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1시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 여주 IC 부근. 편도 4차로 도로 중 2차로에서 45인승 관광버스가 승용차들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본지 취재 차량이 제한속도인 시속 100㎞로 버스를 뒤따라갔지만, 간격은 오히려 벌어졌다. 3차로를 달리던 다른 전세 버스가 앞으로 끼어들자 이 버스는 1차로로 차로를 바꾼 뒤 속도를 높여 전세 버스를 추월하고 나서 다시 2차로로 돌아왔다. 본지 차량이 30여분간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45인승 전세 버스 20여대가 1·2차로를 넘나들며 시속 100㎞ 이상으로 주행했다.
같은 시각 경부고속도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경부고속도로 최고 제한속도는 시속 110㎞다. 본지 차량이 경부고속도로 신갈교차로 부근을 시속 105㎞로 달리는데, 전세 버스들이 '슝' 소리를 내며 본지 차량을 추월해 앞서 나갔다. 전세 버스가 고속으로 추월할 때 배기량 1500㏄급인 본지 차량이 흔들렸다. 이날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20여분간 전세 버스 20대가 본지 차량을 추월했다. 1분에 1대꼴이었다.
이날 고속 주행하는 전세 버스들은 대부분 앞차와의 간격을 20m 이내로 유지한 채 달리고 있었다. 바짝 뒤따라오는 버스에 위협을 느낀 승용차들이 오른쪽 차로로 비켜주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이날 3시간에 걸쳐 영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오가는 버스들을 관찰한 결과, 앞차와 간격을 50m 이상 확보하고 달리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50m는 시속 100㎞로 달리는 버스가 브레이크를 밟은 뒤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걸리는 거리(제동거리)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무게가 1~2t 정도인 승용·승합차는 시속 100㎞로 달리다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차가 완전히 멈추기까지 제동 거리가 42m가량이다. 반면 11~12t 정도인 45인승 전세 버스는 제동거리가 55m에 달한다. 이 정도 간격을 유지하지 않고 운행할 경우 돌발상황 시 앞 차를 추돌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그러나 이 아수라장 어디에도 과속 버스를 단속하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영동고속도로처럼 버스전용차로가 없는 도로의 경우, 전세 버스를 비롯한 대형 차량은 지정차로로 운행해야 한다. 편도 4차로에서는 3차로가, 편도 3차로에서는 2차로가 대형 차량의 지정차로다. 또 지정차로의 대형 차량에 적용되는 제한속도는 시속 80~90㎞다. 그러나 이날 본지 취재 결과, 지정차로만 달리는 버스는 없었다.
같은 교통사고라도 버스 사고는 승용·승합차에 비해 훨씬 많은 인명 피해를 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고속도로에서 버스(36인승 이상)로 인한 교통사고가 149건 발생했고, 그 결과 사상자가 769명 발생했다. 같은 기간 승용차 사고는 2913건 있었고 사상자는 7140명이었다. 버스 사고 1건당 사상자가 5.23명으로, 승용차(1건당 2.45명)의 2배를 넘는 것이다. 호욱진 경찰청 교통조사계장은 "버스로 인한 교통사고에서 발생하는 사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버스 탑승자가 아니라 버스에 받힌 다른 승용·승합차 탑승자"라며 "버스 운전자들은 사망 사고의 가해자가 되기 쉬운 만큼 한층 더 신중하게 운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토교통부는 대형 차량의 과속을 막기 위해 2013년 8월 이후 생산된 3.5t 이상 화물·특수차와 승합차에 대해 속도 제한 장치를 의무적으로 달도록 했다. 속도 제한 장치가 달린 화물·특수차는 시속 90㎞ 이상, 승합차는 시속 110㎞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다. 그러나 이 장치를 불법 개조하거나 아예 제거한 버스가 많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전국을 돌며 관광버스 등 대형 차량의 속도 제한 장치를 불법으로 해제한 무등록 차량 개조업자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에게 의뢰해 속도 제한 장치를 해제한 관광버스와 화물 차량은 5500여대에 달했다.
속도 제한 장치를 고치거나 떼면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과태료 100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렵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노경수 고속도로순찰대 제1지구대장은 "육안으로는 차량의 속도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속 단속은 무인 카메라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면서 "대형 차량 운전자들이 경험이나 내비게이션을 통해 단속 카메라의 위치를 꿰고 있기 때문에 적발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