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르는 선수들의 이야기는 스포츠를 보는 또 다른 묘미다.
올해 프로야구에서도 전반기에 기량이 만개하며 조연에서 주인공으로 거듭난 선수들이 야구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우선 유망주 꼬리를 떼어낸 거포들이 눈에 띈다.
지난 겨울 LG 트윈스와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은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게 된 최승준(28). 그는 입단 10년만에 잠재력을 한껏 선보이고 있다.
LG에서 거포 유망주로 주목받으면서도 자리를 잡지 못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군 36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친 최승준은 올해 전반기에만 타율 0.285 19홈런 41타점을 때려내며 완전히 달라졌다.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예년과 비슷해보였다. 개막전 엔트리에 들었다가 곧바로 2군에 내려갔다. 그러나 6월 한 달 동안 26경기에서 타율 0.337 11홈런 24타점을 몰아치면서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두산 베어스에는 김재환(28)이 눈을 뜬 거포다.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전체 4순위)에 두산 지명을 받으며 유망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김재환은 실력보다 금지약물 복용 적발로 이름을 더 먼저 알렸다. 그는 2011년 10월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에 양성반응을 보여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잠재력만 있는 거포 유망주였던 김재환은 올 시즌 전반기에 타율 0.332 22홈런 67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러 장타자가 즐비한 두산 타선에서 당당히 4번타자로 뛰고 있다. 홈런과 타점에서 각각 2위, 6위에 올라있고, 장타율 0.660로 3위에 오르며 파워를 아낌없이 자랑하고 있다.
최승준을 SK에 내준 LG에서는 2009년 육성 선수로 입단한 채은성(26)이 기량을 꽃피우고 있다.
채은성은 육성 선수로 간신히 프로 구단에 입단한 이후로도 방출 위기를 겪고,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오는 등 시련을 겪었다. 그가 정식 선수가 된 것은 5년이 지난 2014년 5월이었다.
정식 선수가 된 이후에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채은성은 올해 전반기 78경기에 출전해 0.331의 고타율에 8홈런 56타점을 기록하며 그간의 설움을 털어내고 있다.
특히 채은성은 6월에 0.402(92타수 37안타)를 때려내며 뜨거운 한 달을 보냈다.
고교 시절 황금사자기, 화랑대기 최우수선수(MVP)를 휩쓸며 '천재 타자'로 불렸던 김문호(29·롯데 자이언츠)는 입단 10년만에 고교 시절의 명성을 되찾았다.
김주찬, 전준우, 손아섭 등과의 경쟁에서 밀렸던 김문호는 올 시즌 전반기 78경기에서 타율 0.344 5홈런 41타점 8도루 52득점으로 활약하며 롯데 테이블세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타율 부문 5위, 최다 안타 공동 2위, 출루율 10위다.
김문호는 6월 한 달 동안 타율 0.267(105타수 28안타)로 주춤했지만, 개막 이후 두 달이 넘도록 4할 타율을 지켰다. 4~5월 두 달 동안 타율 0.406(187타수 76안타) 2홈런 26타점 21볼넷 31득점으로 펄펄 날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꼴찌 후보'로 거론되던 넥센 히어로즈는 기량을 만개한 선수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특급 소방수'로 거듭난 김세현(29)이다.
시속 150㎞대 힘있는 직구를 던지면서도 제구가 불안해 고정된 자리를 갖지 못했던 김세현은 지난해 9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시즌을 접고 항암 치료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이후 이름을 김영민에서 김세현으로 바꿨고, 올해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손승락의 롯데 이적으로 뒷문이 빈 넥센의 새로운 마무리 투수로 낙점된 김세현에게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올 시즌 전반기 42경기에서 39⅔이닝을 소화하면서 26세이브(2승) 평균자책점 3.18로 넥센의 뒷문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블론세이브가 6개로 적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김세현은 전반기 세이브 부문에서 2위 이현승(두산·20개)에 6개나 앞선 선두를 질주하고 있어 구원왕까지 바라보고 있다.
넥센 타선에서는 고종욱(27)이 가장 두각을 드러냈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전체 19순위)에 넥센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를 밟은 고종욱은 빠른 발과 타격 재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상무에 입대했다가 2014년 제대했다.
지난해 타율 0.310 10홈런 51타점 25볼넷 22도루 81득점을 기록하며 기량을 꽃피운 고종욱은 올 시즌 전반기에 2번타자로 꾸준히 나서면서 타율 0.356 7홈런 51타점 16볼넷 15도루 60득점을 기록하며 '호타준족'으로 자리잡고 있다.
넥센 선발투수진에서는 신재영(27)이라는 독보적인 신인왕 후보도 등장했다.
대전고, 단국대를 거쳐 2012년 NC 다이노스에 입단한 신재영은 2013년 넥센으로 트레이드 됐다가 이후 경찰청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지난해까지 1군 등판 기록은 전혀 없었다.
신재영은 올 시즌을 앞두고 부상과 이적 등으로 넥센 마운드에 빈 자리가 생기면서 선발 한 자리를 꿰찼고,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공이 빠르지는 않지만 그는 예리한 제구력을 앞세워 전반기 17경기에 선발 등판, 10승3패 평균자책점 3.33의 성적을 거뒀다. 넥센에서 토종 투수가 10승을 거둔 것은 2009년 이현승 이후 7년만이다.
탄탄한 수비력 덕분에 1군 무대를 밟았으나 타격 재능까지 선보이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2015년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10라운드(전체 102순위)로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외야수 김호령(24)은 리그 정상급으로 평가받는 외야 수비 덕에 지난해 103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타격 성적은 0.218 1홈런 21타점 15볼넷 11도루 31득점으로 아쉬웠다.
김호령은 올 시즌 타격에서도 기량을 한껏 뽐내며 부끄럽지 않은 1군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김호령은 올해 전반기에 63경기에서 타율 0.291(258타수 75안타 4홈런 22타점 16볼넷 11도루 37득점으로 활약했다.
역시 타격보다는 수비 덕에 2012년부터 SK 주전 한 자리를 꿰찬 김성현(29)은 그간 타격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 시즌 전반기에 타율 0.342(295타수 101안타) 5홈런 41타점 21볼넷 42득점으로 매서운 타격을 선보여 SK 하위타선의 핵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