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의 마음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어쩌다 저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됐을까. 1994년 아버지와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했던 희대의 살인범 박한상은 당시 20대였던 정유정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한국에 사이코패스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정유정 작가는 , , <7년의 밤>, <28>까지 계속해서 악인을 그려왔다. 하지만 늘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소설 을 통해 정면승부를 했다.

소설은 평범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유진이 피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의 몰골과 피 칠갑이 된 집 안, 그리고 1층에서 발견된 어머니의 시신…. 작가는 이번에도 정말 갈 데까지 갔다.

정유정 작가는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독자들이 과연 읽어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 우려와 달리 은 정식 출간 전 예약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고, 출간 한 달 만에 10만 부 이상 팔려나가며 출판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주인공 유진이 살인을 저지르며 피의 펄떡거림을 느끼듯, 이야기를 만들며 경이로운 희열을 느끼는 작가 정유정을 만났다.

1만 부만 넘게 팔려도 대박으로 통하는 출판시장에서 은 초판만 5만 부를 찍었다. 자신이 있었나.
자신이 있었다기보다는 걱정이 많았다. 1인칭 시점으로 자기가 사이코패스가 돼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오래전에 '사이코패스를 일인칭으로 쓰면 지치지 않고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안 힘들고 안 지칠 줄 알았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유진이한테 기가 다 빨렸다. 분노했다가 냉정했다가, 그 모든 감정적 격랑을 똑같이 경험했다. 유진이로 산다는 게 쉽지 않았다.

유진이 작가의 안으로 확 들어온 순간이 있었나.
엄마 목에 칼 꽂는 장면을 넣었다 뺐다 다섯 번이나 수정했다. 내 사고방식으로는 엄마를 두 번 죽이는 짓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윤리관과 도덕적 기준을 깨지 못한 거였다. 그때부터 사물을 보거나 행동할 때 옳고 그름, 혹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느냐 마느냐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이코패스는 실용적인 생각을 한다. 이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냐 아니냐 그 기준으로만 사물을 봤다.

작가의 말에서 유진을 나의 분신이자 내 안에 착상된 수정란이라고 표현했다. 작가에게도 아들이 있으니 유진의 엄마에게 이입이 더 심했을 수도 있겠다.
엄마의 일기 부분은 질질 울면서 썼다. 얘가 내 아들이면 어째야 할지…. 그런데 그 부분을 다 도려냈다. 이 소설은 사이코패스인 유진이 세상을 향해 펼쳐 보이는 자기 변론서다. 모든 걸 동원해서 자기합리화를 하고 독자를 설득하는 이야기다. 유진이에게 이입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다 들어냈다.

유진이 타고난 사이코패스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유진의 엄마가 다른 양육방법을 썼더라면 유진이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련일까.
소설이 유진이 시점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유진이가 같은 사안을 놓고 했던 얘기를 다 뺐다. 엄마 입장이 들어가면 유진이가 진짜 개자식이라는 걸 알아버리니까. 책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도덕이라는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유진이가 세상에 대고 말이 되는 그림을 그린 거다. 자기합리화다. 난 책임 없어, 너희들이 당할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당한 거야. 그게 사이코패스의 심리다.

작품을 쓰면서 사이코패스를 직접 만나 취재하려다가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다. 혹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정해져 있었나.
대표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유영철은 인맥으로 만날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막 유진이한테 이입하기 시작한 참이어서 유영철을 만나면 혼란이 올 것 같았다. 유진이 캐릭터를 밀고 나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대신 유영철에 관한 기록이 유진이 캐릭터에 많이 들어왔다. 유영철은 아들을 엄청나게 사랑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범죄사실을 아는 것은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아들이 자기의 해악을 알까 봐 두려워했다. 소설에서 유진이는 아들이 없으니 친구 해진이를 사랑한다. 또 유진이가 살인하기 전에 들은 음악인 반젤리스의 '낙원의 정복'도 유영철이 살인하러 나갈 때 감정을 고양시키려고 들었던 음악이다.

