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김민희가 부럽다고?대한민국 기혼 중년들의‘금지된 사랑’

중년 50% “홍상수 이해해요배우자만 모른다면 삶의 활력소”

결혼→권태→섹스리스→외도… “아내가 싫은 건 아닌데 여자로 안보이니”
“다른 이성에게 호감 느낀 적 있다” 78%… “호감이 외도로 이어졌다” 28%
기혼 중년들의 ‘금지된 사랑’

얼마 전 보도된 영화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의 불륜설은 요즘 중년들 모인 자리에서 최고의 화제다. “진짜래? 왜 그랬대?”란 궁금증으로 시작해 “미쳤지, 가족에게 상처나 주고”란 비난으로 끝난다. 하지만 진심일까? 본지가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30대 이상 기혼 남녀 513명에게 이들의 불륜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응답자 중 절반(49.3%)이 “이해한다”고 응답했다.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응답은 45.4%로 약간 적었다. 응답자 중 40대 이상이 75%. 기혼의 중년들은 왜 이 ‘금지된 사랑’을 이해한다고 말할까?

나는 하고 있다, 내게 금지된 것을…
“외도해봤다” 31.5%

올해 50세 된 박재명(가명·자영업)씨는 14년 연하인 거래처 미혼 여직원과 지난해부터 연인 관계가 됐다. 출장을 핑계로 함께 여행도 가고, 퇴근 후 데이트도 한다. 그의 외도는 결국 아내와 함께 있을 때 받은 휴대전화 메시지 때문에 들통이 났다. 부부 사이는 지금도 냉랭한 상태다. 박씨는 “아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여자로 보이지 않고 성욕도 느껴지지 않는다”며, “다른 여자와 있을 땐 설레고, 성관계도 원활했다. 친구들이 왜 외도를 하는지 이해가 된다”고 했다.

라이프·헬스 매거진 ‘헤이데이’와 강동우 성의학연구소가 최근 1090명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성생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31.5%가 “외도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본지가 한 설문조사에서도 10명 중 8명이 배우자 외 다른 이성에게 호감을 느꼈고(78.2%), 호감이 외도로 이어진 경우도 28.8%나 됐다. ‘성생활 설문조사’에서 외도를 했다는 비중은 남자(50.8%)가 여자(9.3%)보다 훨씬 높았다. 30대 남성(42.3%)보다는 40대 남성(48.4%)이 외도를 훨씬 많이 경험했고, 50대·60대로 갈수록 높아졌다.

강동우 박사는 “남성은 40대 중반부터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갱년기 공허감, 위축현상이 오면 오히려 어딘가에 신기루가 있는 것처럼 배우자보다 외도에 치중한다. ‘아내에게 성적흥분을 못 느끼는데, 다른 여자에게 그것을 느껴서 외도를 한다’는 중년 남성들이 많은데, 그것은 아내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다”고 했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2003·박찬옥 감독)에서 한윤식(문성근)은 외도를 하면서 “부인한테도 잘하고 애인한테도 잘하면 되지. 바람 안 피우고 부인한테 못하는 남편보다 그게 백배 더 낫다”고 변명한다. 실제 외도하는 중년 남성들의 사고 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대사다. 전문직 이정민(가명·48)씨는 애인과 통화하기 위한 휴대전화를 따로 갖고 있을 만큼 여러 명의 여성과 외도를 한 지 꽤 됐다. 아내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고, 성관계도 한다. 그는 “외도가 가정을 지속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 부인에게 갖는 불만을 바깥에서 해소하니 가정불화도 없다”고 했다.

한국심리클리닉 유유재의 이재실 대표는 “중년 남자들의 경우 아내가 모르기만 하면 외도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이 때문에 미안해서 아내에게 더 잘해주는데 뭐가 문제냐는 자가당착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도를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 이 대표는 “외도도 쾌감을 주고,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한 번 부부 간의 신뢰가 깨지면 부인이건 남편이건 상대를 계속 의심한다. 그게 섹스리스로 이어지고, 또 다른 외도로 이어진다”고 했다.

