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A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지난달 12시간에 걸쳐 수영 수업을 이수했다. 교내 수영장이 없어 A초교는 차로 15분 거리인 공공 수영장을 빌렸다. 가까이에 사설 수영장 2곳이 있지만 "돈 안 되는 초등학생 단체 수업은 안 한다"고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교감은 "그래도 올해는 2월부터 수영장 예약을 서두른 덕에 운이 좋았다"면서 "작년에는 다른 학교들에 밀려 11월 말에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 공공 수영장은 난방이 안 되는 낡은 수영장이라 만 아홉 살짜리 아이들 입술이 파랗게 질려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풀장 주변에서 준비 운동만 하고 돌아왔다. A초교 교감은 "주변 스무 곳 넘는 초등학교가 공공 수영장 2곳을 돌아가며 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대구체육고등학교 수영장에서 대구시내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물에 빠졌을 때 과자 봉지를 붙잡고 물에 뜨는 법을 배우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초등학생 대상 생존 수영 교육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수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교내 수영장을 갖춘 학교가 100곳 중 1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근 공공·사설 수영장을 빌려 써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효과적인 수영 교육이 이뤄지려면 먼저 충분한 수영 시설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상 학생 10명 중 6명 수영 못 배워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초등학생 수영 실기 교육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18학년도에는 전체 초등학교 3~6학년생(약 178만명)이 생존 수영을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전국의 초등 3~4학년생부터 교육받도록 할 계획이었지만, 실제 대상 학생 85만8000명 중 40%인 35만명만 수영을 배우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농·산·어촌은 물론이고 도시에도 수영장이 부족해 10명 중 6명은 수영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수영 시설은 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교내에 수영장을 갖추고 있는 초등학교는 전국에 76곳(2015년)뿐이다. 전체 5913개 초등학교의 1.3% 수준이다. 그나마 수영장이 있는 76곳 중 39곳이 서울에 있어, 지방 학교에는 수영 시설이 더욱 부족한 실정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경상북도에는 수영장을 갖춘 학교가 한 곳도 없다.

수영장이 없는 학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 수영장이나 백화점·스포츠센터 등이 운영하는 사설 수영장을 빌려 사용하라는 것이 교육 당국의 방침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버스를 빌려 학생들을 태우고 수영장에 다녀오려면 1시간 수업하는 데 2~3시간씩 걸린다"며 "수영은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효과가 있는데 수영장을 못 구해 한 달에 한 번꼴로 수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체육 교사는 "매년 2월, 8월이 되면 동네 수영장에 '자리 있느냐'고 전화 돌리느라 진땀을 뺀다"며 "원하는 시기에 수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올해 수영장을 예약하지 못해 4학년은 수영 수업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민간에서 수영장 짓도록 유도해야"

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선 오래전부터 어린이 수영 수업을 의무화하고 있다. 물에 빠지더라도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자기 구조법'이나 위험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는 '기본 구조법' 등을 반드시 배우게 한다. 일본은 1955년 시운마루(紫雲丸)호 사고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 168명이 숨진 뒤 모든 초등학교에서 수영 수업을 실시하기 시작했고, 현재 초등학교 90%가 실내·외 수영장 시설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며 필요성을 깨닫고 생존 수영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학교가 수영장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수영장 하나를 짓는 데 최소 30억원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8학년도까지 수영장이 없는 지역 18곳에 우선적으로 수영장 겸 체육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영장 18곳을 지어도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며 "여름철 학교 운동장에 간이 수영장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공공·민간 수영 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민간에서 수영장을 더 많이 짓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육현철 한국체대 교수는 "대학, 호텔, 백화점 등이 운영하는 수영장을 초등학생 교육 목적으로 대폭 개방하도록 하고, 대기업이나 지역 기업이 사회 공헌 목적으로 수영장을 지으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유도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