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괴한들이 인질들에게 코란(이슬람 경전)을 외워보라고 강요했다. 암송을 못 한 사람들은 고문하고 죽였다."
지난 1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한 식당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인질로 잡혔다가 구출된 하스낫 카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번에는 방글라데시 다카의 외교가(街)에 있는 레스토랑 '홀리 아티잔 베이커리'에서 인질 테러를 벌여 20명이 숨졌다. IS 선전 매체 아마크는 "우리 전사들이 다카에서 20명 이상을 죽였다"면서 홈페이지에 현장 사진을 게재했다.
외신들은 이번 유혈극이 이슬람교를 국교로 믿는 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진 테러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본거지인 시리아·이라크 등지에서 연합군의 대대적 공세로 궁지에 몰린 IS가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고 분석했다.
◇코란 암송 못 하면 살해
방글라데시 당국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테러범 7명은 지난 1일 오후 9시 20분쯤 이 식당에 난입했다. 이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면서 식당으로 들이닥친 뒤 총기를 난사했다. AK-22 반자동 돌격소총 1정과 권총 4정, 폭발물, 흉기 등으로 무장한 테러범들은 종업원에게 조명을 끄도록 지시했고, 검은색 천으로 CCTV를 가렸다. 미처 달아나지 못한 종업원과 손님 35명이 인질로 잡혔다.
외신에 따르면 희생자는 이탈리아인 9명, 일본인 7명, 방글라데시인 2명, 미국·인도인 각 1명 등으로 외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이 식당은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200m, 한국과 일본 대사관에서도 불과 1㎞ 남짓 떨어져 있어, 평소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우리 외교부는 "한국인 피해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괴한들과 협상을 시도하다 별다른 진전이 없자 이튿날 오전 7시 40분쯤 특공대를 투입해 테러범 6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으며, 인질 13명을 구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2명이 괴한들이 터뜨린 폭발물 파편 등에 맞아 숨졌다. 테러를 목격한 교민 홍혜경(58)씨는 본지 통화에서 "장갑차 2대가 식당으로 밀고 들어가 인질을 구출했다"며 "경찰 진입 직전 테러범 5명가량이 식당 바깥으로 뛰어나와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20~25세 사이인 테러범들은 방글라데시 국적으로 대부분 부유한 집안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CNN은 "테러범 중 5명은 방글라데시 내 극단주의 단체 소속으로 경찰 추적을 받아 왔다"고 했다.
◇동진하는 IS, 아시아 새 거점 노리나
IS의 아시아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IS 산하 외국인 부대 '카티바 누산타라' 조직원들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시다발적 테러를 벌였다. 당시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스 등은 "올해 IS가 동남아에 근거지를 만들 것"이라며 인도네시아·필리핀 등을 후보지로 꼽은 바 있다.
아시아의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에서 잇달아 테러가 벌어지자 NYT는 "서방 정보 당국자들은 방글라데시 다카의 유혈극이 이라크·시리아에서 IS 거점이 약화된 것과 때를 같이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이달 들어 IS가 이라크 지역 주요 거점인 팔루자를 연합군에 빼앗기는 등 세력이 약화되자, '바깥 전선'인 아시아에 새 거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존 브레넌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최근 의회에서 "IS가 해외에서 테러를 저지르려는 경향이 그 어떤 때보다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실제 IS가 지난달 29일 공개한 조직도를 보면 아시아까지 세력권이 미치고 있다. IS는 주요 통제국인 시리아·이라크를 기반으로 삼고, 리비아·나이지리아·이집트·예멘·체첸·필리핀 등 10국을 중간 통제국으로 관리하고 있다. 알제리와 터키, 방글라데시, 튀니지 등 7국에는 비밀 부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IS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를 '가상적 동반자'로 보고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 1일 "IS 추종자 트위터에서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항, 뉴욕 케네디(JFK) 공항을 공격하겠다는 경고가 발견돼 해당 국가들이 비상이 걸렸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