나는 못하고 있다, 내게 허락된 것을…
“배우자와 안 한다” 35.1%
영원한 사랑은 없는 걸까. 불륜설에 휩싸인 영화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의 사랑이 중년들 사이 뜨거운 화제다.

직장인 김지혜(가명·45)씨는 5년째 남편과 각방을 쓴다. 30대 초반에 결혼해서 꾸준히 성관계를 해왔는데, 30대 후반 들어 남편이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오히려 그 무렵부터 남편은 소파에서 자기 시작했다. ‘같이 샤워를 하자’고 제안한 날, 남편은 그에게 “내가 회사에서도 쪼이는데 당신한테까지 쪼여야겠어? 이제는 무섭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부터 남편과의 성관계를 포기했다.

‘성생활 설문조사’에서 성관계가 월 1회 이하이거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을 더한 ‘섹스리스’는 35.1%. 결혼 기간별로 보면 11~20년차 부부는 30.7%, 21~30년차는 37.2%, 31년차 이상은 53.9% 등으로 점차 섹스리스 비율이 높아졌다. 해외 논문에 발표된 세계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20% 수준으로, 한국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나라다.

강 박사는 “요즘처럼 경쟁과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의 성욕 저하는 코르티솔과 연관성이 있다. 코르티솔은 부신에서 분비되는 위기관리 호르몬으로 생명의 위기와 스트레스에 대응한다. 특히 일과 관련된 위기의식 등 직무 스트레스가 강하면 심신의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서 코르티솔이 상승해 자율신경계 불안정에 따른 발기 저하 및 성욕 저하 등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행복한성문화센터 배정원 소장은 “맞벌이를 하거나 육아를 하면서 바쁘고 피곤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성관계 빈도수가 확 떨어진다. 또 청소년, 성인 자녀들이 있는 경우 자녀들이 늦게까지 깨어 있다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가정주부 박혜림(가명·48)씨는 “남편과 섹스를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또래보다 일찍 결혼한 그는 성관계를 남편과 처음 가졌고, 통증 말고는 쾌감을 느낀 적이 없다. 10년간 의무처럼 관계를 갖다가 그마저도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거부하다시피 했다. 그는 “2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다가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온 남편이 다짜고짜 달려든 적이 있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나를 기분 좋게 해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로. 자괴감에 그날 밤 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풍속화가 신윤복의 ‘월야밀회(月夜密會)’. 야밤중 골목길 후미진 담 그늘 아래에서 남녀가 정을 나누는 모습이 은밀하고 애틋하다.

중년들의 경우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성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배정원 소장은 “남성들이 포르노를 보고 학습한 일방적인 섹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일방적으로 하니까 재미가 없고, 아내도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섹스는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와 대화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 없이 섹스만 강요하면 서로에게 거부감이 생기고 이는 대화의 부재로도 이어진다. 섹스는 갑자기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우리 모두 하고 싶다, 사랑을

성삼담센터나 부부클리닉에 있는 이들은 중년을 상담하면 꼭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한다. “사랑 한번 해보고 싶다, 간절한 사랑.” 취재 중 만난 외도 경험자들이나, 섹스리스인 이들도 모두 “외롭다”고,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왜 이들은 곁에 있는 배우자를 두고도 그들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배정원 소장은 “아내, 남편과 했던 사랑은 어느새 익숙해지고 열정이 식는다. 사랑이라는 건 열정이 식은 후 상대의 단점이 보여도 사랑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사랑을 열정이라고만 생각한다”고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불륜’에선 완벽한 남편과 가정을 갖고도 외도를 하는 아내가 등장한다. 그는 외도를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할 때 느끼는 행복 같은 것”이며 “조만간 그 효과는 사라지고 전보다 더한 절망이 찾아든다”고 한다. 외도를 한 아내에게 남편이 말한다. “사랑을 하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야 해. 사랑은 우리가 어릴 때 갖고 놀던 만화경 같은 거니까. 똑같은 건 없고 항상 변하지.” 사랑은 그대로인 것 같아도 언제나 변하고 있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환희나 설렘 말고도 부부가 된 뒤 경험하는 권태, 분노, 질투도 모두 사랑이 변하는 과정의 일부다.

남성 절반이 “외도한 경험 있다”
한국, 일본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섹스리스 부부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