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부산지검 특수부는 국내 최대 노래 반주기 업체였던 ㈜금영 김승영(67)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김 회장은 회삿돈 총 60여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금영은 1989년 부산에서 창업한 노래방 기계 업체다. 세계 최초로 육성 코러스 반주기를 출시하며 8년 만에 국내 노래 반주기 시장 1위에 올랐다. 2000년대엔 인터넷을 통해 신곡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기술을 도입했고 무선 마이크 시스템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해외 10개국에도 진출해 있어, 전 세계 노래방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금영이 있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현재 금영은 노래방 부문을 팔아넘긴 상태다.
이번 사건은 금영이 노래 반주기 시장을 양분했던 TJ미디어의 인수를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금영의 라이벌 TJ는 1981년 태진음향이란 이름으로 금영보다 먼저 노래방 기계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6년 금영이 국내 시장의 60%를 장악하면서 줄곧 2위에 머물렀다. 국내 노래방 기계 회사는 이렇게 둘뿐이다.
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 측은 2008년 초 TJ에서 회사 인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금영의 시장점유율은 70%로 TJ를 압도하고 있었다. 솔깃한 김 회장은 TJ 인수 방법을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금영이 TJ를 인수했을 때 독과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금영 전무였던 김모(53)씨는 M&A 전문가라며 이모(58) 변호사를 김 회장에게 소개했고, 이후 이 변호사는 TJ 인수 작업을 주도했다. 김 회장은 2008년 말 TJ 인수 작업을 위해 이 변호사에게 170억원을 제공했다. 이 변호사는 한 코스닥 기업을 인수하고 그 기업을 통해 TJ를 사들이기로 했다. 이 변호사는 TJ 측과 7개월 가까이 인수 협상을 벌였으나 TJ는 끝내 계약에 응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벌어졌다. TJ 인수가 불발되자 김 회장은 이 변호사에게 그동안 줬던 인수 추진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김 회장에게 돌려줄 돈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명의로 인수한 코스닥 기업 L사에서 자금을 마련해 김 회장 돈을 갚으려 했고,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독촉이 심해지자 이 변호사는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이모(58)씨를 끌어들였다. 이씨는 이 변호사의 오랜 친구로, 여러 번 창업투자회사를 세운 경험이 있고 특히 M&A와 금융 쪽에 밝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김 회장의 빚독촉에 시달리던 이 변호사에게 L사 자금으로 김 회장의 빚을 갚지 말고 또 다른 코스닥 기업 I사를 인수하자고 제안했다. I사의 내부 자금이 더 풍부하니 그 돈으로 김 회장 돈을 갚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2009년 이 변호사는 L사 자금과 대출금 등 400억원을 들여 I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I사 자금을 빼돌려 김 회장에게 줄 돈 120억원을 갚았다. 잔금 50억원만 남은 것이었다.
이 변호사와 이씨는 I사 횡령 혐의를 들키지 않기 위해 회사 자금을 투자하는 형식으로 회계장부를 꾸몄다고 한다. 그러던 2011년 이 변호사의 동업자였던 이씨가 갑자기 암으로 사망했다.
회사 운영 경험이 없고 I사 자금을 빼먹던 이 변호사 혼자 경영을 하다 보니 한 해 30여억원 영업이익을 냈던 I사는 눈에 띄게 실적이 악화됐다.
이 변호사는 주가조작 일당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려 김 회장에게 잔금 50억원을 주려고 시도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돈 마련에 실패한 이 변호사는 2012년 자신이 대표로 있는 L사와 I사의 경영권을 김 회장에게 넘겨줬다. 김 회장은 이 코스닥 기업들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받아 금영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하지만 이 변호사의 횡령으로 껍데기만 남은 I사는 지난 4월 상장폐지됐고, 이를 살리려던 금영 측도 수십억원 재정 피해를 봐야 했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L사 역시 금영의 자금이 투입되고 있으나 적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사냥꾼에게 넘겨받은 두 회사 살리려다 금영까지 망가지게 됐다"면서 "김 회장의 범죄 혐의도 두 기업을 살리려는 시도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 쓰던 금영은 결국 지난 2월 360억원에 노래방 사업부를 분리해 판매했다. 이 사업부를 산 회사는 금영그룹이란 이름으로 노래방 기계 등을 납품·관리하고 있다. 김 회장 측은 360억원 전부를 대출금 갚는 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 역시 이번 수사에서 횡령 혐의가 적발돼 김 회장과 함께 구속됐다.
29일 김 회장 구속 소식으로 만년 2위였던 TJ의 주가는 전날에 비해 21% 오르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김 회장 측 변호인은 "경영상 옳지 않은 판단을 했고 잘못된 사람을 믿었을 뿐 김 회장이 착복한 돈은 단 1원도 없다"며 "채무 변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 측은 "기업을 살리려고 노력한 것뿐"이라며 "악질 기업 사냥꾼으로 몰려 억울한 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