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닐곱 살 꼬마들이 까르르 웃는다. 여자아이가 손가락 끝으로 박달대게를 조심스레 건드린다. 거대한 게가 집게발을 벌리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뒷걸음질한다. 씩씩한 남자아이는 장어를 주먹으로 불끈 쥐고 비튼다. 장어가 죽겠다는 듯 몸을 뒤흔들자 장어집 사장님 안색이 새파래진다. 수산시장은 아이들에게 더없이 즐거운 아쿠아리움이다.

가락몰 개장으로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은 농·수·축산물 도소매뿐 아니라 대형마트 못지않은 쾌적한 분위기에 실내 쇼핑이 가능한 복합쇼핑 공간으로 탄생했다. 가락몰 1층 축산부와 수산부, 가락몰 2층의 한주주방아울렛, 가락시장 수박 경매장(사진 맨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까지 먹을거리 볼거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난 7월 1일, 가락몰이 문을 열었다. 옛 가락시장의 현대화 버전이다. 축산, 수산, 과일, 야채, 토종 대형마트까지 갖춘 원스톱 쇼핑몰로 먹거리에 관한 한 없는 게 없다. 따로 떨어져 있던 축산, 수산, 야채, 과일시장이 가락몰 하나로 통합됐다. 1층은 젓갈, 건어물 등 수산과 축산 코너, 지하는 야채와 과일, 반찬 등을 판다. 2층으로 올라가면 대형 식자재 마트와 주방 아웃렛. 3층은 식당가와 야외공원이다. 1층에서 산 생선회를 3층으로 가지고 올라가 양념값만 내면 바로 상을 펼칠 수 있다.

개장 이튿날엔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었다. 11시 정각이 되자 한주주방아울렛 앞에서 '깜짝 세일'이 시작됐다. 아줌마들이 매대로 달려갔다. 프라이팬은 원가, 작은 그릇은 개당 100원이다. 쇼핑 본능이 발동해 그릇 열 개를 사고 말았다. 단돈 1000원에! 분당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는 말 그대로 그릇을 쓸어 담더니, 신문지를 나눠 줬다. 깨지지 않게 포장해 가라면서. 소비자들 간에도 나눔의 정이 솟는 게 시장이다.

단골 가게들을 돌면서 비빔밥용 성게알, 샌드위치용 로메인, 에이드 음료에 넣을 라임까지 샀다. 서울 시내에서 이런 재료들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가락몰이 만들어진 뒤 이전엔 없던 즐거움도 생겨났다. 가락몰 도서관에선 '시장 속 동화요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시식하고 초보적인 장 보기도 배운다. "칼로 썰거나 불을 쓰는 요리들을 좋아해요. 위험하니까 오히려 성취감이 있나 봐요." 요리 가르치는 김경은 교수 얘기다. 어른을 위한 교실도 있다. '계절 한식 클래스'와 '남자들의 캠핑 요리 클래스'는 선착순 마감이 끝났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빌딩 옥상에서 내려다본 가락몰과 가락시장 전경.

새로 지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옥상에 올라갔다. 남쪽으로 남한산이, 서쪽으로는 대모산이 보인다. 수도권 2500만 명을 커버하는 국내 최대 시장. 서울 시민의 먹거리 절반 정도가 가락시장을 통해 움직인다. 수도권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이다. 하루 유동인구 13만 명. 4000여 점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2만 명에 달한다. 웬만한 소도시 규모다.

가락시장역에서 지하철 3호선과 8호선이 만난다. 3.5㎞에 달하는 담벼락을 따라 버스정류장만 다섯 군데. 16만4000 평(54만㎡). 동서 900m, 남북 600m 거리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열심히 걸어도 10분 이상 걸린다. 1985년 가락시장이 개장할 때만 해도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다. 용산시장과 염천교 수산시장, 중부시장 일부가 옮겨왔다. 성남 가는 시외버스만 지나가던 송파대로엔 50개가 넘는 버스 노선이 연결돼 있다.

파리에는 헝지스(Rungis), 도쿄에는 오타(大田) 도매시장이 있다. 유럽 식자재 유통의 중심인 헝지스에서 일반인은 물건을 구매할 수 없다. 구매자 등록을 한 요리사나 가게 주인들만 재료를 살 수 있다. 요리학교 코르동 블루에서는 헝지스 견학이 코스에 포함돼 있다. 장보기의 기본부터 배우는 것이다. 헝지스나 오타 시장은 도매와 소매가 엄격하게 구분돼 있지만, 가락시장은 도매와 소매가 공존한다.

가락몰은 밤시장도 매력적이다. 소 한 마리를 통째로 꼬챙이에 걸어놓고 손질하는 24시간 정육점이 불을 밝힌다. 음성, 안양, 부천 등지에서 수시로 고기가 올라온다. 젓갈집도 문을 연다. 밤샘 영업집이다. 수조에는 해산물이 그득하다. 광어, 우럭, 도미, 농어는 기본이고 털게, 킹크랩, 바닷가재, 해삼, 멍게, 피문어, 산낙지, 전복, 한치, 아나고 등이 물을 박차고 나올 듯 넘친다. 식당과 양념집이 몰려 있는 회 센터는 불야성이다. 밤 11시 반에 경매를 마친 선어들도 넘어온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오징어, 부산에서 올라온 고등어, 제주도에서 온 갈치. 병어, 삼치, 조기, 생태, 아귀, 장어, 도미, 임연수어 등이 가락몰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오른다.

