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선수생활 끝낸 골프여왕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세리 키즈' 박인비는 "그동안 감사했어요. 우리 모두 언니를 본보기 삼아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했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리디아 고는 "여섯 살 때 한국에서 세리 언니가 골프 치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웠어요. 저의 영웅이자 세계 골프의 영웅"이라고 했다.

세리와 찬호…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 골프의 박세리와 야구의 박찬호라는 이름은 한때 단순한 스포츠 스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시름에 빠진 국민에게 그들은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박세리가 1998년 US오픈에서 어려움을 딛고 우승하는 모습,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강호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한국 사회에 전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박찬호(오른쪽)가 눈물을 흘리는 박세리의 어깨를 감싸며 격려하는 모습. 박찬호는 박세리의 이름(SERI)이 새겨진 검은색 모자를 썼다.

렉시 톰프슨(미국)은 "오늘 박세리 은퇴 경기에 동반 라운드를 한 건 제 골프 인생 최고의 영광"이라고 했다. 박세리와 비슷한 시기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박찬호를 비롯해 선동열 김세진 등 다른 종목의 레전드도 자리를 함께했다.

13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 하나은행챔피언십 1라운드가 열린 인천 영종도 스카이 72골프장 오션 코스. 한국 골프의 선구자 박세리가 선수 생활 마지막 라운드를 했다. 이날 박세리는 참 많이 울었다. 오전 10시 40분 1번홀 티샷을 하기 전 대기하던 장소에서 감정을 주체 못해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는 "어떡하지. 공이 안 보여서 못 치면 어떡하지"라고 했다. 그래도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서는 팬들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평일인데도 팬 수천명이 몰렸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시작한 지 25년 만이자 1996년 프로에 데뷔한 지 20여년 만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순간이다. 렉시 톰프슨과 중국 골프의 스타인 펑산산이 박세리의 은퇴 경기에 동반 플레이를 펼쳤다. 지난 7월 US여자오픈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대회에 나온 박세리는 첫 홀부터 보기를 하는 등 예전 같은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날 많은 팬이 'THANKS SERI'라고 적힌 은퇴 기념 모자에 '사랑해요 세리'라는 글이 적힌 빨간 수건을 들고 나왔다. "어젯밤 많은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는 그는 팬들이 "박세리 파이팅"이라고 할 때마다 울컥하는 표정이 됐다. 박세리가 15번홀(파4)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버디를 잡자 우승이라도 한 듯 뜨거운 분위기가 됐다. 이날 스코어는 버디 1개, 보기 9개로 8오버파 80타. 꼴찌인 공동 76위다. 그는 라운드를 마치고 예정대로 기권했다.

스포츠/ 13일 오후 인천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린 박세리 은퇴식에서 박세리가 마지막 홀에 공을 넣은후 공을 들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2016년 10월 13일

박세리는 대전 유성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박준철씨 권유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육상선수였던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골프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뛰어난 체력에 골프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타고난 그는 아마추어 시절 '프로 잡는 아마'로 명성을 떨쳤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92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첫승을 올렸고 여고 졸업반이던 1995년에는 KLPGA투어 12개 대회에서 4승을 올렸다. 이때 한밤 공동묘지에서 담력 훈련했다는 와전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훈련은 지독했다.

그는 1996년 KLPGA투어 상금왕에 오르며 한국 최고가 되자 세계 최고가 되겠다며 미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1997년 미국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했다. 1998년 신인상을 수상하고 2007년 한국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기사 더보기

스포츠/ 13일 오후 인천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린 박세리 은퇴식에서 박세리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손을 들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2016년 10월 13일

박세리 美 무대 은퇴하던 날

오랫동안 참고 있던 박세리(39)의 눈물샘이 터졌다.

지난 7월 9일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 2라운드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틴의 코르데바예 골프장. 박세리는 중간합계 9오버파 153타로 컷 탈락했다. 이날은 박세리의 열아홉 차례에 걸친 US여자오픈 여정이 끝나는 날이자 사실상 LPGA 투어 은퇴 무대였다.

유소연(26)과 최나연(29), 크리스티나 김(32) 등 그를 보며 골퍼의 꿈을 키웠던 '세리 키즈'와 작별의 포옹을 할 때만 해도 애써 웃었던 박세리는 전성기를 함께했던 라이벌이자 친구인 카리 웹(42·호주)에게 안겨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먼저 경기를 마친 웹은 18번홀에서 박세리가 경기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세리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박세리(오른쪽)는 US여자오픈 2라운드가 끝난 뒤 자기를 기다리던 라이벌이자 친구 카리 웹과 포옹했다. 그리고 한참 눈물을 쏟았다. 둘은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 골프의 아이콘이었다.

