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정보] 펜싱 에페 종목이란?]

국민을 열광케 한 박상영의 리우 드라마는 47초짜리 '단편 스릴러'였다.

세계 랭킹 21위인 박상영은 경기 전 임레 게저(헝가리)와의 승부에 자신이 있었다. 랭킹이 자기보다 18계단 높은 3위였지만 앞선 두 차례 대결에서 모두 이겼다. 또 임레와 같은 왼손잡이인 대표팀 조희제 코치와 강도 높은 특훈을 소화했다.

임레도 박상영을 잘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임레는 빈틈을 철저히 파고들면서 종료 2분 24초 전 박상영을 10-14로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다. 이때 조 코치가 그에게 외쳤다. "끝까지 집중!"

절체절명의 순간, 박상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아. 임레의 평소 성격이 급한 걸 왜 잊고 있었지? 내가 너무 긴장했나?"

에페에서 10―14는 회복 불능에 가깝다. 동시 득점 때 공격을 먼저 한 선수에게만 점수를 주는 사브르, 플뢰레와는 달리 두 선수의 동시 득점이 인정된다.

남은 시간에 관계없이 15점을 먼저 따면 승부는 끝. 박상영이 이길 수 있는 길은 임레의 칼을 모두 피하고 5번 연속 먼저 찌르는 것뿐이었다. 박상영은 "그때부터 임레가 공격해 오면 피한 뒤 역습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했다.

예상대로였다. 임레는 공격을 서둘렀다. 왼손잡이인 임레는 박상영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강하게 검을 내질렀다. 박상영은 임레의 칼을 바깥으로 쳐내 곧바로 그의 오른쪽 어깨를 찔렀다. 바로 방어 후 곧바로 역습을 펼치는 '파라드 리포스트(Parade Riposte·막고 찌르기)' 기술이었다. 박상영은 이 기술로 순식간에 연속 4점을 뽑아냈다. 14―14가 되자 임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상영은 마지막 순간 다시 임레의 허를 찔렀다. 경기 재개 4초 만에 빠른 발을 이용해 앞으로 질주하듯 날아 임레의 머리 부분을 찔렀다. 가장 자신 있고 잘하는 기술, '플래시(Flche)'였다. 15―14. 전광판에 남은 시간은 1분 37초였지만 승부는 그대로 끝났다.

박상영을 펜싱으로 이끈 진주제일중 현희 코치는 "상영이가 펜싱을 처음 배울 때부터 플래시를 가장 잘 구사했다"며 "전국 대회에서 플래시를 앞세운 상영이를 막을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박상영이 불과 47초 동안 5점을 올리며 전 세계 펜싱 팬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 대역전극을 펼치자 마리아 나누 국제펜싱연맹(FIE) 미디어 팀장은 "이토록 환상적인 결승전을 본 적이 없다. 박상영이 전 세계에 펜싱이 역동적인 스포츠라는 점을 일깨워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