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휴식'이 없는 삶

주위를 둘러보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또는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에 열중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손 안에서 넘치는 정보를 쉽게 얻고,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등 삶의 전반이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우리의 생활은 편해졌지만 또 그만큼 피곤해졌다. 이에 휴대폰 중독이라는 뜻의 '노모포비아'라는 말도 생겼다.

업무 시간 끝나도 울리는 '카톡'…
직장인 62% "스마트폰 불편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 3월 17~21일 직장인 1,040명을 상대로 업무 시간 외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95%에 ±3.1%포인트다.

응답자의 62.3%(648명)는 스마트폰이 '항상 연결'돼 있어 불편이 늘었다고 답했다. 이중 57.6%는 카카오톡·라인 등 모바일메신저가 불편함의 주범이라고 꼽았다. 이 외에 23.1%는 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인스타그램 등 SNS를, 17.3%는 전화·문자를, 2%는 이메일을 꼽았다.

"최근 스마트폰 보급과 메신저 등의 보편화로 스마트워크 시대가 열렸지만 정작 근로자들은 퇴근 전·후를 불문하고 '항상 연결(Online)'상태로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메신저 강박증'을 호소하는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고 야간과 휴일에 직장에 나오거나 집에서도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근로자 사생활 침해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국회에서는 퇴근 이후 스마트폰 메신저나 페이스북 등 통신수단으로 업무지시를 내릴 수 없도록 하는 '퇴근 후 업무카톡 금지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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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매, 디지털 신종 증후군… 병(病)까지 생기는 생활

뇌가 IT기기에 의존해 혼자서는 제 기능을 잘 발휘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디지털 치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태블릿PC 등의 전자기기를 오래 사용하여 생기는 거북목 증후군, 손목 터널 증후군 등의 각종 질환은 이 시대 신종 질병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왼쪽)그림=김도원 화백, (오른쪽)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그래픽=이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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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찾으려는 사람들

디지털 기기가 생활 편의의 질을 끌어올렸지만, 오히려 '인간이 기기의 노예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상에서 현대인들의 디지털 기기 의존도는 높아졌다.

최근 디지털 기기 의존과 중독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미국에서 시작한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 운동이다. 기기들과 잠시라도 멀어짐으로써 정신적 여유를 회복하자는 것이 운동의 목적이다. 나흘 동안 모든 디지털 기기를 반납하고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미국의 '디지털 디톡스 캠프'가 그 예다.

그러나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업무연락도 메신저로 주고받는 세상에서 모바일을 통해 맺은 인맥(人脈)을 포기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10명 중 6명은 스마트폰 때문에 분노, 짜증 등 심리적으로 불안한 증세를 느끼면서도 이를 중단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다름 아닌 이런 상태를 '과의존'이라고 부른다. 바로 '디지털 단식'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단식이 필요하다 느낄 때, 혼자 끙끙거리기보다는 주위에 "스마트폰 사용을 잠시 줄이겠다"고 알리고 양해를 구하면 오해를 피할 수 있다. 주말에 온 가족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면, 가족들의 동참도 필수다. 적어도 가정에선 스마트폰을 쓰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 일단 한번 스마트폰을 '끊어본' 사람들은 오히려 디지털 기기를 더욱 편리하고 즐겁게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입을 모았다.

[디지털 중독, 처음엔 다들 "내가 그럴 리가"]

디지털 단식 4주,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사는 아들을 보고 김난희씨네 집은 온 가족이 단식을 실천하기로 합의했다. 디지털 단식에 앞서 한 달은 아이에게 필요성을 설명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의 컴퓨터·스마트폰 사용 횟수와 시간을 조금씩 줄였고, 본격적인 4주간의 디지털 단식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강제 조치'에 들어갔다.

먼저 컴퓨터 책상 앞 의자를 치웠고, 스마트폰 배터리는 빼서 숨겨놓았다. TV 전원도 뽑았다. 단, 일주일에 2시간 주말 TV시청만 허용했다. 부부도 퇴근하면 현관 입구에 만들어놓은 '디지털 존'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았고, 급한 용무가 있을 때만 이유를 설명하고 현관에 서서 잠깐씩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김난희씨 가족은 5월 한달 간 거실 한 켠에 온 가족의 스마트폰을 모아 놓는 ‘디지털 존’을 만들어 활용했다. 스마트폰은 잠시 제쳐 두고 김씨와 아들 익환군이 주방에서 함께 요리를 만들고 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주말에 가족의 할 일이 무궁무진했다. 함께 책을 읽고 요리를 했다. 줄넘기, 자전거 타기, 산책 등 야외 활동도 늘었다. 매일의 활동은 계획표에 기록했다. 5월 한 달 동안 아들은 딱 두 번 "게임이 하고 싶다"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4주째에 이르자 약속을 지켜낸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6월 들어 다시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했지만 아이는 지금도 약속한 '하루 20분'을 넘기지 않고 있다. 김씨는 "한 달 동안의 디지털 단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효과는 예상외로 컸다"며 "단순히 아이에게서 기기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마음의 준비를 통해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퇴근하면 '비행기 모드'… 폰에서 눈을 떼니 부부가 대화를 한다

퇴근 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많고 대화가 줄어, 이는 사소한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되곤 했다는 이성규씨는 스마트폰 단식을 결심했다.

이씨의 단식법은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스마트폰의 비행기 탑승 모드를 켜는 것이다. 단식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사용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예 스마트폰 전원을 끌 수도 있지만, 저장해둔 음악을 듣는 등 다른 기능은 필요했다. 습관적으로 알림 메시지에 반응하고 스마트폰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줄면서 부부는 대화가 늘었다. 영화를 보거나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이씨는 "처음엔 꼭 필요하거나 급한 연락을 못 받을까봐 불안했는데, 아침에 비행기 탑승 모드를 해제했을 때 대부분은 아무 일이 없었다"며 "단 몇 시간이라도 집에서 비행기 탑승 모드를 해두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되찾는 '디지털 단식']

폰 끄고 숲으로… 디지털 치유

디지털과 멀어지기 위해 일상에서 떠나보는 것도 디지털 단식을 실천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최명수(가명·53·서울 서초동)씨는 얼마 전 강원도 홍천의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이틀간의 디지털 단식을 즐겼다. 최씨는 "처음엔 불편하고 허전했는데, 자연 속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무신경해졌다"며 "아무런 방해물 없이 우리 가족 네 명만 생각하며 지낸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은 잠시 꺼놓고 숲 속을 산책하는 에코 힐링 프로그램 참가자들

[아예 일상에서 벗어나 볼까]

생활 속 작은 실천법

마음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부터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자극적인 정보에 길들여진 두뇌가 다시 올바른 균형 감각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 것 중요하다.

1. 평상시, 스마트폰을 대하는 '관점'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없어서는 안될 '동반자'라는 생각보다 내 의지대로 제어할 수 있는 기기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2. 각종 메신저, 소셜 미디어 등의 알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기보다는 업무와 상관없는 관계 중심의 서비스들은 과감히 알림 기능을 비활성화한다.

3. 기본적인 기능은 단축키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번호를 누르고, 구구단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계산은 계산기에 의존하지 않고 암산으로 해 본다.

4. 강제적으로 스마트폰 기능을 제한해 주는 중독 예방 앱을 사용하거나, 스마트폰을 잠시 다른 곳에 두고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는 등 자신만의 규칙을 만든다.

[정신적 퇴행 막고 싶다면 정보를 차단하고 쉬어라]

[주말에 한 시간만 '디지털 디톡스' 해보세요]

[와세다대 MBA교수 엔도 이사오… "디지털 단식하고 현장을 뛰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