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의 계관시인’올리버 색스. 국내의 젊은 시인과 작가들이 이들에게 바치는 헌시(獻詩)와 연서(戀書)를 더해 책을 펴내면서 출판의 새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오는 30일은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알려진 영국 작가 올리버 색스(Sacks·1933~2015)의 1주기. 그의 타계 1주기 헌정 특별판으로 나온 '뮤지코필리아'(알마 刊)에는 작가와 번역자의 이름 말고도 두 사람의 이름이 '곱하기'로 연결되어 있다. '김중만 사진×황인찬 헌시'. 함께 나온 색스의 다른 두 책, '편두통'과 '깨어남'도 마찬가지다. 사진작가 김중만이 찍은 사진이 표지로 쓰였고, 시인 박연준과 시인 유진목이 새로 쓴 시는 첫 페이지를 넘기면 등장한다. 역시 '×' 표시가 선명하다.

'곱하기 출판'이 출판계에서도 뚜렷한 흐름이 되고 있다. 다른 장르와의 협업으로 새 가능성을 여는 '컬래버레이션'이 문화계 트렌드가 되면서, 출판에서도 이런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공사는 최근 출간한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Bukowski·1920~1994)의 테마 에세이 3부작에 별책부록 '부코스키와 나'를 포함시켰다. 부코스키를 좋아하는 국내 작가 금정연 박현주 오한기 정지돈이 쓴 일종의 문학적 연서(戀書)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 시점에 출간된 작가 한강의 신작 '흰'에 사진작가 차미혜의 사진이 결합된 것도 같은 사례다.

지난해 8월 30일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는 글 쓰는 의사로 이름난 신경과 전문의. 출세작인 '깨어남'(1973)은 영국 문단이 꼽은 그해 '올해의 책'이 되었고, 미 유력지 뉴욕타임스는 그에게 '의학계의 계관시인' 호칭을 부여했다. 색스에 대한 대중의 존경과 지지가 단지 빼어난 글솜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환자들을 치료하며 겪은 특유의 병례사적(病例史的) 서술을 통해, 그는 휴머니즘의 정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신의 글로 보여줬다.

‘빈민가의 계관시인’찰스 부코스키.

올리버 색스와 국내 시인들의 '곱하기 출판'은 시에 대한 색스의 존경과 국내 시인들의 색스에 대한 편애가 행복하게 만난 경우다. 색스의 자서전 제목인 '온 더 무브(On the Move)'는 그가 존경했던 영국 시인 톰 건(1929~2004)의 동명 시에서 가져왔고, 색스의 책을 사랑했던 국내 시인들은 흔쾌히 그에게 바치는 시를 썼다. '편두통'에 헌시를 쓴 박연준의 시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진리에 앞선 홀림,/이 과도한 사랑// 빛은 흔들리고 부서질 때 아름다움을/ 모든 치유의 열쇠는 사랑임을/ 주워요, 당신의 종이 위에서"

올리버 색스가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면,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빈민가의 계관시인'으로 불린다.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며 잡역부, 철도 노동자, 트럭 운전사의 삶을 살면서도 서른 편이 넘는 시집과 여섯 권의 장편 소설을 썼다. '부코스키×국내 작가'도 이 '빈민가의 계관시인'에 대한 국내 작가들의 사랑과 관심이 씨앗이 된 경우. '부코스키와 나'에 참여한 작가 정지돈은 "부코스키의 세계에는 타인에 대한 강박이 없다. 그는 노력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의 삶을 살고 너 역시 스스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적었다.

(왼쪽부터)황인찬·박연준·유진목 시인.

[김중만 사진작가는 누구?]

부코스키 시리즈를 책임편집한 시공사 황경하씨는 "젊은 작가들이 꽤 자유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가들을 향유하는 걸 보면서, 이들을 통해 전해지는 부코스키는 어딘가 더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해외 작가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곱하기 출판'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올리버 색스 시리즈를 편집한 알마 출판사 성기승 부장은 "책 그 자체만으로는 점점 더 독자에게 호소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면서 "책을 원천으로, 그림 문학 사진 연극 등과 연결시키는 다양한 시도를 펼쳐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