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한방화장품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엔 많은 이들이 즐겨 쓰지만, 먹는 약재가 '바르는 것'이 되기까지는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새로 열고자 했던 이들의 고된 노력이 있었다. 50년 전, 고려인삼의 미용 성분으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한 이들이 있었다. 한방화장품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랜드, '설화수'의 역사는 50년 한방 과학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해왔다.
◇피부로 먹는 고려인삼의 탄생
고려인삼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왔다. 전통 한의학과 민간의학 분야에서 만병을 다스리는 귀한 약재로 여겨진 건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일찌감치 그 효능을 인정받았다. 중국 송나라와 고려의 교역 당시, 사신이 방문할 때마다 가져간 인삼의 양은 1000근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송나라 이후 들어선 원나라 황제들의 인삼 사랑도 여러 기록을 통해 남아 있다. 고려는 인삼을 통해 동남아시아, 아라비아와도 활발한 무역을 펼쳤다. 조선 선조 8년, 1575년엔 러시아의 한 신부가 중국에서 얻은 인삼을 '신비한 풀'이라 서술하면서 인삼의 효능이 서양에 알려졌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에게 헌상했다는 문헌이 전해지는 등 인삼은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동양의 보물'로 인식됐다.
인삼 중에서도 한반도의 비옥한 토양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자란 고려인삼은 유효 성분인 사포닌 함량이 높아 오늘날 세계적으로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면역력 증진과 피로 개선, 혈액 순환 개선, 항산화 작용 등 인삼 사포닌의 6가지 기능을 인증했다. 이렇듯 인삼은 누구나 인정하는 귀한 약재가 된 지 오래다.
이러한 인삼 성분을 화장품으로 개발하게 된 건 '먹어서 좋은 인삼이라면 피부에도 좋지 않을까?'란 한 청년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주인공은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인 서성환 회장. 고려인삼으로 유명한 개성에서 유년을 보낸 그는 어려서부터 인삼의 뛰어난 가치와 효능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이런 경험은 한국을 대표하는 약재인 인삼을 활용한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인삼이 화장품 원료로 사용된 전례가 없던 당시, 연구원들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하는 지난한 연구에 돌입했다. 그 결과, 1966년 마침내 'ABC 인삼크림'을 세상에 선보였다. 설화수의 모태가 된, 인삼을 원료로 사용한 최초의 한방화장품이었다.
◇첫 인삼 성분 화장품, 세계 시장 주목
첫 성공 이후 인삼 화장품의 연구, 개발은 비약적 발전을 이어갔다. 1972년, 아모레퍼시픽은 인삼의 잎과 꽃에서 사포닌 성분 추출물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엔 이 성분을 화장품 제형에 안정화시키면서 한 단계 효능을 높인 화장품 '진생삼미'를 출시했다. 진생삼미는 국산품이 해외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았던 당시 해외에 진출하며 괄목할 성과를 이뤄냈다. 일본과 미주, 유럽 등지에 수출되며 세계인의 이목을 끈 진생삼미는 이후 '삼미' '삼미진' 등으로 리뉴얼되며 아시아 한방 원료 화장품의 저력을 일찌감치 세계 시장에 알렸다.
1980년대엔 인삼의 부위별 피부 유효 성분에 대한 연구와 함께 사포닌 분리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갔다. 이를 통해 인삼 사포닌 성분을 담을 수 있는 화장품 제형이 다양해졌고 스킨, 로션, 팩, 보디로션 등 다양한 인삼 화장품을 선보이게 됐다. 1990년대 인삼 추출물의 피부 노화 방지 효능에 대한 특허를 획득하는 등 연구를 이어온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대에 들어서며 바이오컨버전 기술™(Bio-conversion technology™)을 탄생시키며 새로운 도약을 맞았다. 바이오컨버전 기술™은 피부에 흡수되기 쉽지 않은 사포닌 성분을 피부 깊숙이 흡수되는 성분으로 전환시키는 독보적인 인삼 가공 기술을 말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첨단 생명공학과 나노 기술이 접목된 바이오컨버전 기술™의 등장으로 인삼에서 극미량의 안티에이징 성분인 '컴파운드 케이'(Compound K)와 미백 성분인 '진세노사이드 에프원'(Ginsenoside F1)의 추출이 가능해졌다"며 "두 성분은 2004년 식약처의 주름 개선과 미백 기능성 성분 인증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2000년 인삼 연구 노하우의 집약체이자 현재 설화수의 대표적 안티에이징 제품인 '자음생크림'을 출시한 아모레퍼시픽은 2004년 컴파운드 케이의 주름 개선 효능을 더한 2세대 자음생크림을 출시하며 한방 안티에이징 화장품 선두 주자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진세노믹스™' 독보적 기술력의 진화
아모레퍼시픽은 세계 최초로 규명한 컴파운드 케이의 효능을 통해 2008년 산업기술 혁신에 앞장선 기업에 주어지는 'iR52 장영실상' 수상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바이오컨버전 기술™ 또한 2009년 대한민국기술대상 금상 수상을 시작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대한민국 10대 신기술 선정, 한국공학한림원 주관 '대한민국 100대 기술과 주역' 선정 등 기술력을 연이어 입증했다.
2009년엔 사포닌 성분이 한층 강화된 진생베리(인삼 열매) 추출물의 효능을 입증하면서 이를 함유해 업그레이드한 3세대 자음생크림을 내놨다. 한층 효능을 높인 3세대 자음생크림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서도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2015년 11월 기준 설화수는 연 매출 1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50년 전 ABC 인삼크림에서 시작된 인삼 연구 기술력의 총체는 설화수의 '진세노믹스™'(Ginsenomics™)로 집약된다. 진세노믹스™란 설화수가 진행하는 인삼에 대한 총체적 연구를 일컫는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설화수는 진세노믹스™를 통해 그간 약용 부위로 주로 쓰인 뿌리뿐만 아니라 줄기, 잎, 열매, 꽃 등 인삼의 모든 부위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진행했다"며 "인삼의 각 부위별 효능을 입증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재배 및 가공법을 개발, 독보적인 노하우를 축적해왔다"고 했다. 이어 "독점 기술로 추출한 고농도 희귀 사포닌을 활용하는 것이 여타 인삼 화장품과 설화수의 차별점"이라며 "인삼을 피부 안티에이징의 정수로 재탄생시킨 진세노믹스™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