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마비로 쓰러진 택시 기사를 버려두고 떠나 끝내 숨지도록 방치한 승객들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사법 당국과 전문가들은 이들을 처벌할 방도가 없다고 말한다.
지난 25일 오전 대전에서 택시를 몰던 택시 기사 이모(62)씨는 차량 운행 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졌지만 당시 택시에 탑승했던 승객들은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고자 별다른 조치 없이 자리를 떠났다. 응급 조치나 신고조차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차량 운전석에 꽂힌 자동차 키를 빼서 트렁크에 있던 골프 가방을 꺼내 들고 골프 여행을 위한 비행기에 탄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다른 시민들의 신고로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하지만 이런 매정한 승객들을 처벌할 방법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는 경우에도 처벌할 수 없는 법률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적용되는 법 조항은 ‘응급의료법’이 전부이다. 응급의료법 5조 1항은 “누구든지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기관 등에 신고해야 한다”고 정한다. 하지만 이를 위반했을 경우 어떻게 처벌할지는 정하고 있지 않아 신고의무를 위반해도 처벌이 없다.
작년 10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새벽에 출근하다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끝내 숨진 아파트 경비원 박모(69)씨도 비슷한 경우다. CCTV 확인 결과 그가 쓰러진 후 동료 경비원이 발견해 신고할 때까지 6분간 시민 6명과 차량 3대가 지나갔지만 아무도 구호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고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라고 부른다. 성경 속에서 강도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으로 묘사된 선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따온 말이다.
외국의 경우 이탈리아, 네덜란드, 핀란드 등 유럽 국가와 유럽 법에 영향을 받은 남미 국가, 그리고 미국 50개 주 중 31개 주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제화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제기된다. 이 법의 도입을 반대하는 논리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지 말지는 개인의 도덕적인 판단에 맡길 문제”라는 것이다. 또 입법 기술상의 문제, 즉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의무가 부과되는 특수한 상황과 법이 적용되는 사람의 범위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씨의 사례를 계기로 “직접 응급조치를 하지 못하더라도 신고나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최소한의 활동은 의무화 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