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정인직(가명·28)씨는 지난 6월부터 종로구의 한 경찰 공무원 시험 대비 기숙학원에서 합숙하며 공부하고 있다. 그는 학원에서 정한 일과표에 따라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하루 15시간 넘게 시험공부에 매달린다. 학원생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과가 끝나면 학원과 1분 거리에 떨어진 기숙사에서 잠을 잔다. 정씨는 "다음달 3일 필기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두 달 동안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오직 공부에 올인해왔다"며 "집이 서울이라 통학도 가능하지만, 고3 때 같은 마음가짐으로 준비하려고 일부러 기숙 학원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대입(大入) 재수생 중심이었던 기숙식 사설 학원이 최근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경찰이나 소방 공무원 준비를 위한 기숙학원은 물론, 약학대학·의학전문대학원 시험이나 토익(TOEIC)에 대비하는 기숙학원도 생겼다.
취업 기숙학원은 단순히 원생들에게 숙식(宿食)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스파르타식'으로 하루 24시간 일과를 엄격히 관리한다. 경기 군포시에 있는 한 기숙 토익학원 교실은 아침 8시에 등원(登院)할 때 휴대폰을 제출하고, 밤 11시까지 학원이 정한 스케줄대로 공부한다. 규칙도 엄격하다. 이 학원 내부에는 '음주 적발 시 벌금 10만원과 학원 퇴출' '사랑 고백 시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벌금 10만원과 성공 시 둘 다 퇴출' 같은 벌금 목록이 붙어 있다. 이 학원에서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친해지지 않도록 서로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번 원생' 식으로 번호로 부른다. 여름방학 동안 이 학원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강모(25)씨는 "강의실이나 기숙사 모두 분위기가 군대 내무반 같아서 군대 생활을 다시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 학원 대표는 "기숙 학원을 찾는 학생들은 '토익 900점 이상 득점'이라는 목표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한다"면서 "학원 규율이 엄격하다고 반발하는 원생은 없다"고 말했다.
한 약학대학 입문자격시험 대비 기숙 학원에서는 '수업시간 남녀 합석'도 규제 대상으로 정해 벌점을 매긴다. 벌점을 받으면 '벌칙 조끼'를 착용한 채 1주일 동안 생활하고, 부모에게도 통보된다. 벌점이 상한선을 넘을 경우엔 학원에서 나가야만 한다. 지난달 30일 수강생 이모(25)씨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여학생과 합석했다는 이유로 1주일 동안 '규칙을 잘 지키자'라고 적힌 벌칙 조끼를 입고 생활했다. 이씨는 "취업 준비를 하다가 서류에서만 수십 번 떨어져, 안정적인 직업인 약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면서 "벌칙 조끼를 입고 다녀 부끄럽긴 했지만, 약대 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해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원은 한 달 학원비가 숙박비와 수강료 등을 합쳐 290만원가량이지만, 9월부터 시작하는 과정 입소 신청이 이미 지난 6월 마감됐다.
취업 기숙학원이 성행하는 것은 그만큼 취업난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올해 9급 지방공무원 공채에는 역대 최대 인원이 몰렸다. 시도별로 1만1359명을 뽑는 이번 시험에는 역대 최다인 21만2983명이 지원해 18.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의 경쟁률 16.5대 1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2017학년도 약학대학 자격시험 경쟁률도 9.5대 1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장진영(28)씨는 "2년 넘게 시험에 떨어지면서 자신감은 바닥났다"면서 "해마다 경쟁률이 치솟는 걸 보면서, 9월부터 기숙 학원에 들어가서 공부에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