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 차림의 류제승(59) 국방정책실장은 제복의 주한미군 중장과 나란히 서 사드(THAAD) 배치 발표를 했다. 짧은 머리, 강한 인상, 검게 탄 피부의 굵은 주름…, 설령 변장(變裝)을 해도 군인 신분만은 감추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현역 군인이 아니다. 교육사령관직에서 계급(중장) 정년으로 예편한 뒤 민간인으로 '국방정책실장'에 발탁됐다. 2013년 11월이었다. 남북한 군사회담과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 협상이 주요 과제였고, '사드'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때였다.
"2014년 5월 전작권 협의를 위해 워싱턴에 갔을 때다. 록히드마틴(군수기업체) 관계자가 취재진에게 '한국 정부가 사드 구입 의사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나도 몰랐던 내용이다. 방위사업청에서 '국산 요격 미사일 개발을 위해 참조하겠다'며 록히드마틴에 사드 관련 자료를 요청했는데, 이를 사드 구매를 위한 예비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 무렵 미 하원에서 "주한미군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기 위한 부지 조사를 하고 있다"고 공개했는데?
"당시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 미군사령관이 미 하원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자료에 '한반도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주한 미군이 2013년부터 독자적으로 부지 조사를 해온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우리 군이 정식으로 문의하자, 주한 미군은 '유사시 사드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상황을 대비해 적합한 장소를 살펴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명색이 동맹국인 우리와 한마디 상의나 협의가 없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주한 미군은 미(美)태평양사령부의 지휘 통제를 받는다. 필요한 경우 우리 군에 통보나 협의를 한다. 한국군 단독으로 지휘 통제하는 작전에서 미군이 개입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당시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으로 전시(戰時) 상황에서 사드를 들여올 때 전개할 수 있는 장소를 살펴보는 차원이었다. 이번처럼 상설 배치는 우리가 부지와 기반 시설을 제공하므로 협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드 배치 논의를 2년 전부터 해온 것인가?
"스캐퍼로티 주한 미군사령관이 한반도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건의했지만, 미국 내부에서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았다. 유럽과 한반도 중 어느 곳에 배치할지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사실 올 1월 말까지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어떤 요청·협의·결정이 없는 소위 '3No' 정책이 유지됐다."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우리가 '전략적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걸로 비쳤는데.
"아니다. 미국 측에서 결정되지 않아 협상을 시작할 수 없었다. 지난 2월 초 '주한 미군사령관 스캐퍼로티 대장의 건의에 따라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해 협의하게 됐다'고 발표하면서 정책적 협의와 실무적 절차가 진행됐다."
―우리가 줄타기하다가 결국 미국의 압박에 손들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사드가 배치되면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게 국방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미군과의 협의에서 쟁점은?
"한반도는 산악 지형에다 인구가 조밀해 '사드 배치 지점'을 찾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한미 공동조사단은 10여 개 부지를 살펴봤고, 다시 다섯 개로 압축한 뒤 최종적으로 성주로 정했다."
―이번 사드 배치는 수도권 방어와 무관했다. 혹시 우리 군은 수도권을 방어할 수 있는 곳을 원했지만, 미국이 성주를 고집한 것은 아닌가?
"아니다. 사드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곳이 어디 있느냐,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했다. 군사기술적 관점에서의 결론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물론 수도권 방어 문제를 놓고 숙고했다. 이미 발표한 대로 수도권의 방어 능력은 개량 패트리엇 미사일(Pac-3) 배치로 증강될 것이다."
―사드 성능을 시뮬레이션해본 게 14번이어서, 그 성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
"사드가 요격 능력 시험에서 합격 판정이 난 게 2008년이다. 그 뒤로 다양한 실전 상황에서 적용해보고 성능을 개선해나갔다. 사드는 인류가 개발한 요격 무기 중에서 가장 똑똑한 무기다."
―사드 무기와 배치에는 3조원이 들어가는 걸로 추산되는데, 비용 문제는?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 규정상 미군이 전력을 전개 운용할 때 우리 정부에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둔을 허여하고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한다."
―북한에는 우리를 향해 쏠 수 있는 스커드나 노동, 무수단미사일 등 중장거리 미사일이 1000여 발이다. 요격미사일 48발로 구성된 사드 1개 포대의 배치로 무슨 억제 효과가 있을까? 군사적 효용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는데?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 사드 미사일의 예비탄을 더 갖다 놓을 수 있다. 사드는 지역 방어 능력이 뛰어나다. 보다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방어력이 있다는 뜻이다. 남한 지역 2분의 1 내지 3분의 1을 커버할 수 있다. 우리의 방어 능력이 커질수록 전쟁 억제력이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교전 상황을 왜 수세적 방어로만 가상하는가. 사드와 패트리엇 등 요격미사일은 초기적 방어 수단이고, 우리가 공격 수단인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등을 가동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북한이 공격할 징후가 임박하면 선제적 공격을 할 수도 있다."
