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가 정호승의 대표시를 영역(英譯)한 시선집 'A letter not sent(부치지 않은 편지)'를 냈다. 시집 제목이 된 시는 가수 김광석이 노래로 불러 잘 알려져 있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60여 편이 가요와 가곡으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지만, 이제야 처음으로 영역 시집을 지니게 됐다. 영국 가톨릭 수사(修士)인 안선재 교수는 1980년 한국에 와 서강대 영문과 교수를 지내며 지금껏 한국 시인 35명의 시집을 영역해왔다. 안 교수는 1994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안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수잔 황과 함께 영역한 정호승의 시 세계를 가리켜 "흠… 착한 사람이라고나 할까?"라고 했다. 그는 "난 한국말 잘 못해서 영어로 하면 'inspira tional'? 이 말은 힘, 용기, 희망을 주는 어느 정도 영성적(靈性的)인 것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호승의 시는 인생에 관한 것, 아주 내면적인 것인데…"라고 하다가 마땅하게 덧붙일 말을 찾지 못해 빙긋이 웃었다.

정호승(왼쪽) 시인의 시선집을 영어로 옮긴 안선재 서강대 교수는“번역가는 겸손하게 원작자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시인 정호승은 누구?]

정호승 시인은 안 교수에 대해 "수사님은 날마다 한국 시를 영어로 번역하신다"며 "국내에서 발행되는 영자 신문에 제 시를 번역해서 촌평을 다는 연재도 하셨는데, 앞으로 제 시집 영어판을 두 권 더 내실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정호승의 시 '서울의 예수'를 처음 읽으면서 그의 시 세계에 주목했다고 한다. 영역 제목은 'Seoul's Jesus'. 그는 "Jesus in Seoul이라고 옮기면 그냥 관광객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정 시인이 "저는 수사님이 한국 시를 번역하시게 된 동기가 늘 궁금했다"라고 하자 안 교수는 "하하, 그건 인연(因緣)"이라며 "구상(具常) 시인과의 인연 때문에 한국 시 번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호승의 시는 평이한 언어로 깊은 울림을 낳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안 교수의 번역은 단순한 반복으로 운율을 살려 낭송하기 좋은 영시(英詩)를 빚어냈다. 정호승의 시 '명동 성당'은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 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이라고 시작한다. 영어 번역은 이렇다. 'A place where a fool turns into a saint,/ where a saint turns into a fool,/ where even stones turn into candles,/ where candles then turn in to bread.'

정호승 시인은 "명동 성당에 갔더니 수사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영역한 시를 유리창에 붙여놨는데 앞으로 수사님이 번역한 것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할 생각"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난 번역에 대해서 멋있는 말 못 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나중에 낭송해보고 어, 잘 낭송된다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