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에서 5000만원가량을 빼내 쓴 송씨는 이후 돈이 생겨도 갚지 않고 수익률이 괜찮다는 펀드와 적금에 덜컥 가입했다. 또 작년 말에는 "연말정산 혜택을 보려면 꼭 가입하라"는 친구 애기를 듣고 IRP(개인형퇴직연금) 상품에도 300만원을 넣었다. 빚을 낸 돈으로 적금과 연금을 넣은 셈이다.
요즘 결혼 적령기인 20~30대 직장인 중에는 송씨처럼 무턱대고 빚을 내 '생각 없는 재테크'를 하다 감당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입사 후 한동안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이제 차를 사야 하고, 몇 년 더 흘러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 도움 없이 아파트 한 채 전세금이라도 마련하려면 빚 없인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데 돈을 쓰면서도 남들처럼 부동산·주식 재테크를 하려고 해도 빚을 낸다. 주식·채권 등을 담보로 하는 예탁증권 담보 대출 잔액은 6월 현재 12조2360억원으로, 2012년 말에 비해 71.6%나 늘었다.
빚을 줄이는 재테크, 빚을 내서 하는 재테크를 동시에 뜻하는 '빚테크'에도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이 원칙들을 잊고 생각 없이 빚테크를 하다보면 본인도 모르는 새 갚기 힘든 '나쁜 빚'만 잔뜩 불어나 있을 수 있다는 경고다. 새내기 직장인들의 '빚테크' 방법을 7개의 질문으로 풀어봤다.
빚을 내기 전에 '개인 재무제표'를 만들어야 한다. 너무나 기초적이고 당연하지만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잘 지키지 못하고 있는 첫 번째 원칙이다. 은행 계좌, 증권사 계좌 등에 분산돼 있는 본인의 유동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해야 대출 규모도 정확히 산정할 수 있다. 대출 현황, 예금, 보험 등을 놓고 자산과 부채를 구분해야 한다. 주택청약예금을 깨서 고금리 대출 이자를 갚는 것이 빚테크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시중에는 간편한 스마트폰 자산관리 애플리케이션도 나와 있고, 엑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한 번만 정리해둬도 추후 업데이트하기 편하다.
금융권 대출을 받았다면 자신의 소득에 비해 대출 규모가 적정한지를 따져야 한다. 통상 총부채는 자기 재산의 40%, 주택 관련 부채는 30%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주택담보대출 부채의 적정선은 연 소득의 1.5배 이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연 소득이 5000만원이라면 가급적 7500만원을 넘진 않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신용대출 등 소비성 대출은 소득의 20% 이하여야 큰 부담이 안 된다.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은행마다 다르다고?
빚테크의 목적을 확실히 세우고 필요한 액수를 계산했다면 어디서 어떻게 대출을 받을지 결정해야 한다. 과거엔 신용등급이 좋으면 은행, 나쁘면 저축은행을 찾았다. 그렇지만 최근엔 보험사 대출 등도 선택할 수 있다. 보험사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은행과 금리 차이가 없으면서 중도 상환 수수료도 면제받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상품한눈에' 사이트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개인신용대출, 주택금융공사대출 상품 정보를 자신의 조건에 맞춰 검색할 수 있다.
▷개인신용등급,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하셨죠?
▷低금리에 낮아진 은행 문턱… "6등급도 환영"
금리 인상기인데 대출 기간이 길다면 고정금리 상품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금리가 내려갈 때는 그 반대로 변동금리가 유리하다. 어떤 상품이 본인에게 유리할지 금리를 기준으로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도 금융사별 금리를 늘 주시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저금리 대출 상품으로 갈아타기'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했는데 증시가 하락장에 접어들며 손실이 발생하거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위험은 늘 존재한다. 적절한 레버리지(차입)를 활용한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지만, 금리를 감안할 때 레버리지를 얼마나 늘릴지, 투자처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국내 경제 지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와 환율 등도 주시해야 한다.
빚 갚는 순서를 잘 정하는 것도 빚테크의 기본이다. 금리가 높은 것부터 하나하나 갚아나가되, 금리가 같다면 대출 금액이 가장 적은 것, 대출 기한 만기가 가장 빠른 것 순으로 갚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사채, 현금서비스, 제2금융권 신용대출, 카드론, 제1금융권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 순으로 갚는다. 다만 연체가 오래된 대출을 비롯해 개인 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빚은 예·적금을 깨서라도 최우선순위로 갚는 것이 좋다. 신용등급을 관리하는 것도 빚테크의 기본이다.
