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원하는 걸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은 수십배 더 매력적이다.
인문학 박사, 헬스 트레이너, 문구 디자이너, 전직 출판사 직원. 8일 오후 찾은 서울 마포 광흥창역 인근 '나무와늘보' 목공방에서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나무와 씨름하고 있었다. 9일 오전 찾은 헤펠레목공방 목동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의사와 대기업 직원부터 전직 은행원, 주부, 가구 디자이너 지망생까지 한곳에서 흔들의자를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원목을 재단하고 다듬고 있었다. 직업도 나이도 목공을 시작한 이유도 각기 다르지만 눈에 담긴 진지함은 같았다. 이들이 목공에 빠진 이유를 들었다.
아이 또는 손자·손녀를 위해 가구를 만들어준다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소재로 가구를 만들 수 있어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섬유판(MDF·나무의 섬유질을 접착제와 함께 열처리해 만든 소재), 파티클보드(PB·나뭇조각을 접착제로 붙여 만든 소재)로 만든 가구가 싫어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게 공통된 답변. 이런 소재는 제조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들어가 유해물질이 나온다. 제재목과 집성목(최소한의 접착제로 제재목을 이어붙인 소재)을 써서 가구를 만들 수 있으니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물질이 훨씬 적다고 한다. '두더지공방'의 박경래(44) 목수는 "한국 중소 가구업체들은 자재 등급 E1 수준 목재를 쓰는데 이는 미국·유럽 기준으로는 유해물질 배출량 초과"라며 "목공소에서는 대부분 E0, SE0 등 상위 등급 목재를 쓴다"고 했다.
“집에 얼추 맞기는 해도 딱 맞는 기성 가구는 없어요. 집에 딱 들어맞는 아이 옷장이랑 침대 만들어주려고 목공을 시작했어요”(조관식·36).
집 공간에 딱 들어맞는 크기의 가구를 원하는 모양과 소재로 만들 수 있다. 직접 제작하다 보니 한국 소비자의 골칫거리인 ‘원가 절감’이 있을 리도 없다. 그래서 더 튼튼하다. 작년 책 ‘목수의 인문학’을 낸 신화학 박사 임병희(44)씨는 “130만원을 주고 산 소파가 6개월 만에 내려앉았다.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조립을 대충 해놨더라. 직접 만들면 그럴 일이 없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다가 목공에 빠진 이경훈(43)씨는 “사무용 책상은 신발 굽 높이를 생각해 가정용 책상보다 1㎝ 정도 높다”며 “쓰임새에 맞춰 직접 가구를 만들어 쓰니 몸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올해로 6년째 헤펠레목공방 목동점에 나오고 있는 강희찬(60) 정신과 전문의는 “매주 한 차례 8시간 동안 집중하다 보니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탁월하다”고 했다. 퇴직 후 목공을 시작한 서충석(64)씨도 “퇴직하고 몇 년 동안 산악회 활동도 해봤지만 목공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는 “목공을 시작하고서는 하루를 무료하게 보낸다는 생각이 사라졌다”며 “새로운 작업법을 익히고 새로운 가구에 도전하다 보니 집중력 향상과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서 쓰는 생활만 하는 현대인에게 만들어 쓰는 목공은 매력적이다. 임병희씨는 “남이 만든 물건을 사서 쓰기만 했지 직접 만들어 쓰는 게 없다는 생각에 목공을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이 현실 에서 구현되는 데 쾌감을 느낀다는 말도 공통적으로 나왔다.
당일치기 목공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하자 두더지공방 박경래 대표는 다리가 둘 달린 스툴(등받이가 없는 의자) 제작을 권했다. 나사못을 드릴로 박아 조립하는 과정은 차라리 쉬웠다. 목공은 마감 작업이 절반이다. 같은 재료, 같은 사이즈로 만드는 가구일수록 마감에 얼마나 공을 들였느냐에 따라 질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샌더(전동 사포)가 있지만 모서리 부분은 일일이 손에 든 사포로 매끈하게 만든다. 균일한 힘과 각도로 사포를 움직여야 하는데 팔과 어깨 힘이 부족하다 보니 간단치 않았다. 사포를 들고 낑낑대자 공방 주인이 와서 시범을 보였다. 금방 모서리가 둥글둥글해졌다. “팔에 힘이 없어서 그래” 그가 말했다. 목수의 강인한 팔뚝이 부러웠다.
내 맘에 쏙~ 드는 맞춤형 스툴 만들기
편백나무로 만든 침대, 참나무로 만든 TV장, 아이를 위한 맞춤 서랍장…. 주말 목수 생활만으로도 손수 만든 원목 제품으로 집 가구를 바꿔나갈 수 있다. 꾸준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전국에 80여개 지점이 있는 헤펠레목공방은 DIY 목공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교육기관이다. 1923년 독일에서 시작된 글로벌 하드웨어 기업 헤펠레의 독일·유럽식 가구 제작 방법과 비결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4개월 기간의 전문가 교육과정 가격이 200만원 수준으로 다른 공방보다 비싼 편이다. 목수 경력이 40년 가까이 된 유우상 대표가 운영하는 헤펠레목공방 목동점은 전문가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과 함께 해외 유명 작가의 가구를 만들어보는 자율 목공 수업을 진행해 인기다. www.diyhafele.co.kr, 서울 양천구 신목로 12길 12. (02)2464-0075
본인이 원하는 가구의 도면을 직접 그린 뒤 가구를 완성하는 '내맘대로목공'반을 1회 3시간씩 8회 진행한다. 강의 절반이 이론 수업이다. 나무의 성질, 가구의 구조와 설계법을 먼저 배우고 실습을 진행해 체계적이다. 재료비 포함 약 60만원.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주중반도 있다.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면 공방 기자재를 사용해 원하는 시간에 목공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매력적. 본업보다 목공 일이 더 좋아진 사람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070-7600-7661
짧게는 2개월, 길게는 반년 가까이 이어지는 정규 커리큘럼이 부담스럽다면 당일치기로 끝내는 목공 체험(원데이 클래스)도 좋은 선택이다. 목재 재단, 도면 그리기 같은 단계는 대부분 생략하고 전문가가 재단해준 재료를 조립하고 마감 작업을 한다. 3~4시간 정도면 초보자도 그럴싸한 목재 도마, 협탁, 전등을 만들어낸다. 손재주가 없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5명 안팎의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하는데 난관을 만나면 공방 주인이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두더지공방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이수역 주상 복합 건물 지하 4층 주차장 구석에 숨어 있다. 2주에 한 번꼴로 체험 수업을 진행한다. 5만~6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원목 협탁, 도마, 전등 등을 만들어 본다. 원목 가구를 주문 제작하는 공방 주인 솜씨가 소문나 대기업 임직원도 체험 수업을 들으러 찾는다. 방배동 3001-1 디오슈페리움 지하 4층. 010-8944-3420
원목 방향제, 스피커, 액자 등 감각적인 소품을 만들어 볼 수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4만~8만원대. 초급 목수들을 위한 과정도 운영한다. 효창원로 64길 10. 010-5014-0162
나만의 원목 도마(9만원), 숟가락(7만5000원), 버터나이프(5만원)를 제작하는 수업을 한다. 드릴과 나사못을 쓰는 접합 작업이 없어 초보자가 접근하기 쉽다. 한남동 169 지하 1층, 010-2856-3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