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기자실에는 몇 가지 관행이 있다. 대통령 참석 외부 행사는 청와대가 정하는 엠바고(보도 유예) 시점까지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동선(動線)이 미리 노출되면 경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데 어쩌겠는가. 간혹 실수로 어기는 기자는 몇 달씩 출입이 정지당하는 제재를 받는다. 특히 경호실이 정색하고 나선다. 경호 계획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 경로를 바꾸고 하수구 같은 지하 시설까지 새로 뒤진다고 한다. 폭발물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경찰이 초록 신호등을 열어둔 강남대로에서 기자단 버스를 타고 대통령 차량 행렬을 따라간 적이 있다. 체감으로는 시속 100㎞가 훨씬 넘었다. 경호 규범에 대통령 차량이 도심을 지날 때는 일정 속도 이상을 내게 돼 있다. 주변 빌딩에서 저격하는 걸 대비해서다. 그 속도가 얼마인지는 비밀이다.
▶총리는 유사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대한민국 2인자다. 그러나 경호에선 하늘과 땅 차이다. 대통령 경호실은 정원이 524명이다. 대통령은 대통령경호법이 따로 있다. 총리 경호팀은 경찰에서 파견된 아홉 명이 전부다. 지난주 총리와 국방장관이 사드 수용을 설득하러 성주에 갔다가 여섯 시간 넘게 버스에 갇히는 봉변을 당했다. 총리가 떠난 뒤 현장에선 총리의 양복 윗도리와 휴대전화·수첩이 발견됐다. 총리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다 몸싸움 와중에 윗옷까지 벗겨졌다. 참담한 경호 실패다.
▶주민이 "이런 게 있다"고 하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사진을 찍었다. 경북 도의원이 "이러다 큰일 난다"며 휴대전화와 수첩을 경찰에 넘겨 서너 시간 뒤에야 총리실로 되돌아갔다. 총리가 현장을 겨우 벗어나서도 수난은 계속됐다. 처음 탄 승용차는 주민과 트럭이 가로막았고 누군가 운전석 유리까지 깼다. 총리가 두 번째 차량으로 경찰차 호위를 받으며 가면서는 주민 승용차가 중앙선을 가로질러 막아섰다. 총리 차가 빠져나가면서 주민 승용차와 충돌했는데 말이 엇갈린다.
▶경찰은 주민 차가 총리 차를 계속 막으려 해 충돌이 일어났다고 했다. 주민은 자기 차는 움직인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제 현장 검증에서도 책임을 가리지 못했다니 공권력의 값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총리 경호원들이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주변을 지킨다지만 성주 같은 상황에선 턱도 없었다. 1단계로 경찰 700명이 배치됐다가 상황이 악화하자 600명이 더 투입됐다. 그러고도 한 나라 총리가 윗도리를 벗겨 빼앗기고 국가 정책이 적힌 수첩까지 잃어버렸다. 그게 무슨 경호인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