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6일 오후 연세대 근처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원룸촌 골목. 하숙집과 원룸이 밀집한 이곳에 6~7평 남짓한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10여곳 몰려 있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이 골목 부동산에 드나든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중개업소의 최현옥(60) 대표는 "예년에는 방학 때 자취방을 찾는 대학생들이 몰려 하루에 적어도 한두 건은 계약했는데 올해 여름방학에는 통 대학생 손님이 없다"며 "방학이 대학가(街) 부동산의 대목이란 것은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 주변 부동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봉천동의 대신공인중개사 양영욱 대표는 "10년 넘게 서울대생들을 받고 있는데 요즘은 손님이 크게 줄어 타격이 크다"고 했다. 서울대생들이 많이 사는 관악구의 대학동과 서림동에 있던 업체들은 워낙 장사가 안돼 아예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고 한다.
새 학기를 앞두고 대학생들로 붐볐던 대학가 부동산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 부동산 중개업소를 거치지 않고 학내(學內)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직거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월세·보증금 등 자취방 정보와 사진을 올려놓은 뒤 중개인 없이 직접 만나서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이다. 올해 창업한 서울대생 최규민(24)씨는 서울 관악구청 인근 자취방을 8월 초에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에 내놓았다. 회사 근처로 이사 가기 위해 아직 계약 기간이 남은 방에 새로 들어올 사람을 찾은 것이다. 최씨는 "학교 커뮤니티에서 직거래하면 같은 학교 학생이라 안심이 되고, 복비(부동산 중개 수수료)도 아끼게 돼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말했다. 이번 학기 미국으로 교환 학생 연수를 가는 서강대 재학생 이모(23)씨도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에 '6개월만 방을 내놓는다'는 글을 올려 세입자를 구했다.
개학을 앞둔 지난 8월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부동산 거래 관련 글이 300여개 올라왔다. 이 커뮤니티에는 학생들끼리 직접 자취방이나 하숙집을 거래할 수 있는 게시판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화여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자취방을 직거래하는 게시물이 같은 기간 200여개 올라왔다.
학생들은 "학내 직거래를 하면 먼저 살아본 경험자인 같은 학교 학생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중개 수수료도 아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원룸을 부동산 업소를 통해 계약하면 최대 20만원대의 중개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별도의 수입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이런 중개료도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거래 정보가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사기당할 위험이 적은 것도 학내 직거래의 장점이다. 이렇다 보니 대학가의 원룸이나 하숙집 주인들도 부동산에 빈방을 내놓지 않고 학생들을 통해 학내 커뮤니티에 홍보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들도 대학생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추첨을 통해 1년치 월세를 지원해주거나 자사(自社) 홍보용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장 많은 댓글을 남긴 대학교 학과에 개강맞이 파티 비용 수백만원을 지원해주는 식이다.
서울 서대문구청에 따르면 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이 많이 사는 신촌동과 연희동의 부동산 업체는 2011년 217곳에서 지난해 182곳으로, 올해는 151곳으로 줄었다. 고려대와 성신여대 등이 있는 성북구 안암동·보문동·종암동의 부동산 업체도 2011년 173곳에서 현재 129곳으로 줄었다. 성북구청 지적과 관계자는 "성북구 전체의 부동산 업체 수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유독 대학가 부동산 업체만 줄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