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뺨치는 백수가 있다. 하루도 쉬지 않는 백수. 마케팅에 ‘빠삭’한 백수. 대기업 임원급 연봉을 받는 백수. “백수(白手) 아녜요. 부모님이 음양오행 따라 지어주신 백수(百洙)라고요.” 5년째 웹툰 ‘가우스전자’를 연재 중인 만화가 곽백수(44)씨가 말했다.

대기업 가우스전자 마케팅3부의 일상을 통해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이 웹툰은 '직장인의 만화'로 불리며 절찬리 연재 중이다. 지난 3월 시작한 시즌3도 100회를 앞두고 있다. 1997년 데뷔 이래 출근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는 곽씨는 "모든 아이디어를 신문에서 캐낸다"고 했다. "경기도 일산 작업실에서 매일 3~4시간씩 경제지면을 훑어요. 브렉시트, 업무 시간 외 카톡 금지 등 써먹을 소재가 많죠." 경영·경제 서적 보는 게 취미라고 했다. "'제3의 물결'이나 '초우량기업의 조건' 같은 책 좋아해요. 세상을 보는 가장 큰 흐름이 경제잖아요."

지난달 29일 경기도 일산 작업실에서 만난 만화가 곽백수는“직장 안 다니고 만화만 그리니 팔자 좋을 것 같겠지만 칼날 위에 서있는 거다. 인기 없으면 바로 잘린다”고 말했다. 그림은‘가우스전자’시즌 3에 소개된‘2분’‘부적’편(왼쪽부터).

[[키워드 정보] 지금은 웹툰 전성시대]

독서를 사랑했지만 학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까스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스펙은 전무했다. 1993년 강원도 고성에서 야간 보초를 서던 상병 곽백수는 생각했다. "제대하면 뭐하지… 만화나 그릴까?" 곽씨는 "원래 만화를 좋아했고, 아무 배경 조건 없어도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이라 택했다"고 했다. 데뷔 후 7년 무명 생활 끝에 2003년 한 스포츠지에 연재한 11컷짜리 개그 만화 '트라우마'로 본격 필봉을 날렸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웃기면 그만이었어요. 근데 '가우스전자'는 고민을 많이 해요. 직장인의 공감대가 얕으면 무식하다는 소리밖에 못 듣거든요."

"키를 잡고 있으면 멀미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이 저글링하는 여러 공 중에서 업무는 고무공이지만, 가족·건강·친구는 유리공이다" 같은 각종 어록을 생산해 온 웹툰은 시즌3부터 새 캐릭터를 여럿 배치했다. "왜 홍보부에 지원했느냐"고 묻는 면접관에게 "대외 업무가 많아 이직 시 유리할 것 같아서"라고 직설하는 신입사원 '사이다', 간신 같은 이사진과 상반되는 외국인 간부 '맥도날드' 등이다. 직장인의 심정적 동맥경화를 해소하려는 의도다. "생존과 존재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었어요. 그냥 회사 잘 다니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일하는지에 대한 고민요." 만화는 매회 평점 9.9점을 웃돌고 있다.

직장 웹툰 '미생'이 전국을 들썩인 2014년, 그는 속이 좀 쓰렸다. "솔직히 부러웠죠. 근데 '미생'은 제 스타일이 아녜요. 전 인생의 온기보다 냉정함을 더 많이 얘기하는 편이거든요. 아직 '미생' 다 보지도 못했어요." 꾸준히 밀고나간 곽씨의 스타일이 장기 순항하자 삼성전자·한국타이어 등 대기업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신입사원 대상으로 '직장인과 창의성'에 대해 주로 설명해요. 어른들이 '한 우물만 파라'고 가르치지만 그건 정말 위험해요. 자기 생각에 믿음을 갖고 이것저것 도전하는 게 인생이라고 봐요." 최근엔 영어학원도 다니고, 리코더까지 배웠다. 소설가가 꿈이었다는 그는 얼마 전 동화도 한 편 완성했다. "한 번 사는 인생이잖아요. 언젠가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그는 잘 웃지 못한다. 2007년 뇌신경 수술 이후 오른쪽 얼굴에 마비가 왔다. 그래도 매일 만화를 구상한다. 그는 웹툰계에서 ‘결근 없는 남자’로 정평이 나있다. 이미 한 달 치 원고가 쌓여있다고 했다. “마감에 쫓겨서 급하게 날림으로 보내는 거 싫어요. 미리미리 해놓으면 속 편하잖아요.” 한가한 백수처럼 다리를 긁으며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