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리우올림픽 육상 남자 계주 400m를 지켜보던 세계인이 깜짝 놀랐다. 3연속 3관왕에 오른 우사인 볼트보다 은메달 딴 일본에 눈길이 쏠렸다. 일본은 네 명 모두 100m 최고 기록이 10초대밖에 안 되면서 9초대 미국을 제쳤다. 예선에선 볼트가 빠진 자메이카를 앞서 1위를 했다. 볼트만 없었다면 금메달도 넘볼 만했다. 일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화(和) 정신'을 말했다. '개인이 약해도 단합하면 더 큰 힘을 낸다는 정신'이란다. 지금 일본은 온 나라가 축제라고 했다.

▶계주는 철저한 분업이다. 첫 주자는 순발력 뛰어난 선수가 맡는다. 그래야 출발 신호에 빨리 반응한다. 스피드 좋은 둘째는 가속도를 붙인다. 셋째는 곡선 주로에 강한 선수 몫이다. 배짱 두둑한 넷째가 끝까지 밀어붙인다. 일본 육상연맹은 "그림과 조각, 다듬는 역할이 나뉜 전통 예술 우키요에(浮世

)를 닮은 게 육상 계주"라고 했다. 저마다 제 할 일을 철저히 해 불량품을 다음 단계로 넘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바통 존'은 400m 중에 60m를 차지한다. 일본은 스포츠 과학에 합숙 훈련을 더해 '숨은 1초'를 줄였다. 일본이 구사하는 바통 터치 방식은 '언더핸드 패스'다. 받는 주자의 손바닥이 땅을 향했을 때 밑에서 위로 바통을 넣어준다. 거꾸로 위에서 아래로 놓아주는 게 '오버핸드 패스'다. 일본은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거쳐 2001년부터 언더핸드를 고수한다. 선수 간격이 좁아지는 단점이 있지만 연습만 충분하면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된다.

▶일본은 단거리 육상 발전 계획을 세워 2000년대 초 유망주들을 미국에 보냈다. 10초 벽에 가까워진 젊은 선수들을 하나로 버무려 작품을 빚어냈다. 마지막 주자는 자메이카 아버지와 일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케임브리지 아스카였다. 스스로 "두 살 때부터 일본에서 자라 철저히 일본인"이라고 했다. 이들은 경기 전 칼을 꺼내 찌르는 몸짓 '사무라이 퍼포먼스'로 일본인의 자긍심에 불을 질렀다.

▶일본이 열광하는 사이 한국은 한숨만 쉰다. 육상은 스포츠의 기본 중 기본이다. 306개 금메달 가운데 47개가 육상에 걸려 있다. 중국도 투자를 거듭하며 육상 강국으로 커 간다. 한국은 아예 메달 근처에도 못 간다. 예선 탈락한 김국영이 20년 만에 100m 무대에 선 한국 선수였다. 육상계도 체육 당국도 비전이 없으니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도 볼트 구경하다 지나갔다. 스포츠 10대 강국이라 내세우지만 달리기 하나 못하는 허약 체질이 한국 스포츠의 민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