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기엔 동안(童顔)이지만, 피부 관리에 신경 써야겠네요. 금방 늙을 수 있는 피부 유전자가 있습니다. 탈모 위험 인자도 있으니 스트레스 조심하시고요."
지난달 21일 본지 기자가 유전자 검사 D사 업체를 방문해 유전자 검사를 받았더니 업체 측이 이같이 설명했다. 민간 업체를 통해 유전자 검사를 받고 혈압, 당뇨부터 탈모, 피부 상태 정보까지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생명윤리법이 개정돼 지난 6월 30일부터 일부 유전자 검사가 민간에 허용됐기 때문이다. 그전에도 병원을 통해 유전자 검사를 할 수는 있었지만 보다 활발하게 질병 예방과 생활 습관 개선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민간 업체에서도 검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신고를 완료한 민간 업체는 지난달 19일 현재 9곳이다.
◇유전자 검사 직접 체험해 보니
보건복지부는 민간 유전자 업체에서 혈압·피부 노화 등 12개 검사 항목과 관련된 46개 유전자를 직접 검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본지 기자가 이번에 받은 검사 역시 민간에 허용된 대사 관련 7가지 항목(체질량지수·중성지방 농도·콜레스테롤·혈당·혈압·비타민C 농도·카페인 대사)과 피부 관련 5가지 항목(색소침착·탈모·모발 굵기·피부 노화·피부 탄력)이었다. 면봉으로 입안을 수차례 긁어 구강 상피세포를 얻어서 이를 분석하는 방식을 썼다. 서비스 내용에 따라 가격은 다르지만 이 업체에선 10만원 정도 내면 4주 정도 지나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기자의 결과지엔 항목별 위험도가 '일반' '관심' '집중' 3단계로 나뉘어 쓰여 있었다. '피부 노화'와 '색소침착'에서 '집중', '혈압'과 '탈모' 항목에서 '관심' 관리가 필요하다고 나왔다. 여름마다 피부가 금방 새까매진 것도, 작년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위험 진단을 받은 것도 이유가 있던 셈이다. D업체 이종은 대표는 "병에 걸리는 것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50대50 수준으로 작용한다"며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알고 이에 따라 맞춤형 관리를 하면 효율적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생활 속으로 들어온 유전자 검사
그간 국내에서 유전자 검사는 재산상속이나 불륜 등을 가리기 위한 용도라는 부정적 인식이 많았지만, 이 같은 인식도 바뀌는 추세다. 지난 7월 한 화장품 회사는 일주일간 1000명을 대상으로 피부 탄력과 피지 분비 특성 등에 대한 무료 유전자 검사 이벤트를 실시했다. 민간 유전자 검사 업체를 통해서다. 이 행사는 신청자가 몰리면서 3일 만에 조기 마감됐다. 안건영 고운세상 코스메틱 대표(피부과 전문의)는 "기존에는 피부를 단순히 지성이나 건성으로 분류해 화장품을 골랐지만 앞으로는 유전자 검사와 라이프 스타일을 접목해 화장품을 선택하는 'DNA 피부 멘토링'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두피 관리 숍들은 탈모 유전자 검사를 통해 맞춤형 대머리 방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병원을 통해서는 기형아 출산을 걱정하는 산모들 사이에서 기형아 가능성을 검진하는 유전자 검사가 확산하고 있다.
◇"철저한 관리·감독 필요"
그러나 유전자 검사에 대한 오·남용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자칫 질병과 상관없는 성격이나 신장 등에 대해서도 유전자 검사가 이뤄져 오·남용 될 소지가 있다"며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삼성유전체연구소 박웅양 소장은 "유전형 하나만으로 질병 발생 위험을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유전자 검사의 과학적 타당성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민간 유전자 검사 범위를 확대할지, 축소할지를 결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도 민간 업체를 통한 유전자 검사 확대가 국민들의 생활 습관 개선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오·남용을 예방하겠다는 입장이다. 황의수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앞으로 유전자 검사 업체들이 내놓는 검사 결과에 한계는 없는지 충분한 설명은 덧붙이는지 등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