기본적으로 빚은 가급적 빨리 갚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목돈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수입을 빚을 갚는 데만 쓴다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매달 부채 상환액은 월 순소득의 40% 이하가 적당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직급별 재테크의 정석
재테크에도 '직급'이 있다. 직급에 따라 재테크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갓 입사한 평사원과 퇴직을 코앞에 앞둔 부장이 똑같은 재테크를 한다면 성적표가 좋게 나올 수 없다. 신입사원 시절에 시도해야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과장이나 부장 때 높은 효과를 보이는 비방은 따로 있는 법이다. '유리지갑 재테크'의 핵심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소득 규모가 커지지만, 그만큼 지출 역시 비례해서 늘어난다는 데에 있다. 내 직급에 맞게 투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원~대리: 1000만원 선서부터 하라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거나 몇년 되지 않은 사원이나 대리는 회사일에 대한 각오만 다질 게 아니라 '1000만원 선서'에 나서야 한다. 딱히 모아둔 자산이 없다면 '올해 안에 1000만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부터 세우란 것이다.
재테크의 승패는 사원 시절에 누가 먼저 더 빨리 1000만원을 모으느냐에 달렸다"면서 "모수(母數)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에 악착같이 절약해 종자돈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갚아나가는 경우, 보너스 등 예상외 수익이 생길 때마다 상환하도록 하자.
◇과장: 4년이 미래를 좌우한다
출산·양육·휴직·이사 등 주변 변화가 가장 많은 시기다. 하지만 맞벌이인 데다 교육비와 같은 목돈도 많이 들지 않아 재테크에 있어선 최고의 타이밍이다. 본격적인 재테크가 가능한 4~5년간의 과장 시절에 얼마나 비축해두었느냐가 향후 재테크 성패를 결판 짓게 된다. 씀씀이를 줄여서 월급 절반은 저축한다는 독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과장 시절엔 '내 집 마련'이 최고의 화두가 되는데, 이때 방향을 잘 정하도록 하자.
◇차장: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라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섰지만 매일 과중한 업무에 쫓겨 제대로 된 재테크는 쉽지 않은 시기다. 맞벌이를 해왔던 가정도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외벌이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수입은 줄어드는데, 자녀 교육비는 무섭게 늘어나니 재무구조는 늘 마이너스(-)다.
"차장 땐 생활자금과 교육자금 지출이 많아 추가적인 재테크는 어렵지만, 보너스 등으로 일시적인 여유자금이 생길 때마다 대출상환 등 재테크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아파트를 30~40평대로 갈아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경우도 많아지는데, 이때 과도한 빚을 지게 되면 '워킹푸어(근로빈곤층)'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부장: 재테크 빙하기 탈출법은
"눈앞에 퇴직은 보이는데 아들놈은 1년짜리 어학연수 간다고 하고 부모님은 편찮으셔서 입원하신다고 연락 오고…. 돈 들어갈 데가 많아 감당이 안 되네요."(40대 대기업 부장) 이 시기는 대출 이자에 아이들 학원비까지 내면 통장 잔액이 바닥이 나다 보니 자포자기 심정에 빠지기 쉬운 '재테크 빙하기'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철저하게 관리해야 부부의 노후가 고달파지지 않는다.
"절박한 심정에 주식 한 방으로 인생역전을 꾀하겠다는 무모한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철저한 분석 없이 투자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면서 "부장은 주식에 투자해 실패하면 손실을 만회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적 여력이 있다면 아파트보다는 은퇴 후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가·오피스텔 같은 수익형 부동산 매입에 나서볼 만하다. ▷기사 더보기
결혼자금 마련위한 '新캥거루族' 재테크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김모(27)씨는 월급의 70% 이상이 자동이체로 넘어간다. 신입 사원 연수 중이라 정식 월급의 85%만 받고 있어 세금을 뗀 실수령액은 월 200만원 남짓 된다. 여기서 150만원은 은행 적금(100만원)과 펀드(25만원), 주택청약·종신보험(15만원), 증권사의 CMA(종합자산관리계좌·10만원) 등에 들어가고, 통장에는 달랑 50만원 정도만 남는다. 식비와 통신비 등 잡비를 충당하기에는 모자라기 일쑤다. 김씨는 그래서 아버지의 신용카드로 매달 10만~20만원을 긁는다. 그는 "저금리 시대라 수익률이 낮아져 이렇게 모아도 3년 뒤에 겨우 7000만~8000만원 정도를 모을 수 있다"면서 "장가갈 때까지는 부모님께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바늘귀보다 뚫기 어렵다는 대기업 입사에 성공하고, 월급의 70~80%를 저축하면서 부모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사회 초년생들이 늘고 있다. 부모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월급이 적고 불안정한 비정규직 등에 취업을 해 부모의 지원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캥거루족(族)'과는 다르다. 결혼 자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재테크에 올인하는 신입 사원들, '재테크 캥거루족'이 출현하고 있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