 집중됐다. 경기 용인에서 말벌집 제거 업체를 운영하는 윤모(55)씨는 "올해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말벌집 제보가 작년에 비해 1.5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말벌주는 유충이 들어 있는 말벌집과 살아 있는 말벌 30마리가량을 담금주 1.5L에 넣어 6개월 정도 숙성시켜 만든다. 말벌집 수거 업체들은 말벌주가 기관지 치료 등에 효험이 있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 등산로 입구에 '말벌집 제보받습니다. 사례금 있음'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있다. 인터넷 광고도 한다. 이 업체들이 만든 말벌주의 가격은 말벌집의 크기와 상태, 말벌 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비싼 것은 1L에 6만원이 넘는다.
최근엔 전국 소방서에 "벌술을 담가 먹고 싶으니 살충제를 쓰지 말고 벌집을 떼어달라"는 민원도 접수된다. 서울 은평소방서 관계자는 "벌을 확실히 죽이지 않으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민원이 들어오면 정중히 거절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말벌주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말벌은 일반 벌에 비해 공격성과 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수말벌의 경우 독의 양이 일반 벌의 200배에 달한다. 양웅모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말벌집을 뜻하는 '노봉방'은 염증이나 치통에 약재(藥材)로 쓰이긴 하지만, 독성이 강한 말벌주를 마실 경우 호흡 곤란과 급성 쇼크가 일어날 수 있다"면서 "전문가의 처방 없이 말벌주를 마시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