이날은 박세리의 열아홉 차례에 걸친 US여자오픈 여정이 끝나는 날이자 사실상 LPGA 투어 은퇴 무대였다. 그의 경기가 끝났을 땐 늦은 오후여서 팬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골프협회 임직원이 도열해 박세리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고 포옹했다. 이틀간 박세리와 같은 조에서 플레이한 최나연은 "우리가 언니에게서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유소연도 "박세리 언니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순간은 내가 TV로 본 첫 골프 경기였다"고 했다. 유소연은 2011년, 최나연은 2012년 US여자오픈 우승자다.

미국골프협회는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골프공을 손에 든 박세리의 사진을 올렸다. '생큐, 세리. 1998년 챔피언 박세리가 한 세대에 영감을 주었던 챔피언십에 작별을 고했다'는 글이 붙었다.

1998년 LPGA 투어에 데뷔한 박세리는 25승을 올리며 2007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ESPN은 "한국에서 박세리는 미국 골프의 전설 아널드 파머와 같은 존재였다"고 전했다.

박세리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오는 20일쯤 귀국할 예정이다. 8월 리우올림픽에는 여자 골프팀 감독으로 참가하고, 9월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과 10월 국내에서 열리는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등에 참가할 예정이다. 박세리는 "은퇴 후 아카데미를 설립해 한국과 아시아 선수들이 LPGA 투어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링 같은 것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설' 최경주-박세리, 리우올림픽 골프대표팀 감독 선임]

"30년 골프 인생… 때론 공허해… 다른 것도 해보며 즐겁게 살아야"

박세리는 "골프선수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가졌지만 행복한 삶은 갖지 못했다"며 "이번 대회가 미국에서 출전하는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LPGA 투어를 떠나기로 한 박세리는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30년 골프 인생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1998년 박세리우승] "최연소 챔피언" 세계가 놀라]

[스타 박세리…'21살의 당당함'이 아름답다 ]

박세리는 LPGA 투어 통산 25승을 달성하며 한국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다. 하지만 그는 "18번홀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은 정말 행복하지만 숙소로 돌아오면 늘 외로웠다"며 "지난 30년 동안 24시간 내내 골프에만 매달리다 보니 골프 코스를 벗어나면 공허함이 밀려들었다"고 말했다. 박세리는 후배 선수들에게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되 대회나 훈련이 끝나면 다른 걸 하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은퇴 후 골프 아카데미를 세워 후배들이 골프와 개인의 삶이 균형 잡힌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가운데서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US여자오픈은 1998년 박세리가 '맨발 투혼'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골프의 전성기를 연 대회이기도 하다. 미골프협회(USGA)가 은퇴를 앞둔 박세리의 업적을 기념해 특별 초청 선수로 이번 대회 출전권을 부여했다./김승재 기자

[만물상] 박세리

몇 년 전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던 박세리가 미국 동부의 LPGA 대회에 참가했다. 개막 전날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퍼팅 연습을 하다 말고 박세리가 펑펑 울었다. 놀란 아버지에게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는 골프만 가르쳐 줬지, 쉬는 법은 알려 주지 않았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딸을 골퍼로 길러낸 대표적 ‘골프 대디’ 박준철씨는 “세리에게 즐기며 골프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게 후회됐다”고 했다.

1997년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 출전중인 박세리 선수

▶국내 골프대회들은 대회 내내 코스 입구에 우승 트로피를 전시해 둔다. 박씨는 10대 소녀 세리가 출전할 때마다 트로피를 만져보고 들어가게 했다. “이 트로피는 네 것이다. 갖고 가야 한다”고 다짐을 줬다. 담력을 키워 주려고 여중생 세리를 한밤 공동묘지에 데려간 얘기는 유명하다. 1998년 US오픈 우승은 오랜 세월 모진 단련이 화려하게 피워낸 꽃이었다.

▶연장전 마지막 홀, 박세리의 티샷이 연못가 비탈진 러프에 걸렸다. 제대로 서기도 힘든 자리라 1벌타를 감수하고 공을 옮겨야 했다.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스물한 살 박세리는 대신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새카맣게 탄 종아리와 눈부시게 하얀 발, 그 강렬한 대비가 소녀의 꿈과 눈물을 말했다. 샷은 제대로 날아갔고 추가 연장전에서 그는 닷새 92홀 혈투를 끝냈다.

