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8시 30분 서울대학교 대운동장. 14명의 남녀가 손에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7명씩 양쪽으로 편을 나눠 정렬했다. 운동장 가운데에 흰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공 4개가 일렬로 놓였다. "브룸스업(Brooms Up!)"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선수들은 다리 사이에 막대기를 끼우고 전속력으로 달렸고, 공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다.
이들은 국내 유일의 '퀴디치(Quidditch)'팀인 서울대 동아리 '서울퍼프스케인(Seoul Puffskeins)' 소속 선수들. 퀴디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조앤 롤링의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들이 즐기는 스포츠다. 소설에서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공을 골대에 집어넣지만, 현실에서는 빗자루를 두 다리 사이에 끼고 뛰어다닌다. 이들이 다리 사이에 낀 막대기는 '빗자루'를 대신한 연습용 장비였다.
하늘을 날지 못할 뿐, 경기 규칙은 마법사들의 퀴디치와 같다. 한 팀은 총 7명으로 구성되는데 상대의 골대를 향해 공격하는 '추격꾼'이 3명, 골키퍼 역할을 하는 '파수꾼' 1명, 상대팀 추격꾼을 공격하는 '몰이꾼' 2명, 영화 속 해리가 맡은 '수색꾼(Seeker)' 1명이다. 소설에서는 스스로 숨고 날아다니는 '금빛 스니치(Golden Snitch)'를 잡기 위해 애쓰지만, 현실 속 퀴디치는 수색꾼이 경기 시작 17분 후 투입되는 '인간 스니치'의 허리춤에 매단 양말 속 테니스공을 잡아야 경기가 끝난다.
이날 기자도 직접 '몰이꾼' 포지션을 맡아 연습 경기에 참가했다. 주변에 취재 계획을 알렸더니 "가랑이에 빗자루를 끼고 달리다니… 생각만 해도 수치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경기는 숨가쁘게 진행됐다.
해리 포터의 빗자루 '파이어 볼트'는 시속 200㎞ 이상으로 질주하고 곡예비행을 일삼지만, 기자는 빗자루를 대신하는 막대기를 가랑이에 끼고 달리니 5분도 안 돼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퀘이플(득점용 공)을 들고 우리 골대로 달려드는 선수를 블러저(수비용 공)로 맞춰 좌절시키는 게 기자의 임무였지만 번번이 상대팀 몰이꾼에게 공을 뺏겼다. 한 팀에 남녀가 섞여 있는 혼성 스포츠이지만, 실제 경기에선 치아 보호를 위해 마우스피스까지 착용해야 할 정도로 몸싸움이 격렬했다.
마법사가 아닌 '인간용 퀴디치'는 2005년 미국 버몬트의 미들버리대학교 학생들이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이제는 제법 진지한 스포츠가 됐다. 현재 20개국에 300여개 팀이 '국제퀴디치연합(IQA)'에 등록돼 있다. 미국에만 100개 이상의 팀이 있고 그들끼리 벌이는 'US퀴디치리그'가 있다.
퀴디치 국가대항전도 있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퀴디치 월드컵(Quidditch World Cup)이 23일부터 이틀 동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다. 23개국이 참가 신청서를 냈고 한국 퀴디치팀은 처음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에선 예비선수 없이 총 7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경기 참여를 위한 최소 인원이다. 서울대 퀴디치팀 '서울퍼프스케인'에서 5명, 미국 퀴디치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 2명이 모여 한 팀을 이뤘다.
한국퀴디치팀은 지난해 9월 출전하기로 결정한 이후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여 2시간씩 연습했다.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에서 전 세계 퀴디치 팬들로부터 900유로를 투자받아 참가 비용을 마련했다. 주장 이송윤(24)씨는 "첫 출전이고 교체할 수 있는 후보선수가 없어 목표는 2승 정도로 잡고 있다"며 "이번 기회로 한국에서도 퀴디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영국, 터키, 오스트리아, 스페인과 함께 C조로 참여한다. 한국 대표팀은 23일 오전 10시(현지시각), 스페인과 첫 경기를 갖는다. http://sportdeutschland.tv/ 에서 중계방송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