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별로 안 더운 나라라고 듣고 왔는데 우리나라만큼 더워요. 아니 더 더운 것 같아요."
서울 명동 거리에서 지난 1일 만난 말레이시아 관광객 카디자(19)씨는 더위에 지친 표정이었다. 거리에서 만난 상인들도 "'찜질방' 같다. 폭염에 손님들이 확 줄어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기상청이 발표한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2.4도. 그러나 사람들이 실제 느끼는 체감(體感) 기온은 이보다 훨씬 높았다. 본지 취재진은 시중에서 구입한 온도계를 들고 1일 서울(명동 등)·대구(동성로)·광주광역시(상무지구) 세 도시의 거리에 나가 기온을 재봤다. 기상청의 기온 측정 기준(지표면에서 1.5m 높이)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온도계는 목 부위에 놓고 측정했다. 그 결과 거리의 실제 기온은 기상청 발표보다 대부분 2~6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심 기온은 40도 '가마솥'
1일 오후 1시 취재진이 측정한 서울 광화문 거리의 기온은 35.0도, 오후 4시 서울 강남역 일대는 35.1도로 해당 지점의 기상청 발표 기온(32.0도, 32.7도)보다 각각 3도와 2.4도 높았다. 중부 지방보다 폭염이 더 기승을 부린 남부 지방 도시에선 40도가 넘는 실측 관측 값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광주에선 측정 온도가 41도(상무지구 오후 3시)를 기록했다. 이는 인근 기상대 측정값(35.2도)보다 5.8도 높은 수치다. 광주 시민들은 "동남아 날씨처럼 습하고 덥다"고 말했다.
소나기도 폭염을 잠재우진 못했다. 1일 오후 대구에선 잠시 소나기가 내리기도 했지만 '가마솥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대구 동성로에 나가 기온을 측정해보니 소나기가 내린 뒤엔 도심 열기가 잠시 식으며 33도가량이 됐다. 하지만 비가 그친 뒤 불과 30분이 지나자 수은주는 36도로 치솟았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윤종대(70)씨는 "대구가 덥기로는 챔피언이라지만 너무 덥다"고 했다.
◇도심이 더 뜨거운 이유
이처럼 기상청 발표 기온과는 달리 대도시 도심의 실제 기온이 아열대 지방 수준으로 치솟은 건 잔디밭 위에서 직사광선을 차단한 채 온도를 재는 기상청과 달리, 햇빛에 계속 뜨거워지는 아스팔트와 에어컨 실외기 등에서 나오는 열기 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WMO(세계기상기구)에서 인공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기온을 구하라고 정하고 있어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지금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라며 "직사광선 영향이 섭씨 1도 정도는 더 높인다"고 말했다.
아스팔트 등에서 나온 열기가 빽빽이 들어찬 도심 고층 빌딩 등에 갇혀 쌓이는 것도 온도 상승을 부추긴다. 인하대 정용원 교수(환경공학과)는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는 공기 순환의 장애물로 작용해 대기 흐름을 원활하지 못하게 만든다"며 "여름철엔 이들 구조물로 인해 열기가 계속 누적돼 열섬(Heat Island)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섬 현상이란 도시 중심부의 기온이 주변보다 현저하게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에 부족한 녹지도 도심 기온을 더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다. 숲의 나뭇잎은 주변의 열을 빼앗아 광합성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쓰기 때문에 주변 온도를 떨어뜨린다. 실제로 기상청 산하 기상과학연구원 조사 결과 2014~2015년 서울 선릉역 상업지와 녹지의 폭염 기간 평균 온도를 비교해보니 상업지가 30.6도로 녹지(27.8도)보다 2.8도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의 여름밤 더 괴롭다
낮 동안 도심을 달군 더위는 밤까지 이어져 빈번히 열대야를 부른다. 열섬 현상 등으로 쌓인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밤에도 기온이 낮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상청이 열대야 집계를 시작한 1974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의 열대야 평균 일수는 8.35일로 전국 평균(5.4일)보다 2.95일 많았다. 최근 5년 동안에는 서울의 열대야 일수가 평균 13일로 전국 평균(8.15일)보다 더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