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실트론 투자 실패로 보고펀드가 치러야 할 대가는 컸다. 설상가상으로 1호 펀드를 통해 진행한 MP3 제조업체 아이리버의 투자에서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면서 PEF 업계에서 보고펀드의 입지는 눈에 띄게 축소됐다. 이 때문에 출자약정액 규모가 5000억원에 달했던 1호펀드와 달리, 2호펀드는 3700억원을 조성하는 데 그쳤다.

결국 보고펀드 설립을 주도했던 변양호 대표는 2014년 투자 실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보고펀드는 헤지펀드 운용을 위해 독립한 이재우 대표가 이끄는 보고인베스트먼트와 바이아웃 투자에 계속 주력하는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으로 쪼개졌다. 보고인베스트먼트그룹은 올해 VIG파트너스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보고인베스트먼트도 보고펀드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 ‘작고 가벼운 것’에 집중하라…버거킹 매각 성공, 삼양옵틱스·에누리닷컴도 순항

박병무, 신재하, 이철민, 안성욱 등 VIG파트너스에 남은 주역들은 절치부심 끝에 투자전략을 새롭게 개편하기로 뜻을 모았다. 기술과 시장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하는 투자에서 벗어나, 보다 이해하기 쉽고 직접 경영에 참여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바이아웃 투자에 어울릴만한 작고 가벼운 산업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거액을 투자해 일확천금을 노렸던 LG실트론 투자의 참담한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VIG파트너스의 2호 펀드가 투자한 기업 목록

투자전략이 바뀌면서 1호 펀드와 2호 펀드의 모델 포트폴리오는 큰 차이를 보였다. 1호 펀드를 통해 투자된 업체들은 LG실트론을 포함해 BC카드, 동양생명, 아이리버 등 회사 규모가 큰 제조업체나 유명 금융회사들이었다. 반면 2호 펀드에서는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버거킹과 속옷 제조사인 엠코르셋, 인터넷 가격비교사이트인 에누리닷컴 등에 투자했다.

2호 펀드가 투자한 회사들은 빠른 시간 동안 큰 이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주로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음식료품과 유통 등 소비재 산업들이다. VIG파트너스는 경기에 덜 민감할 뿐 아니라, 고령화와 1인 가구의 빠른 증가로 향후 내수 시장에서 소비재 산업이 안정적인 성장 흐름을 유지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LG실트론 투자 실패 후 흔들리던 회사의 운명을 걸고 선택한 모험은 성공했다. 2012년 11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두산그룹으로부터 버거킹은 매년 실적 개선과 함께 점포 수도 빠르게 확대되면서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VIG파트너스는 올해 2월 홍콩계 PEF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버거킹을 2100억원에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대출 등 레버리지 비용이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인수 3년여만에 펀드 자본의 투자금 대비 100%에 가까운 차익을 올린 것이다.

다른 인수기업들도 순조롭게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VIG파트너스가 2013년 인수한 카메라용 교환렌즈와 CCTV 제조업체 삼양옵틱스는 해외 마케팅 투자 확대로 빠르게 유통망을 늘려가면서 기업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삼양옵틱스의 영업이익률은 VIG파트너스가 인수에 나섰던 2013년 22.4%에서 2014년 28%로 상승했고, 지난해에는 31.3%를 기록했다. 2014년 경영권을 사들인 에누리닷컴의 경우 매출액이 2014년 186억원에서 지난해 215억원으로 15.2% 늘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모두 전년대비 증가했다.

◆ ‘딜 기근’ 심화되는 M&A 시장…해답은 저출산·고령화

현재 국내 M&A 시장에서는 가격에 비해 높은 수익을 거둘 만한 인수 대상이 줄어드는, 이른바 ‘딜 기근’이 계속되면서 많은 PEF들이 추가 투자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PEF들이 잇따라 외식업이나 커피, 음료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인수했지만,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당초 기대했던 수익을 얻거나 뜻대로 매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딜 기근 상황에서 VIG파트너스는 주로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수혜를 얻을 만한 업종을 다음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4월 인수한 안마의자 제조업체 바디프랜드도 고령화 인구 증가로 향후 꾸준히 실적 개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투자를 결정했다.