너무나 재미있는 스릴러 소설이지만 '사이코패스에 대한 보고서'로도 읽혔다. 이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 나에게는 문학적 도전과제였다. 3인칭으로 사이코패스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1인칭으로 그들의 내면을 뒤집어서 보여주는 소설은 없었다. 사람들 손에 안겨주고 '한번 봐봐,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직접 살도 부대껴봐, 그러면 사이코패스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라는 의미였다. 리처드 도킨스는 에서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들을 바꿀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지구상의 생물체는 인간밖에 없다'고 했다. 나도 같은 입장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악'을 이해하지 못하면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처만을 위해 쓴 소설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호모사피엔스의 다음 인류는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단다. 사회가 점점 개인주의화 되고, 우리 모두가 타인의 행복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거다. 보통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공감, 숙고, 연민이다. 전에 성형으로 얼굴이 망가진 어떤 배우가 방송에 나왔다. 그 배우는 악플을 보면서 죽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오죽 맺혔으면 얘기할까, 공감하고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거기다 대고 또 괴물이라고 악플을 달더라. 사이코패스들은 상대가 어느 정도의 상처, 타격, 모욕감을 받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 모두에게 이런 사이코패스의 요소가 잠재돼 있다. 우리 안에서 이런 성향이 점점 커질 수 있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러다 사이코패스가 다수가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징후를 찾아내고, 이야기로 만들어서 보여줄 수는 있다.

유진의 머릿속에는 청군과 백군이 산다. 천사와 악마의 개념이랑은 다르다. 청군은 실용적이고, 백군은 냉소적인데 둘이 한목소리를 낼 때도 있다. 사이코패스들에게 나타나는 정신분열의 일반적 증상인가.
아니다. 상징적인 갈등의 목소리다. 유진이 아무리 사이코패스여도 평범한 사람의 일면이 있다는 거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두 가지가 다 있다. 마음에서 평범한 인간이 제거돼버리면 우리도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가 없다. 이야기를 밑바닥에서 들여다보면 사실 겉으로는 해진이와 유진이가 친구지만 둘은 한 몸이다. 해진이는 착한 바른생활 청년이고, 유진이는 완전한 사이코패스인데 유진이가 해진이를 결국 죽여버리지 않나. 유진이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인격인 해진이를 죽이는 거다.

왜 마지막에 유진을 죽이지 않고 살렸는가.
이 소설은 유진이의 종말기가 아니고 탄생기다. 처음부터 사이코패스였던 한 남자가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던 남자가 진짜 사이코패스로 태어나는 이야기다. 여담이지만, 통계적으로 사이코패스는 일반인보다 수명이 짧다고 한다. 연쇄살인에는 냉각기가 있는데 1년, 6개월, 3개월, 1개월, 1주일 점점 주기가 줄어든다. 그러다 날마다 살인을 하게 되고 결국 감옥에 가거나 검거과정에서 죽거나 사형을 당한다. 일찌감치 사회의 통제를 받게 되는 거다.

어떻게 이렇게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쓸까 생각해보니 오히려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강한 에너지가 가득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계관이 아니라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인간을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생물체 중 하나로 본다. 간호대학에서 생물학, 해부학을 배우고 간호사로 생활하면서 육체를 직접 만지는 일을 했다. 때문에 인간을 조금 더 냉정하게 관찰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뭔지는 안다. 그런데 나는 해피엔딩이나 감동적인 이야기에는 도전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소설 하나를 쓰는 데 2년 내지 3년이 걸린다. 유진이를 생각했을 때 가슴이 뛰고, 걔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부글부글 끓어야 3년을 견딜 수 있는 거다.

그래도 정유정 작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내 소설을 좋아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7년의 밤> 때도 반응에 깜짝 놀랐었다. 이번에 을 내고서는 내 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사실 울컥한다. 이 울컥하는 마음은 소설을 쓰러 들어갔을 때 도움이 된다. 집필을 시작하면 혼자다. 소설이라는 게 능숙해지지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잘 쓰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아 패배감이 들고 외롭다. 그럴 때 독자들의 편지를 꺼내서 읽는다. 독자가 선물한 초도 켜놓는다. 버틸 힘이 된다.

책에 몰입하다 보니 인간세계에 살고 있다가 갑자기 야생에 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그로 인해 희생된다. 그래도 인간이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항상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운명의 폭력성에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사실 우리가 태어나는 것도 바깥에서 가해지는 운명이고 폭력이다. 소설을 통해 어두운 이야기를 보여드리는 건 운명의 폭력성을 자유의지로 이길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구상할 때, 취재할 때, 쓸 때, 출간하고 독자의 반응을 확인할 때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
제일 행복할 때가 뭘 쓸지 구상할 때다. 공간을 지도로 그리고 머릿속에서 인물을 장소에 배치해보고, '이런 문제적 상황에 두면 얘는 이런 행동을 할 거야' 그럴 때가 제일 재밌다. 쓰기에 들어가면 마음대로 못 한다. 그전에 마음껏 생각할 수 있을 때, 그때가 제일 행복하다.