가락몰은 주차가 용이하고 냉방이 잘돼 여성 고객들이 줄을 잇는다. 1층 축산부에는 소, 양, 돼지와 가금류를 파는 가게 105개가 있다. 롯데식품 이인재(45) 사장 칼 다루는 솜씨는 시장에서도 알아준다. 20년 넘는 베테랑. 우지육 한 마리를 해체하다가 양지 서너 점을 툭 썰어준다. "고소한 맛은 한우를 못 따라와요." 찰지고 구수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도축장에서 올라온 소를 손질하고 있으면 새벽부터 거래처 주인들이 나타나 품질 좋은 부위를 대량으로 구매해 간다. 인터넷으로 가격 비교를 마친 '쇼핑 고수' 주부들도 나타난다. "여기 오는 주부들은 가격에 민감해요. 100g에 여긴 얼마, 저긴 얼마, 다 따진다니까." 영화 '워낭소리'가 개봉하기 전부터 '워낭축산'을 운영해온 신정임(61) 사장 말이다.

수산 쪽은 건어물, 젓갈, 선어, 활어까지 모두 286개의 가게가 있다. 경쟁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대형마트는 판매자가 통일돼 있지만, 시장은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인들 의지로 충만하다. 싸고 좋은 물건이 경쟁력이다. 큼직한 굴비 두름을 내건 대일굴비 민병용 사장이 "아따, 한정식 집에서 2만원 넘게 받는 거 우린 절반 값도 안 되지" 한다. 붕장어 전문점 고흥상회 김숙현 사장은 "작은 건 바로 회를 쳐요. 여긴 살균수를 쓰니까, 비브리오 같은 거 걱정 안 해도 돼요" 했다. 깨끗하고 현대적인 가락몰. 일주일에 한 번 반드시 가는 이유는, 동네 시장에선 구할 수 없는 특별한 재료가 그득한 보물 창고이기 때문이다.

[E ditor’s Pick]
여기는 꼭! 가락몰의 명물 가게들

▶한주주방아울렛 윤종진(60) 사장은 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용산시장에서 식품 잡화를 팔다가 가락시장 개장 멤버로 합류했다. 작년 12월 2일 가락몰 2층에 국내 최대 규모의 주방아웃렛 문을 열었다. “냉난방도 없고, 장작불 때 가면서 장사했는데, 좋은 환경에서 쇼핑하니까 머무는 시간이 배로 늘어났어요.” 매장 면적 400평. 상품은 15만여 점에 달한다. 주방용품이라면 없는 게 없노라고 자부한다. 24시간 연중무휴. (02)6978-1000

▶새농 유기농 단일 매장으로는 가장 크다. 1996년 가락시장에서 문을 연 토종 브랜드. ‘조금 더 안전한 식품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가 모토다. 방문한 날 무항생제 계란이 세일했다. 한 판에 6600원. 인기 높은 품목은 블루베리(500g·9500원), 유기농 바나나(500~600g·2800원), 무항생제 한우불고기(100g·4450원), 돼지목심(100g·2620원), 유기농 아몬드, 황설탕, 우유, 백미, 미숫가루 등이다. (02)3401-4900

▶워낭축산 1986년 개업해 30년째다. “항상 원 플러스 급만 들여와요. 가격이나 품질에 등락이 없지.” 오랜 단골들이 많다. 새벽 4시 문을 열고 고기를 손질하면 식당들이 도매로 사 가고, 저녁 8시 문 닫을 때까지는 소매 손님이 주를 이룬다. 주부들은 주로 국거리용 양지, 장조림용 사태, 구이용 등심이나 채끝을 찾는다. 가락몰로 이사 오니 소매가 훨씬 잘 팔린단다. 가락몰 축산부에서는 처음으로 문을 연 집이다. (02)408-1230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새농, 워낭축산, 바다나라, 평화토속맛식품
▶바다나라

수조를 채우는 솜씨에도 차이가 있다. 바다나라(02-400-9172)에는 전국 각지로 발품 팔아 구해온 특산물들이 다양하다. 살아 있는 꽃새우가 세 마리에 1만원. 홍새우, 흰다리새우는 그보다 저렴하다. 여름 제철 민어는 잡아서 숙성시킨다. ㎏당 6만~8만원. 싱싱한 전복치들도 수조 안에 가득하다.

▶평화토속맛식품

(02-402-9722)엔 젓갈이 많다. 목포에서 온 새우젓, 강원도 명란젓, 오징어젓, 기장과 추자에서 온 멸치젓, 밴댕이, 꽃멸치, 황석어젓갈은 염장 상태에서 실온 발효시킨다. 잘 숙성시킨 밑반찬들도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