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산하의 한 기술특성화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오성수(25·가명)씨는 지난 6월 한 하수처리 관련 업체에 현장실습을 갔다가 하루 8시간 근무시간 내내 오물이 묻은 실험 기구만 닦았다. 오씨는 "'강의실에서 배우지 못하는 현장의 실무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하루 종일 '노가다'만 했다"면서 "이런 엉터리 현장실습에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도서관에서 영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4년제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는 김윤수(24·가명)씨는 1학기에 한 대형 식품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김씨는 실습기간 3개월 중 절반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트럭을 타고 서울 곳곳의 마트를 돌면서 아이스크림과 과자 박스를 납품했다. 나머지 절반은 공장 생산 라인에서 빵과 과자를 포장했다. 김씨는 "사무직으로 알고 왔는데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현장형 인재를 키워낸다는 명분으로 각 대학이 시행하는 현장실습 제도가 원래 목적과 다르게 대학생들을 전공과 무관한 허드렛일로 몰아넣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장실습이란 대학생들이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전공 관련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학점을 인정받는 프로그램이다. 대학별로 현장실습에 대해 3~15학점을 인정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전국 391개 대학이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4년제 대학 180곳에서 지난해 현장실습을 이수한 학생은 6만6060명으로 1년 전보다 9.4% 늘었다.
대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현장 경험을 쌓고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마련하기 위해 현장실습을 신청한다. 그러나 일부 기업이 이 제도를 악용해 대학생들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고, 교육부와 대학 당국이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기 때문에 곳곳에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오씨가 다니는 대학의 SNS 익명 제보 페이지에는 "현장실습에서 부당한 처사를 경험했다"는 학생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공장 조립라인에서 하루 종일 조립만 했다" "매일 단순 노동 8~9시간씩 하고 한 달에 10만원 받았다" "방진복 입히고 하루 종일 나사만 조이게 하는 회사에 다녔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이혜원(23·가명)씨는 창업에 관심이 많아 생긴 지 1년 된 스타트업(신생 기업)으로 현장실습을 신청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이씨가 한 일은 업체를 홍보하는 댓글 아르바이트였다. 이씨는 "담당 교수에게 항의했다가 오히려 '네가 그 기업과 안 맞는 거다', '그런 일 하는 걸 모르고 간 거냐'는 타박만 들었다"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 근성을 배우는 게 현장 실습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육부는 지난 3월 현장실습의 운영 기준과 현장실습생 보호 방안을 담은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 규정'을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실습기관은 학생 전공과 관련없는 업무를 지시할 수 없다. 또 대학생들이 일반 직원과 같은 업무(실질적 근로)를 할 경우 각 업체는 최저임금액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규정들은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실습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은 주장한다. 한 달 동안 공장 조립라인에서 단순 노동을 했다는 대학생 김한영(23·가명)씨는 "한 달 동안 스티커를 뗐다 붙였다 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월 최저임금(약 126만원)에 못 미치는 80만원을 받았다"면서 "현장실습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기업이 규정을 지키면서 교육을 수행하는지 정부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육부 최승복 취업창업교육지원과장은 "현장실습은 각 대학이 주관하는 수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교육부가 관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만 문제가 심각한 경우에는 현장 조사를 나가고 학교에 경고 조처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입력 2016.07.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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