그래서인지 문장이나 기교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최대한 효과적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데 온 힘을 쏟는 듯 보인다. 작가에게 문장은 목표라기보다 수단 같다.
내 소설의 목표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문장과 정확한 문장 중 하나를 택하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정확한 문장을 선택할 거다. 목적에 부합하는 문장이냐, 리듬을 잘 타고 있느냐.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추구하는 사람과는 극단적일 만큼 반대편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정유정 작가의 DNA에는 '이야기를 만들 때 희열을 느끼시오'라고 적혀 있을 것도 같다. '글쓰기 가족력'이 있나.
외삼촌이 희곡 작가셨는데 요절하셨다. 내가 작가 되는 걸 엄마가 반대한 이유가 그거다. 내 딸도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돈 못 벌고, 일찍 죽을까 봐. 어려서부터 글쓰기로 상을 타 오거나 두각을 나타내는 걸 싫어하셨고 끝까지 반대하셨다.

어머니 말에 따라 꿈을 접고 간호대에 진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에 대한 꿈이 컸던 것 같은데, 말을 잘 듣는 딸이었나.
착한 딸은 아니었는데 엄마가 되게 나를 사랑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사막에 던져도 살아 돌아오게 만들려고 호되게 키우셨다. 나는 그게 엄마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내 인생을 위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식들 중에 나를 제일 사랑했다.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동생들은 내 옷을 물려 입히거나 얻어다 입히셨다. 나한테는 초등학교 때부터 재킷하고 바지를 양장점 가서 맞춰 입히셨다. 그때는 기성복도 없었을 때다.

왜 그러셨을까?
나만 그렇게 사랑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20대에 내가 동생들의 엄마 노릇을 하게 됐다. 나한테 동생들을 맡기기 위해서 나를 그렇게 사랑했나, 젊어서부터 일찍 죽을 걸 알고 계셨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받았던 걸 동생들은 못 받았으니까.

중환자실 간호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1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마흔 넘어 등단했다. 어머니의 반대로 소설가가 되기 전에 다른 직업을 가져야 했지만, 결국 그 덕분에 지금과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바로 소설가가 됐다면 어떤 이야기를 썼을 것 같나?
아마 이야기를 쓰긴 썼을 거다. 하지만 인생 경험이 부족하고 내 세계관이 좁아서 많이 힘들어하고 고민했을 것 같다. 간호사와 회사원으로 생활했을 때의 경험들과 그때 봤던 사람들이 내 자산이다.

소설 곳곳에 우스개가 많아서 읽다가 곧잘 혼자 웃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쓰면서 유머를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심각하고 무서운 부분에서 빵 터지면 릴랙스 효과가 있지 않나. 독자들에게 '긴장 푸세요' 하는 거다. 그런데 독자들은 이야기에 휩쓸려서 내 소설이 웃기다는 걸 잘 발견하지 못한다. '어디서 웃어야 되죠?' 그러는데 알아줘서 고맙다.

지금까지 정유정 작가의 소설이 참 두꺼웠는데 이번에 얇아졌다.
이 380페이지 정도인데 사실 보다 더 분량이 많다. 출판사에서 종이를 얇디얇은 걸로 쓰고 글씨도 빡빡하게 넣었다. '이거 얇아서 금방 읽을 거야'라고 독자들 꼬드기느라고.(웃음)

출판사 은행나무와 처음부터 쭉 함께 작업해왔다.
나를 잘 안다. 다른 데서 유혹도 있긴 하다. 그런데 결혼을 해보면 그냥 살고 있는 본래 남편이 최고다. 결혼 또 해서 다른 남자랑 다시 맞추는 데 시간 엄청 오래 걸린다. 나에 대해 제일 잘 알고, 내 소설의 핵심이 뭔지 설명하지 않아도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궁둥이가 무겁다.(웃음) 한번 앉으면 잘 안 일어난다.

