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해진 파리 센강 다리 퐁뇌프를 지나 루브르박물관을 향하다 보면 오래된 성당 하나를 만난다. 생제르맹 록세루아 성당. 프랑스 역사의 가장 어두운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하는 현장이다. 1572년 8월 24일 일요일 새벽 한 시 반 이 성당의 종이 울렸다. 이를 신호탄으로 구교(舊敎)인 가톨릭 세력이 신교(新敎) 위그노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파리에서만 신교도 3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祝日)의 대학살'이다.
▶가톨릭의 광기(狂氣)에 위그노 세력이 목숨 걸고 대항하면서 프랑스 전체가 종교전쟁에 빠져들었다. 온 국민이 두 종교로 나뉘어 증오와 불신으로 똘똘 뭉쳐 싸웠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10만여 명이 희생됐고 약탈과 강간이 끊이지 않았다. 신교도였던 앙리 4세가 왕위에 올라 신교와 구교 모두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낭트 칙령을 발표하면서 갈등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나라는 이미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프랑스에는 '라이시테(La
cit
)'라는 말이 있다.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정부는 시민들의 종교 자유는 철저히 인정하되 종교가 세속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인들도 종교에 관해서는 말하는 것을 꺼린다. 정교(政敎)가 하나로 뒤엉켰던 중세 프랑스에서 기사(騎士)들은 종교의 충실한 하수인이기도 했다. 종교의 맹목적 광기와 세속이 잘못 결합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오는지 프랑스인들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그제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 한 성당에서 이슬람국가(IS) 조직원이 미사를 집전하는 여든여섯 살 신부를 칼로 참수(斬首)하는 일이 벌어졌다. 샤를리 에브도 잡지사 테러나 파리 레스토랑 테러, 휴양지 니스의 트럭 테러와는 또 다른 '종교 테러'다. 서구 문명의 한 축(軸)인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고 프랑스인들이 추구하는 사회 운영 원칙에 대한 유린이다.
▶당장 프랑스 우파 일각에선 "이번 테러가 종교전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분별없는 만행이 프랑스인들의 인내를 시험해 극우 세력의 등장을 앞당길지 모른다.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종교를 전쟁에 이용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역사상 종교가 발단이 된 수많은 전쟁을 돌아볼 때 종교는 과연 선(善)하고 의(義)롭기만 한 것일까. 종교 자체에 내재한 문제는 진짜 없는 것인지 다시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