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8월 만 11세의 앳된 꼬마가 입단대회를 통과했다. 그때만 해도 이 소년이 세계 바둑 역사를 통째로 바꿔놓을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종반전의 가치 확립이란 패러다임 혁명을 이끌고,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으며, 초인적 진기록들을 잇달아 쌓은 이창호의 출발점이었다. 기사 생활 꼭 30년째를 맞은 41세 불혹(不惑)의 이창호를 지난 주말 광화문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입단 당시 기억나는 장면은?
"전주에 계신 아버지가 올라와 매일 챙겨주셨다. 초반 2연패로 의기소침하자 '넌 어리니까 급할 게 없다. 올해 못 하면 내년에 하면 된다'며 다독여주시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여유를 되찾아 6연승으로 입단했다."
―이 9단을 아직도 신동(神童) 이미지로만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두 부류다. 어떤 분들은 40이 넘었다고 하면 깜짝 놀라고, 또 어떤 분들은 언제적 이창혼데 이렇게 젊으냐고들 하신다."
―돌아보면 만화 같은 쾌거가 연속된 30년이었다.
"철없던 시절 바둑이 너무 재미있어 열중하다 보니…. 요샌 거꾸로 꼬마들에게 치이면서 '예전엔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매번 이겼을까'하는 생각도 한다(웃음)."
―큰형님부터 아버지뻘 되는 상대를 혼내주곤 송구해하는 표정을 짓곤 했었다.
"약간 거북했을 뿐 송구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패하고도 대견하다며 격려해주는 선배들이 많았다. 이제 입장이 바뀌다 보니 옛 선배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줄곧 이기면 공부 따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이긴 판의 8~9할은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었다. 상대 실수나 억지수로 이긴 것 같아 스스로 수긍할 바둑을 두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귀가 후 혼자 꼭 복기했는데 납득 안 되는 부분이 나올 경우 잠을 잘 못 잤다."
―현재 한국 랭킹 26위이고 바둑리그 소속팀에선 신진서(16) 다음 2장을 맡고 있다. 세상 모든 기사가 나이 앞에 굴복해도 이창호만은 60 넘어까지 정상을 지킬 거라고 많은 사람이 확신했었다.
"나라고 특별한 재주가 있을 리 없다(웃음). 다만 조금 빨리 내려온 건 사실이다. 모두 나를 강골로 알고 있지만 10대 시절부터 줄곧 힘들었다. 체력과 건강은 중요한 승부 요소인 만큼 내 능력이 그 정도뿐인 셈이다."
―성적 저하를 기술적으로 분석한다면?
"수읽기 속도가 느려졌다. 시간이 많으면 아직도 다 보는데, 긴 시간 바둑도 초읽기에 이르면 결국 시간이 모자란다. 언젠가부터 종반에 자신감이 사라져 초·중반에 더 공을 들이고 전투로 승부를 서둘게 됐다."
―2010년 53기 국수전 이후 우승 소식이 중단됐다. 이창호의 타이틀 수가 140개로 끝날 것으로 보는 팬은 거의 없다.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우승이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지난 30년간 바둑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30년 전 이창호는 지금의 내게 2점으로 못 이길 것이다. 빈 바둑판 앞에 앉으면 날이 갈수록 더 막막하게 느껴진다. 미래 인간은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에 2점을 접혀야 치수가 맞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9단과 '이창호 키즈' 덕에 한국 바둑이 세계를 지배해왔다. 향후 판도를 어떻게 예상하나.
"당시 때가 무르익어 우수한 후배들이 쏟아졌을 뿐 '이창호 키즈'는 과분하다. 요즘엔 중국과의 저변 경쟁에서 뒤처지는 느낌이어서 걱정스럽다."
―30년간 돈은 얼마쯤 벌었나.
"정확히는 모르는데 100억원에서 약간 넘는 정도? 1년 3억여원 남짓인데, 다른 분야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목표라면?
"그냥 한 판, 한 판 열심히 둘 뿐이다. 우승 횟수나 승수 같은 목표는 세우지 않는다. 때가 되면 제자 양성도 생각해 보겠다. 최근 한국기원에 이사로 들어갔는데 얼마나 힘이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