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학원 건물 화장실에서 초등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수업시간 중간에 화장실에 간다던 아이가 가방끈에 목을 맨 채 발견됐는데, 검찰 부검 결과 자살로 판명이 났다. 초등학생 아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요즘 학생들의 스트레스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봤다.

지난 8월 2일, 서울 노원구의 한 학원 화장실에서 초등학교 6학년 학생 A군이 목을 맨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업 중이던 오후 4시 40분경 화장실에 가겠다면서 교실을 나섰는데, 약 10분 뒤 화장실 문에 가방끈으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이 학원의 원장은 당시 A군이 나간 지 한참이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아 찾아보게 됐고, 화장실 문 하나가 닫혀 있어서 옆 칸 변기에 올라가 봤더니 숨져 있었다고 전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노원경찰서에서 본격적인 수사가 이루어졌다. 사실 이 사건을 두고 처음에는 자살이다, 타살이다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 3월 초 전학을 온 A군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주변 증언도 있었다. 평소 틱장애를 앓고 있던 A군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고, 그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게 막았다면서 학교 내 왕따 문제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A군 가족을 잘 아는 지인은 A군이 가족과 함께하는 골프여행을 앞두고 신나 있었다면서 자살을 믿기 어렵다는 말도 전했다. 가장 충격이 컸을 A군의 가족 역시 평소 밝은 성격의 아이라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타살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A군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이 진행됐다. 결과는 자살이었다. 경찰은 유서가 없었지만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어떤 연유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초등학생들의 스트레스와 자살 충동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게 됐다.

노원구 학원 직접 가보니

A군의 학원이 위치한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를 찾았다. 이곳 일대는 일명 ‘강북 8학군’을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 학구열이 대치동 못지않게 높기로 유명하다. 평일 오후에는 인근 학교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중고등학교 입시학원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학원 등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학원은 큰 상가건물의 6층에 위치해 있었다. 강의실 4개가 갖춰진 제법 큰 규모의 학원이었지만 내부는 조용했다. 사무실에서 만난 학원 원장은 A군과 관련해 그 어떤 취재에도 응할 수 없다고 말하며 기자의 취재 요청을 강하게 거절했다. 제자가 겪은 끔찍한 일의 끝에서 아직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A군의 사고가 있었던 화장실은 학원 강의실과 정반대 방향에 있었다. 대략 70m 거리라 어른 걸음으로도 제법 많이 걸어야 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사고가 있었던 화장실은 공사 중이라는 표시와 함께 다른 층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A군이 다니던 학원은 썰렁했지만 학원가는 북적거렸다. 옆 건물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는 중학생 김모 군은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 무섭고 끔찍하다”면서 “평소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는 말을 했다. 본인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기 싫을 때가 많다며,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중계동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20년이 넘게 살고 있다는 주부 정모 씨는 “학원에서 자살한 학생 때문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 “이 동네 교육열이 높아서 그런가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비단 우리 동네뿐 아니라 목동, 대치동에서도 학업 스트레스로 아이들 사고가 종종 난다고 하더라” 하는 말을 전했다. “학생들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학업 스트레스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A군이 다니던 학원은 조용했고,사고가 일어난 학원은 내부 수리중이였다.

초등학생들의 자살 충동은 어느 정도일까?

A군의 사망 원인은 자살로 판명이 났다. 그러나 비단 A군의 사건이 아니라 해도 우리 사회에서 10대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춘기에 해당하는 중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마저 자살 행렬에 더해지는 분위기라, 아이들의 자살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생 해당 연령 아동은 641명에 달한다. 매년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70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을 저버렸다. 2000년 23명에서 2009년 77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감소세로 돌아섰으며, 2014년에는 31명으로 집계됐다.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사례만 해도 상황은 심각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어하던 초등학생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3층에서 떨어진 케이스도 있고, 학원 수업을 마친 후 편의점에서 친구와 간식까지 사 먹고 인근 주택가 골목으로 사라진 다음 시신으로 발견된 초등학생도 있다. 부모에게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혼이 난 뒤 빌딩 옥상에 가서 투신한 초등학생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우울함을 느낄 때 감정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민정 청소년상담 전문가는 “최근에는 아이들이 자기 욕구를 손쉽게 해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환경에서 자라는 터라, 스트레스 상황을 마주했을 때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성향이 강해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평소에 부모와 아이가 대화를 자주 해서 소통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라고 한다.

한편 아동 자살은 어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염성이 강해 예방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선별검사를 통해 고위험군 추적 관리, 연계 상담 등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조금 더 폭넓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김민정 전문가는 “아동 자살이 위험한 이유는 평소 우울감을 보이지 않거나 밝은 성격을 가진 학생에게서도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고위험군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교육환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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