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30부(재판장 강영수)가 20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국립소록도병원을 찾았다. 강제 낙태, 단종(斷種·정관 절제) 수술 피해를 본 한센병 환자 13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심리하는 특별 재판을 열기 위해서였다. 법원이 한센인 관련 소송에서 사건 현장인 소록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센인 80여명이 방청석을 메운 가운데 원고 측(한센인 측) 대리인 박영립 변호사는 "이번 재판이 강제 단종 수술 등 해방 후에도 계속된 정부의 불법행위를 드러내고, 원고들의 한과 상처가 치유되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한센인의 恨이 서린 이곳… 서울고법 민사30부와 변호인 등 재판 관계자들이 20일 오후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예전에 이곳에선 병원 의료진이 한센병 환자들에게 낙태·단종 수술 등을 했다.

피고(정부) 측 박종명 변호사는 "낙태와 정관 수술은 강제가 아니었다. 불법행위를 했다고 지목된 사람들은 한센인을 평생 돌본 의료진"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원고 당사자로 출석한 A(여·74)씨는 "40여년 전 임신을 했는데, 어느 날 병원 관계자가 불러 임신 사실을 확인하더니 이틀 후 마취도 없이 수술을 했다"면서 "소록도에서 살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소록도에서 한센인에 대한 강제 낙태·단종 수술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 2007년 한센인 피해 사건의 진상 규명 및 피해자 생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이후 피해 한센인 500여명은 국가를 상대로 모두 5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단종 수술 피해자에게 3000만원, 낙태 수술 피해자에게 4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불복하면서 현재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