이철민 부대표는 “과거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시장 성장 가능성을 보고 노비타에 투자했던 것처럼 노령인구의 증가로 안마의자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예상해 바디프랜드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바디프랜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2635억원을 기록, 전년대비 83.3% 늘었고 영업이익은 651억원으로 129.6% 급증했다. 인수 이후 프리미엄급 제품들을 잇따라 출시하는 등 상품 라인업을 다양하게 바꾸면서 올해 매출액은 35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VIG파트너스는 2014년 안마의자를 만드는 바디프랜드에 투자했다. 바디프랜드는 인수 이후 매년 실적 개선에 성공하며 국내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프리미엄급 제품인 ‘파라오S’를 사용하는 모습을 포즈로 잡은 박상현 바디프랜드 대표

올해 5월 VIG파트너스는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주차장관리 업체인 하이파킹을 인수했다. 한국의 주차요금이 글로벌 주요 도시들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준이라는 점에 착안, 인수 후 몇 년간 요금 인상과 신규 사업장 확장을 통해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과거 버거킹 등을 인수한 뒤 신속하게 경영에 참여해 체질 개선에 나섰던 것처럼 VIG파트너스는 하이파킹의 경영진 교체에 나섰다. 16일 VIG파트너스는 11년간 윌슨 파킹 코리아의 부사장으로 일했던 박현규씨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지난 5월 인수 직후에는 조석민 전 일진머티리얼즈 CFO(최고재무책임자)를 영입해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 평가 : 기업금융+컨설턴트의 ‘황금 조합’으로 되찾은 명성, 해외 투자자 유치는 숙제

PEF 업계에서는 VIG파트너스에 대해 기업금융 전문가와 경영컨설턴트 출신들로 짜여진 운용인력들의 구성이 높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면서 바이아웃 투자에서 다른 PEF들에 비해 앞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여전히 VIG파트너스는 박병무, 신재하, 이철민, 안성욱 등 4인 파트너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공동 대표인 박병무, 신재하 대표가 변호사와 기업체 CEO, M&A 전문가 등을 두루 거친 이력을 발판 삼아 경영을 총괄하는 가운데 컨설턴트 출신인 이철민 부대표는 유망 투자대상 선정과 경영전략 도입, 기업가치 개선을 담당한다. 외국계 금융사의 기업금융 업무를 경험했던 안성욱 부대표는 M&A 관련 실무와 투자심사, 구조조정 등에 주력하고 있다.

VIG파트너스는 박병무, 신재하 공동 대표가 회사 경영과 투자 등을 총괄하는 가운데 경영 컨설턴트 출신의 이철민, 기업금융 경력이 있는 안성욱 부대표가 경영진으로 참여하는 4인 파트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철민 부대표, 안성욱 부대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운용역들도 H&Q 아시아퍼시픽, 메릴린치 기업금융부, 보스턴컨설팅그룹,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삭스 등 PEF와 글로벌 투자은행, 컨설팅회사 등에서 일한 경력을 갖추고 있다.

효율적인 인적 구성을 바탕으로 2호 펀드부터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면서 바이아웃 투자의 강자로 꼽히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MBK파트너스나 한앤컴퍼니 등 대형 경쟁 PEF들이 북미나 유럽, 싱가포르 등 해외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에게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넉넉한 ‘실탄’을 쌓아두고 있는 반면 VIG파트너스는 여전히 자금 조달을 주로 국민연금과 공제회 등 국내에 의존하고 있다.

VIG파트너스가 계속 국내 중·소형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에 집중할 경우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 자금으로도 충분히 바이아웃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 매물의 M&A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 게다가 예기치 못한 투자 실패로 트랙레코드가 훼손돼 국내 연기금 등으로부터 신규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어질 경우를 대비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해외의 자금 조성 통로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PEF 업계 관계자는 “지난 6월 국민연금의 위탁 운용사로 선정돼 3호 펀드 조성에 거의 성공했기 때문에 당장 VIG파트너스가 해외에서 신규 자금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MBK, 한앤컴퍼니 등과 어깨를 겨루는 바이아웃 투자 전문 PEF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긴 안목에서 시간을 두고 해외 투자자 유치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