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TV조선 기상캐스터

기록적인 불볕더위에 안녕하시지요? 요즘은 이렇게 안부를 묻곤 합니다. 8월 내내 이어진 폭염에 기상 통보문 내용도 매일 비슷해 '어떻게 새롭게 글을 쓸까' 고민할 무렵에 원로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1970~1990년대 활동하신 김동완 기상통보관께서 TV조선 '뉴스쇼 판'에 출연하셨거든요. 유치원 시절 TV로 보았던 분을 후배로서 뵙다니 신기했어요. 출연자 대기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폭염에 소나기만 반복될 때 원고 쓰는 법을 여쭤봤더니 "시청자들의 안부를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날씨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니 TV 뉴스에서는 따스한 시선과 마음을 담아 안부 인사 한마디를 꼭 넣어보라고 조언해주셨지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방송 감각은 여전하셨어요. 직접 일기도에 기압배치를 그려가며 무더위가 8월 중순까지 계속될 거라는 예보를 전하셨지요. 마지막에는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서우니 이웃집 방문을 삼가세요"라는 구수한 인사로 마무리하셨지요. 한참을 웃었습니다. 며칠째 제 집에 머물고 있던 남동생과 다툰 날이었거든요. 열대야와 높은 불쾌지수에 감정이 폭발했답니다. 선배님께서 줄곧 강조하신 내용은 '공감'이었어요. 국민 캐스터로 인기를 얻으신 이유는 그런 멘트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 아닐까 싶었습니다.

방송 환경이 많이 달라지긴 했어도 결국 제가 해야 할 일은 카메라 속 시청자들과 눈을 맞추는 것이지요. 그날 이후, 날씨 이야기가 들리면 더 귀를 쫑긋 세웁니다. 거리에서 덥다고 투정부리는 말들, 카페에서 소나기에 놀라는 반응들도 귀담아들어요. 어떤 인사를 건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분들께 "다음 주 후반에는 서울 낮기온이 30도로 내려가고 열대야도 물러갈 겁니다"라고 알려드렸더니 한 논설위원께서 "복음(福音) 감사합니다" 하셨어요. 이 여름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느껴졌습니다. 8월의 마지막 주에는 한결 나아질 거예요. 109년 만의 폭염을 견딘 여러분, 정말 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