―당초 사드가 배치되면 북핵을 억지 또는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한 것은 과장인가?
"사드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보는 것은 잘못됐다. 북 미사일 공격을 사드로만 요격 방어한다는 것은 전쟁 실상과는 거리가 있다. 사드는 복합적인 방어체계의 한 부분이다."
―사드 배치가 백두산 뒤쪽에 배치된 중국의 '둥펑(東風)'이라는 항공모함 킬러 미사일을 탐지하는 목적이라는 주장도 있었는데?
"사드는 요격미사일과 레이더가 한 세트로 이뤄져 있다. 레이더는 적의 미사일을 탐지·추적해 정확히 요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국내에 배치된 이스라엘제 그린파인 레이더나 군사위성 같은 탐지 목적이 결코 아니다."
―사드의 기능이 그렇다면 왜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겠나?
"사드 체계에 대해 의혹이 있다면 전문가끼리 대화할 수가 있다. 사드는 준중거리급 미사일 요격에 적합하게 설계된 방어용 무기다. 중국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추적이나 요격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 최근에는 중국이 사드의 군사기술적인 면은 언급하지 않고, 전략적 관점에서 반대한다."
―중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중요한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에서 중국과의 마찰을 얼마나 고려했나?
"사드 배치가 지역 전략적 균형을 깨뜨린다고 하는데, 그런 균형은 북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면서 깨진 것이다. 사드 논의가 시작됐을 때 우리는 군사적 판단에 기준을 뒀고,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는 외교적 판단 등 정책적인 문제를 긴밀히 협의해왔다."
―사드 배치로 중국을 다시 북한과 손잡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중국의 역할을 잃는 것은 전략적으로 큰 손실 아닌가?
"현실에서 나타난 것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다.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갖고 온 상황은 북한이 만든 것이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안보를 중국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국가 안보에는 국방만 아니라, 외교·경제 안보도 있다. 사드 배치로 인해 외교와 경제에서 잃는 게 너무 많지 않을까?
"안보에도 순위가 있다. 사활적 안보 문제를 다른 가치와 바꾸는 나라는 없다."
―사드에 반대하면 정쟁(政爭)이고 분열로 봐야 하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찬반 논쟁이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 다만 군사적 효용성과 안전성이 확보됐느냐 같은 사실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괴담(怪談) 수준의 말들이 만연해 있다. 또 우리의 안보보다 중국의 반응이나 보복 우려를 앞세우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처럼 보인다."
―장차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新)냉전, 신군비 경쟁이 촉발될 거라는 전망이 있는데?
"그렇게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사드는 공격이 아닌 방어용이고, 방어 범위 등을 고려할 때도 지역 전략적 균형을 손상시킨다고 보지 않는다."
―7월 8일 사드 배치 결정은 정부 간에 충분히 조율된 뒤 발표됐나? 그날 그 시각에 윤병세 외교장관은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옷을 맞추고 있어 논란이 됐는데.
"NSC 회의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별로 없었다. 공동실무단에는 외교부 관계자도 포함돼 있었고 충분히 논의가 됐다. 언제까지 배치 결정을 완료하고 어떤 형식으로 발표하느냐를 놓고 다른 의견이 있기는 했다."
―전체적으로 당초 스케줄보다 발표 날짜를 앞당겼다는 말이 있던데?
"그건 사실이다.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6차 발사가 진전된 것으로 분석돼 안보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정이 앞당겨지면서 배치 지역 주민과 주변국에 대한 설득을 충분히 못했다. 성주 지역 주민들에게 사전 설명을 준비하고 있을 때,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추측 보도를 했다. 12일에는 '성주'가 특정이 되고 말았다. 부랴부랴 13일 당일 아침에 발표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드 포대를 직접 본 적이 있나?
"현재 사드 포대는 미국 본토에 두 개, 괌에 한 개, 교육훈련 중인 두개가 있다. 괌의 사드 기지에는 가봤다."
―일본에 있는 교가미사키( ケ岬) 사드 기지는? 이곳을 현지 취재한 일부 언론의 보도에는 전자파와 소음 피해가 극심하다는데.
"그곳도 가봤다. 2014년 혼슈의 북서쪽 조그만 어촌 마을에 세워진 사드 요격미사일이 없는 레이더 기지다. 아직 상업용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자체 발전기들을 돌리기 때문에 소음이 심했다. 레이더 기지장의 설명으로는 '작년 말 레이더 가동 상태로 바다 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을 측정했는데 전자파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기지 바로 앞 바다에서 어업 활동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