▶US오픈 제패는 IMF 그늘에 사위어 가던 국민에게 용기를 줬다. '맨발 샷'은 애국가 화면에 들어갔다. 9년이 흘러 LPGA 자동출전권을 지닌 세계 여자골퍼의 25%, 34명이 한국 선수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비결이 '박세리'라고 했다. US오픈 우승을 보고 골프의 꿈을 키운 초등학생들이 벌써 '2세대' 한국 낭자군으로 컸다. 작년 한일전에서 박세리와 함께 뛴 10대 막내는 그가 "신과 같다"고 했다. ▷기사 더보기

어깨 활짝 편 한국골프…박세리 '명예의 전당' 올라

1967년 설립된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려면 *10년간 투어 참가 *메이저대회 우승, 시즌 최저타상, ‘올해의 선수상’ 수상 중 1가지 충족 *명예의 전당 포인트 27점 획득 등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하면 세계 남녀 골프단체가 가입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자동으로 등록된다.

박세리는 2004년 미켈롭울트라오픈 우승과 함께 명예의 전당 포인트 27점을 채웠다.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8점(4승), 투어 대회 우승으로 18점(18승), 시즌 최저타상(베어트로피 수상)으로 1점(1회)을 각각 땄다. 박세리는 메이저대회를 여러 번 제패했기 때문에 '10년간 투어 참가' 요건만 남아 있었다. 박세리는 2007년 시즌 10번째 참가한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에서 그 마지막 요건을 채우고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기사 더보기

['맨발의 투혼' 박세리, 역대 최연소-亞최초 명예의 전당 입성]

"박세리가 골프역사 새 장 열었다"

## 절망의 순간에도 흔들림 없어...완벽한 스윙 격찬 ##

"세리 팩(Se Ri Pak)이 마침내 감정을 드러냈다. 11번홀 버디로 우승이 확정되자 손으로 눈물을 훔친 세리는 아버지 준철씨가 그린으로뛰쳐나오자 드디어 웃음을 머금었다.".

AP통신이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소식을 전 세계에 타전한 기사의 첫머리다. AP는 덧붙여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어봤다"는 박세리의 말도 함께 전했다.플레이오프를 생중계한 ESPN도 우승직후 인터뷰에서 박세리에게 "역시 오늘도 전혀 떨리지 않았습니까?"란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사진1)플레이오프 18번홀서 해저드속으로 들어간 공을 박세리가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공략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사진2)숙고끝에 물 속에 들어가 치기로 결심한 박세리가 신발에 이어 양말을 벗고 있다. 훈련으로 시커멓게 탄 종아리와는 달리 하얀 발부분이 눈길을 끈다. (사진3)종아리까지 담근채 A웨지를 짧게 잡고 침착하게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4)완벽하게 샷을 성공시킨 박세리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코스로 올라오기 위해 캐디 제프 게이블의 손을 잡으려하고 있다.

그만큼 이날 박세리는 경기도중 위기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강철얼굴'을 보여줬다. 초반부터 4타차로 뒤져 끌려간 연장전,18번홀서 공이 해저드 경사면 러프에 빠져 사실상 우승이 날아갈 뻔한 상황에서도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현지언론은 이런 대담함이 '아마추어를 상대로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창피'라는 중압감을 없애버렸다고 보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박세리의 대담함과 승부근성 외에 기술적인 면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평균비거리 250야드에 달하는 드라이버샷을 비롯, 완벽한 스윙을 구사하는 박세리가 큰 대회 경험까지 쌓으면서 향후 여자골프계를 이끌 기둥이 될 것이라는데 의문을 품지않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인 CBS스포츠라인은 박세리가 우승트로피를 받는 장면과 함께 '선반이 필요하다(SHELF SPACE NEEDED)'란 제목으로 박세리의 방에 우승트로피가 가득찰 것이라며 박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또 박세리가 여자골프계뿐아니라 스포츠계 전체를 좌우할 수퍼스타로 등극할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CNN 헤드라인 뉴스는 "박세리가 신인으로서 첫해 2개 메이저대회에서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하며 골프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세리 팩(Se Ri Pak)은 운뿐 아니라 최고 실력을 갖춘 신데렐라"라고 극찬하는 내용을 30분마다 틀어대고 있다.

USA투데이지는 한술 더 떠 "박세리와 슈와지리폰이 펼친 플레이오프와 서든데스는 LPGA상금을 PGA수준으로 올려놓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며 "미 여자골프 영웅 낸시 로페스의 뒤를 이을 수퍼스타가 탄생했다"고 전했다. /1998.07.07 US오픈 우승 직후 기사. 강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