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주주로부터 78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현정은(61) 현대그룹 회장이 2년 반 만에 1심에서 이겼다. 그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준 대리인은 광장·세종 연합군. 김앤장을 앞세워 적극적인 법정투쟁을 벌인 다국적 승강기업체 쉰들러 홀딩 AG(Schindler Holding AG·이하 쉰들러)는 패소했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민사1부(재판장 유영현)는 현대엘리베이터 2대주주인 쉰들러가 현정은 회장을 포함해 회사 전·현직 경영진 4명을 상대로 “현대 측이 파생금융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손해를 입혔다”며 낸 주주대표 소송에서 이달 24일 현대엘리베이터 손을 들어줬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인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계열사인 현대상선 주가와 연계된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점 ▲현대상선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참여 당시 KDB산업은행에 담보를 제공한 점 ▲현대종합연수원 주식을 취득하고 신주를 인수한 점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소송을 냈다.
쉰들러는 이 같은 행위가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한 임무해태 행위이자 형법상, 업무상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파생상품 계약과 담보제공은 신용공여에 해당하는 법령 위반행위라고도 봤다.
쉰들러는 2013년 11월 29일 현대엘리베이터 감사위원회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감사위가 답하지 않자 쉰들러는 2014년 1월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이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체결한 파생금융상품 계약과 담보체결은 부당하다”며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했다.
주주대표소송은 소액주주 권리다. 상장사의 경우 지분 0.1% 이상 주주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소의 제기를 서면으로 회사 측에 청구해 회사가 답하지 않으면 직접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김앤장 물리친 광장·세종 연합군의 완승
이번 법정분쟁은 김앤장을 앞세운 쉰들러의 완패다. 김앤장은 김수형(60·사법연수원 11기),박철희(43·〃27기), 정진영(55·〃15기), 안기환(47·〃25기), 윤태한(47·〃24기), 최병민(32·〃38기) 변호사가 나섰지만 패소했다. 일부 승소라도 이끌 것이라는 쉰들러의 기대에 못 미쳤다.
재판부는 쉰들러의 주장을 단 한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파생상품계약과 담보제공 행위는 회사의 최대이익에 부합한다는 합리적인 신뢰 하에 신의성실에 따라 경영상 판단을 한 것”이라며 “업무상 배임도, 법령위반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현대종합연수원 관련 사안에 대해선 주주대표소송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각하했다. 이는 당초 감사위에 요구했던 사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하란 법적으로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내리는 결정이다. 다만 재판부는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도 이부분에 대해 예비적으로 “경영 판단이 맞다”고 현대엘리베이터의 손을 들어줬다.
광장과 세종은 이번 사건을 준비하면서 모든 서면을 공유하면서 긴밀하게 대처했다. 광장에서는 대형 기업소송을 비롯한 송무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고원석(56·〃15기), 장성원(54·〃15기), 송평근(50·〃19기), 김범진(45·〃34기) 변호사 4인방에 유원규(62ㆍ〃9기) 대표변호사가 힘을 더해주며 사건을 이끌었다. 박규석(35·〃36기)·박재완(36·〃38기)·현승아(35·〃38기) 변호사도 함께 팀을 꾸렸다.
세종에서는 춘천지법 법원장을 지낸 윤재윤(63·〃11기) 변호사와 오종한(51·〃18기)·이숙미(40·〃34기)·이동건(45·〃29기) 변호사가 주축이 됐다. 정진호(51·〃20기)·김주현(40·〃33기)·김두식(59·〃12기)·이수균(37·〃36기) 변호사도 힘을 더했다.
◆경영판단의 원칙·파생상품 계약의 가치 중립성 강조한 전략
광장과 세종은 파생상품 계약으로 손해가 크게 났더라도 경영상 합리적 결정이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경영 판단의 원칙’과 파생상품계약이 손해도, 이익도 날 수 있는 가치 중립적인 계약인 점을 강조했다.
반면 소송을 제기한 쉰들러를 대리한 김앤장은 파생상품 계약과 담보제공은 회사가 아닌 현정은 회장을 포함한 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봤다. 김앤장은 “파생상품은 계약 상대방에게 이익을 보장하면서 회사에는 손실을 부담하는 불평등한 내용이었으며 담보제공은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제공했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무시하고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광장과 세종의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재판부는 파생상품 계약과 관련해 “2006년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상선 지분합계가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상선 지분을 초과해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상선 경영권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며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현대상선의 경영권과 현대그룹 소속 계열사 지위를 유지하기에 파생상품 계약이 법령을 위반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현정은 회장에 이익이 되는 측면을 부정할 수 없지만, 회사에도 이익이 되는 충분히 검토된 행위”라며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계약체결 경위, 동기, 내용, 이익획득 개연성에 비춰보면 지배주주 이득과 손해를 의도적으로 미친 행위라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담보제공에 대해서는 “담보제공은 현대상선이 회사채 신속인수제 지원을 받기 위한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이라며 “현대상선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지만 회사채 신속인수제 지원을 받아 경영정상화를 이루는 것은 현대엘리베이터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신용공여에 해당하는 법령 위반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파생상품 계약은 현 회장의 신용위험을 부담하는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담보제공과 관련해서는 현대상선에 대한 출자 지분이 개인인 주요주주의 출자지분 합계를 초과해 상법상 금지되는 신용공여행위가 아니다”고 했다.
고원석 광장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손해가 나더라도 경영상 합리적 결정이었다면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경영판단 원칙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확인해 적용한 것”이라며 “현대엘리베이터도 주주 사이의 분쟁에서 벗어나 경영의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어...쉰들러, 즉각 항소 의지 표출
그러나 아직 현대엘리베이터 측이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쉰들러는 1심 패소 판결 직후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법원이 이번에 일부라도 쉰들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이는 재판부가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회사가 손실을 본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쉰들러 입장에서는 일부 승소했다면 향후 다른 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컸다.
쉰들러가 항소할 경우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는데 이 경우 1년은 넘게 걸릴 것으로 법조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대법원까지 갈 경우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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