남편이 인세를 인터셉트해서 얼마가 들어오는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인세를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전혀 안 궁금한가?
남편이 내 통장을 갖고 출판사랑 연락하면서 인세를 직접 받는다. 일단 아들이 일본에 가 있으니까 아이 집세도 나가고, 그런 데 쓰는 거 같은데.(웃음) 나한테 말을 안 한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긴 한데 작가들이 세금을 연예인처럼 엄청 많이 낸다더라. 남편은 절세하면 나중에 나한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때리는 대로 다 낸단다. 욕심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자고 한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결혼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시집을 잘 간 편이다. 젊은 친구들한테 집안, 스펙, 직업, 다 소용없다고 말한다. 성실하고 나 좋아하는 사람이 최고다. 상식적인 말이긴 한데, 그게 진리니까 상식이 되는 거다. 20년 결혼생활을 해보니 모든 면에서 편하게 해주고 배려가 있는 남자랑 사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남자랑 사는 애들은 얼굴에서 차이가 나더라. 40대, 50대에 인상이 좋은 친구들 보면 결혼생활이 편안하다.

정유정 작가가 글을 쓸 때 남편이 장도 봐 오고 우체국 심부름도 가는 등 외조를 잘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에는 글 쓰고 있는 곳으로 만나러 쫓아왔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부부가 둘이 함께 있을 때는 보통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
우리는 상대의 얘기를 안 듣는다. 앉아서 각자 떠드느라 바쁘다.(웃음) 자기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막 이야기하고 나는 오늘 내가 쓴 걸 이야기한다. 상대 말에 대답도 안 한다.(웃음) 그런데 일단 말해서 푸는 게 재미있다. 맥주 마시고 이야기하면 한두 시간이 금방 간다. 처음에는 '내 말 안 듣고 왜 딴짓을 해!' 그랬는데 이제 안 그런다. 그런다고 안 듣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날이면 '어제 그 사람이랑 어땠다면서 괜찮아?'라고 물어보고, 뭐 그러는 거다.(웃음)

<7년의 밤> 이후에 단발머리에서 쇼트커트로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굉장히 잘 어울린다.
<28> 쓰면서 너무 일이 안 되고 힘들어서 확 잘라버린 게 이렇게 됐다. 사람이 미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아무리 벽에 머리를 박아도 안 되니까 미장원 가서 반삭에 가깝게 잘라버렸다. 지리산 절에서 글을 썼는데 처음에는 사람이 아니고 지리산 반달곰 같았다.(웃음) 산에서 내려오니 지금의 머리 길이 정도가 됐다. 괜찮다 생각해서 굳어졌다.

소설을 쓸 때 음악을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을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은 어떤 곡인가?
유진이 파트를 쓸 때는 '낙원의 정복'도 듣고 익스트림 메탈, 고딕 메탈, 심포니 메탈들을 들었다. 해진이 부분과 엄마 부분을 쓸 때는 김경호 노래를 들었다. 김경호를 엄청 좋아한다. 특히 김경호 1집은 정말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다.

작품을 끝내고 나면 다음 작품에 과제를 부여한다고 들었다. <28>을 탈고한 뒤 가졌던 과제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번 을 통해 그 과제를 성취해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28>은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가 과제였다면, 은 한 인간의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완전히 뒤집어서 보여주는 게 과제였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떠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고, 만족스럽다. 소설 쓴 지 10년이 지났다. 내년이면 신인 티를 벗는 거다. 다음에는 원숙한 소설을 쓰고 싶다.

을 탈고한 후 새롭게 부여한 과제는 무엇인가?
장르적인 활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스릴러적인 기법을 가져와서 하고 있는데 다음에는 스릴러와 판타지를 결합한다든지 장르적 형식 실험을 해보고 싶다.
 
차기작은 해양 재난 스릴러다.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나.
8월에 다시 히말라야를 가든 실크로드를 가든 어디를 한번 갔다 와야 한다. 운동을 계속 하고 있는데도 소설을 쓰면 체력이 다 소진돼버린다. 한 달 이상 장기 트래킹을 해서 힘을 쌓고 그다음에 어딘가에 들어가서 시작할 거다.

소설을 2년에 한 편꼴로 써왔다. 많이 쓰는 작가가 되고 싶나.
많이 쓰고 싶다. 그런데 안 될 뿐이다.(웃음) 독자들은 빨리빨리 냈으면 좋겠다는데 능력이 안 되는 거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
일정 간격으로 일정한 퀄리티를 가진 소설을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웃음) 꾸준히 내놓는 게 꿈이다. 또 바라는 게 있다면 '계속 한 발씩 발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 7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