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골동품점. 목(木)가구를 구경하던 40대 미국인 남성이 서랍장 안에서 조선 불화(佛畵) 한 점을 발견했다. 그림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찢기고 구겨져 있었다. 2주 후, 그가 다시 골동품점을 찾았을 때 서랍장은 이미 팔렸고 그림만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불화를 구매한 그는 돈을 들여 수리하고 표구까지 마쳤다. 1960~1980년대까지 약 30년 동안 서울에서 화가·조각가·미술 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마티엘리(Mattielli·86)씨다. 그는 1985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림을 잘 보관해오다 2014년 오리건주 포틀랜드박물관에 그림을 기탁했다.
1725년 제작된 이 불화가 내년 상반기 국내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과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미국 포틀랜드박물관에 기탁된 '송광사 오불도'를 현 소유자인 미국인 로버트 마티엘리씨의 뜻에 따라 돌려받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사연은 이렇다. 문화재청 소속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4년 7월 미국 포틀랜드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 현황을 조사했고 이듬해 5월 조사 자료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박물관에 기탁된 '오불도'가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도난된 그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화재청은 포틀랜드박물관에 이를 알렸고 마티엘리씨 부부도 그림이 도난 불화란 것을 알고 송광사로 돌려보내는 데 흔쾌히 동의했다.
오불도는 송광사 불조전에 있는 '오십삼불도'(1725년 제작) 중의 하나다. 오십삼불도는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을 근본 경전으로 조성한 불화로 송광사를 비롯한 일부 사찰에만 전한다. '칠불도'(1폭), '구불도'(2폭), '십삼불도'(2폭), '오불도'(2폭) 등 모두 7폭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오불도' 2폭이 어느 시점엔가 도난돼 현재 송광사에는 5폭만 남아 있다. '오불도' 2폭은 1999년 대한불교조계종이 발간한 '불교 문화재 도난 백서'에 수록돼 있다.
이번에 돌아오는 오불도는 불조전 왼쪽 출입문 벽에 있던 그림이고, 오른쪽 출입문에 있던 나머지 오불도 1폭은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었던 송광사 오불도를 구매해 표구까지 마친 마티엘리씨가 없었다면 이 그림은 사라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포틀랜드박물관은 3일부터 12월 4일까지 오불도를 특별 전시하고 12월 3일에는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대한불교조계종과 송광사는 내년 상반기에 열릴 오불도 봉안식에 마티엘리 부부와 포틀랜드박물관 관계자를 초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