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슈바인의 1787년 작 ‘창가의 괴테’.

독일 화가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1751~1829)의 수채화 '창가의 괴테'(1787)를 볼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15년 전 대학생 때 '독일 명작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친 선생님이다. '즐거운 책 읽기'가 그 수업의 목표였다. 수강생들은 매주 헤세, 카프카, 브레히트, 릴케, 토마스 만, 괴테 등 독일 작가들의 책을 한 권씩 읽었다. 작가만 지정됐을 뿐 어떤 작품을 읽을지는 수강생 자유였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낸 뒤 같은 책을 읽은 수강생들끼리 토론을 했다. 시험은 없었다. 오직 읽고 쓰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학기 동안 쓴 글을 모아 '나의 책'을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기말 과제였다. 선생님은 자그마하고 열정적인 분이었다. 40명 넘는 수강생 모두의 독후감을 매주 꼼꼼히 읽고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저명한 괴테 연구자로 2011년 동양인 여성 최초로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가 주는 괴테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

티슈바인은 괴테와 막역한 사이였다. 25세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명성을 얻은 괴테는 37세 때 "큰일에 매진해보고 싶다. 배우고 교육받고 싶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라며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그는 로마에 머물던 티슈바인 집에서 신세를 졌다. 그 집 창틀에 기대 골똘히 밖을 내다보는 괴테의 뒷모습을 티슈바인은 화폭에 담았다. 지금은 괴테 박물관이 된 티슈바인 집을 방문해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는 선생님은 책 '시인의 집'에서 "시인이 아니어도 누구든 창문 앞에 설 때는 세상과 자신을 짚어보게 마련"이라고 적었다.

"글 배우고 읽었으면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정년 기념 공개 강연이 지난 15일 열렸다. 학과에서 마련한 자리도, 선생님을 지도교수 삼은 독문학 전공자들이 나선 자리도 아니었다. 가깝게는 5년 전, 멀게는 16년 전 교양 수업을 들은 학생 20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준비했다. 그 수업이 각자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쓴 글로 책 한 권을 엮어 선생님께 드렸다. 30대 중반이 된 한 수강생이 스무 살을 추억하며 이렇게 썼다. "선생님 수업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오답이 아닌 정답일 수 있었다. 부족함도 특이함도 모두 문학적 해석의 하나로 받아들여주셨기에, 처음으로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수험생 시절의 나를 버릴 수 있었다."

그 수업의 중심에 괴테가 있었다. 괴테가 60년에 걸쳐 쓴 대작 '파우스트'는 수강생 모두가 읽어야만 했던 유일한 책이었다. 욕망에 가득 찬 지식인 파우스트는 영원한 젊음을 대가로 악마와 계약한다. 영혼을 걸고서라도 붙들어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 참 아름답구나" 하고 외치게 되면 영혼을 주겠노라고.

'창가의 괴테'는 널리 알려진 그림이 아니다. 대문호답게 근사한 포즈를 잡은 괴테를 그린 티슈바인의 또 다른 작품 '캄파냐의 괴테'가 대표적 괴테 초상화로 꼽힌다. 그렇지만 완성도 높은 그 초상보다 즉흥적 터치의 '창가의 괴테'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아마도 그림 속 괴테가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몰입 순간 때문이리라. 오래전 청춘의 수업 시간, 책 읽기로 정신의 고양을 맛볼 때면 찾아왔던, 영혼을 내주고서라도 붙잡고픈 아름다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