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있는 식당 '빠삐용의 식탁'은 조금 유별나다. 식용 곤충을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이 식당 입구에 지난해 11월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내렸다. 식당 대표 김용욱(40)씨는 "양복 입은 남성이 일행도 없이 내리는데 우리 식당엔 그런 손님이 찾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수프와 파스타, 디저트로 구성된 음식이 차례로 나갔다. 그릇을 싹싹 비운 남자는 말했다. "음식 안에 곤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겠어요. 식용 곤충은 '제2의 반도체'가 될 것 같군요." 음식을 반도체에 비유한 이 손님은 이윤우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반년 뒤 그는 김 대표가 세운 식용 곤충 회사에 억대 투자금을 냈다.

27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식용 곤충 음식 전문점 ‘빠삐용의 식탁’ 입구에서 김용욱(40) 대표가 고소애(갈색거저리 유충)에서 추출한 오일로 만든 라이스 크로켓(밥을 양념해 튀겨 낸 음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식용 곤충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아 겉보기에 일반 요리와 똑같다.

김 대표는 1년 전인 지난해 7월 국내 첫 식용 곤충 식당을 열었다. 동시에 한국식용곤충연구소를 운영하며 식용 곤충을 활용한 신소재·조리법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식용 곤충 식품 제조 회사 케일(KEIL)도 설립했다. 이 회사는 8월부터 식용 곤충으로 만든 단백질 보충제를 시중에 선보인다. "어릴 때부터 곤충이라면 사족을 못 썼어요." 서울 양재천을 따라 등교하다가 곤충 잡느라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다. 검은 비닐봉지 가득 벌을 잡아다 교실에 풀어 악동 소리도 들었다. 길에서 잡아 온 사마귀가 집에서 알을 부화해 온 집 안이 사마귀 천지가 된 적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굶주림을 겪었다. 친구들이 사 주는 음식으로 버티다 간 군대는 세끼 밥 꼬박꼬박 줘서 좋았다. 제대 후 바로 캐나다로 떠났다. "알파벳도 몰랐지만, 외국에서 무언가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감자 농장 등지에서 일해 모은 돈 들고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호텔스쿨에서 외식산업을 배웠다. 뒤늦게 공부에 재미 붙여 스위스에서 학사, 영국에서 석·박사를 했다. 2009년 귀국해 경주대 외식조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사진 왼쪽)시푸드 토마토 파스타 파스타 면에 메뚜기 분말이 들어있다. (사진 오른쪽)희망건빵 갈색거저리 유충 분말로 만들었다.

3년 후인 2012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총회를 참관한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거리를 줬다. "미래 식량으로 곤충이 뽑히는 것을 보고는 '이거다' 싶었습니다. 영양이 풍부하면서 저렴하고, 환경에 부담을 덜 주면서도 세계 어디서나 만들 수 있으니 식용 곤충만 한 사업 아이템이 없다고 확신했죠."

지난해 2월 식용 곤충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강단을 떠난 그는 5개월 뒤 퇴직금 3000여만원으로 월세 90만원, 테이블 하나짜리 가게를 조심스레 열었다. 다행히 매일 예약이 꽉 찬다. 김 대표는 "가을쯤 브런치 식당을 추가로 열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 식용 곤충 시장에서 가장 앞서 달리는 나라는 미국이다. 식용 곤충 식품 제조 회사만 32곳이고 대규모 자본 투자도 이뤄진다. 김 대표는 "곤충을 분말이나 액상 타입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곤충의 외형에서 오는 거부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보다는 식용 곤충 연구에 대한 부족한 투자와 정부 지원이 식용 곤충 대중화의 걸림돌"이라고 했다.

사업가로 전업한 후 김 대표는 매달 캄보디아와 탄자니아에 곤충 건빵을 보내고 있다. 겉봉엔 우리말로 '희망건빵'이라 적어 넣었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 8억명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곤충으로 만든 고단백 식품으로 굶주린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게 제 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