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교에 걸쳐 있는 노들섬은 서울의 배꼽이다. '서울의 허리' 한강 한가운데 뚝 떨어져 있다. 요지에 있지만 언제부턴가 이 섬엔 '골칫덩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2006년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설계로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한 계획이 무산됐고, 2010년 '한강 예술섬'(설계자 박승홍) 추진 계획도 과도한 예산(6000억원) 탓에 없던 일이 됐다.
그 기나긴 '표류'에 마침표가 찍혔다. 2018년 상반기 이 섬을 시민 참여형 문화 공간으로 꾸미겠다며 서울시가 실시한 '노들꿈섬 공간·시설 조성 국제현장설계공모' 결과가 지난 6월 발표됐다. 23국 90팀이 경합을 벌인 공모에서 최종 설계자로 당선된 주인공은 '스튜디오 MMK'. "심사위원들 첫 반응이 'MMK가 누구야?'였대요. 외국에선 중요한 공공 프로젝트가 신인 건축가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꽤 있는데 한국에선 드문 사례라고 합니다. 부담이 크지만 잘 해내야죠." 노들섬이 바라보이는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건축가 맹필수(37)·문동환(35)·김지훈(37)씨가 환하게 웃었다. 세 사람 성의 영문 이니셜을 합치면 'MMK'. 공모전에 당선한 주인공들이다.
세 사람은 미국 하버드 GSD(디자인대학원) 재학 시절 만났다. 졸업 후 각자 뉴욕의 퍼킨스 이스트먼, 노먼 포스터, 스위스의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 등 유명 건축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2012년부터 'MMK'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활동해 왔다. 노들섬 프로젝트엔 하버드에서 함께 공부한 박태형(32·조경디자이너)씨도 협업해 참여한다. '따로 또 같이' 일했던 이들이 얼마 전 "노들섬에 '올인'하기 위해" 멀쩡한 회사를 관두고 서울 서촌에 설계 사무소 'MMK+(엠엠케이 플러스)'를 열었다. "500억원 예산을 투입해 서울 시내 12만㎡(축구장 17개 정도 크기)에 펼쳐지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뉴욕에서 원격 조정하며 허투루 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MMK가 제안한 안(案)은 '재구성된 땅, 노들마을'이다. 노들섬 총괄계획가인 서현 한양대 교수는 "한강대교와 노들섬의 높이 차이를 참신하게 푼 것이 결정적 당선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강대교와 노들섬 사이의 3~5m 높이 차가 있는데, 이곳에 작가 작업실, 공연장 등을 만들고 데크와 조경으로 덮어 한강대교와 잇는 것이다. 단(段) 차이 없이 바로 한강대교에서 노들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강대교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놔 동서로 나뉜 섬을 자유롭게 오갈 수도 있다. "기능을 강조하는 '도시'는 많아졌는데 온기 넘치는 '마을'은 사라져 가고 있어요. 일하는 사람과 구경 온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서울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편안한 '마을' 하나 만들자 생각했습니다."
한 번에 완결되는 건축은 아니다. 서울시는 '진화되는 공간'을 원했다. 바둑으로 치면 건축가는 바둑판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하고, 바둑 규칙을 만드는 건 별도의 운영 주체(프로그램 운영 담당) 몫이다. 공모를 통해 '밴드 오브 노들'이란 팀이 운영팀으로 선정됐다. MMK는 "하버드 대학원에선 다학제를 통한 '소통'을 최고의 가치로 가르쳤다. 여러 전공 학생들이 함께 해법 찾는 훈련을 했는데 그때 배운 소통의 기술을 노들섬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큰 건물이 들어서는 건 아니어서 외관상 한눈에 들어오진 않는다. 10년 전 장 누벨의 오페라하우스 안에 비해 지나치게 평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장 누벨 건물은 랜드마크로 한강변 고층 아파트에서 전망으로 즐기기엔 좋은 대상이지만 여러 사람을 위한 건축은 아닙니다. 우리는 섬으로 들어와서 평소에 볼 수 없던 서울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장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보여주는 건축'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얘기. "외국인 스타 건축가에게도 갔다가, 한국 중견 건축가에게도 갔다가 돌고 돌아 저희에게 온 운명 같은 프로젝트입니다. 이 시대 서울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 필요한 장소를 만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