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산길은 괴이하다. 검은 화산 땅에 쭉 뻗은 삼나무가 해를 가려 등성이에 오를 때까지 축축하고 어둡다. 곳곳에 서 있는 기이한 신사(神社)에선 당장 귀신이 튀어나올 듯하다. 사람처럼 생긴 바위마다 붉은 옷을 입혀놓고 촛불을 켜둔 모습에 머리카락이 주뼛 선다. 21세기 첨단 문명국에서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이라니.
▶일본에선 기독교가 맥을 못 춘다. 불교도 변형돼 일본 전통의 신도(神道)에 녹아들었다. 일본인의 종교는 '야오요로즈(八百萬)의 가미(神)'라는 말로 압축된다. 야오요로즈는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다. 일본인은 보통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사람, 동식물은 물론 무생물에도 혼이 있어 그들이 돌아가는 모든 것이 '가미(신)'라고 여긴다. 여우신·뱀신·개신·산신·밭신·쌀신·바위신에 심지어 뒷간신도 있다. 일신론자가 믿는 절대신과는 다르다.
▶요괴는 이 중에 '안 좋은 사연을 가진 신'이라고 할까. 요괴는 시대에 따라 사람들 마음속에 다르게 그려졌다. 예컨대 '인면견(人面犬)' 요괴는 1990년대 일본을 떠돌던 도시 전설에서 나왔다. 구조조정 당한 남자가 방황하다 목숨을 버리고 동네 개가 됐다는. 요즘 우리 어린이들도 잘 아는 일본 만화 '요괴 워치'에도 인면견이 등장한다. 일본은 이렇게 시대의 정서와 해학을 요괴에 투영해 왔다.
▶일본 요괴는 전통 종교관의 산물이다. 그래서 민속학자와 철학자들이 주목했다. 백 년 전 전국 2831곳을 돌아 요괴 설화를 집대성한 이노우에 엔료는 당대의 철학자였다. 바통은 일본 민속학 거두 야나기타 구니오가 이어받았다. 그들이 정리한 일본 요괴가 대중에게 파고든 것은 미즈키 시게루라는 만화가 덕분이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게게게의 기타로' 시리즈로 학문과 기담(奇談) 속 일본 요괴를 대중 곁으로 끌어냈다. 그의 고향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 중심가엔 그가 창조한 150개 요괴상이 늘어서 있다. 거리 이름은 '미즈키 시게루 로드'. 52조원을 벌었다는 포켓몬의 귀여운 요괴 캐릭터도 여기가 뿌리다.
▶하지만 앞뒤를 바꾸면 곤란하다. 일본이 캐릭터 산업을 내다보고 요괴학에 몰두한 건 아니다. 요괴의 부가가치를 일찍 깨닫고 정부가 투자한 것도 아니다. 내 나라 전통문화에 대한 학자들의 깊은 애정, 내 나라 전통문화를 대중에게 알리고자 노력한 만화가의 집념이 백 년 넘게 층층이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 포켓몬 열풍 탓에 '한국판 요괴학'을 육성한다며 또 헛돈 들이지 않을지 벌써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