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後代)가 20세기 전후를 아우르는 상징물을 단 하나만 꼽는다면,
그건 청바지일 수밖에 없을 것"
- TBWA 대표 박웅현 -

"제임스 딘의 청바지와 티셔츠 20세기 '최고의 패션'" 
-미국의 인터넷 영화 사이트 E! Online' 발표-

"아직도 청바지 입고 노래 불러달라는 사람들 많아"  -가수 양희은-

텐트 천으로 만든 바지

1853년, 최초의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에서 금을 캐던 금광의 광부들이다. 남북 전쟁(1861~1865)이후에는 동부의 농업 개척자들과 서부의 광부들인 카우보이들이 주로 입었다.

이후 청바지는 주로 청년 세대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젊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재는 모든 연령대, 모든 계층이 입는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옷이 되었다. IT업계에서는 공식석상에서 청바지를 입기도 한다. 청바지가 시대를 아우르고 세대를 초월하면서 보편적인 아이템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데는 다양한 욕구를 끊임없이 충족시키면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왜 Jean(진)이라고 부를까?

1850년대 골드 러쉬(Gold Rush)시대, 미국 전역에서 금을 캐러 온 사람들로 천막촌이 형성되었다. 천막용 텐트 천을 생산하던 독일 출신 리바이 스트라우스 (Levi Strauss)가 쉽게 찢어지는 광부들의 작업복을 보고 튼튼하고 질긴 천막을 활용해 바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범포*로 만들었으나 프랑스 님(nimes) 지방의 능직이라는 뜻의 서지 드 님(Serge de nimes) 천이 들어오면서 이를 활용해 바지를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직물로 만든 바지를 제노바 선원들이 입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제노바 도시 이름을 따서 이 바지를 진(Jeans)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있는 진(Jeans), 청바지의 탄생이다.

범포 : 세일 클로스, 또는 덕, 캔버스라고도 한다. 본래는 돛에 사용되는 천인데 현재는 두꺼운 면직물로, 산업용으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왜 청바지는 대부분 파란색일까?

청바지가 '청'바지가 된 데에는 역사적, 환경적, 경제적 이유가 숨어있다. 당시 금을 캐러 다니는 광부들을 가장 괴롭히던 것은 뱀과 파충류의 습격이었다. 파충류들이 파란색을 싫어한다는 말이 돌자 광부들은 데님을 인디고(Indigo)로 염색해서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뱀을 피하기 위해서 인디고 염료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인디고의 파란색은 대청이라는 작물에서 얻었다. 대청을 재배해 말린 다음, 사람이나 동물의 오줌에 담가 햇빛에 발효시키면 푸른색의 염료가 나왔다. 알콜을 사용했을 때 조금 더 좋은 염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알콜은 아까웠기 때문에 주로 동물의 오줌을 사용했다. 인디고는 값이 쌌고 어디에서든지 얻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한번 염색한 후 햇빛에 잘 바래지지도 않아 저소득층이나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또한 때가 잘 타지 않고 긁혀도 티가 나지 않아 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의 옷으로 적절했다.

굳이 청바지가 아니더라도 파란색은 꽤 오랜 시간동안 '서민의 색' 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교황 비오 5세(PiusⅤ)는 교회의 제례 때 파란색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어디에서든지 구할 수 있는 색이라는 이유로 '고급' '특별함'가 거리가 멀고, 평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30년대에는 사무직 노동자를 '화이트 칼라', 육체 노동자를 '블루 칼라'로 부르면서 파란색은 명실상부한 노동자의 색깔이 되었다. 파란색이 노동과 함께 태어난 청바지의 색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

1950년대는 산업화와 전쟁으로 인한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청바지가 직업과 성별을 초월한 유니섹스 패션으로 보편화되는 시기였다. 또한 세계1·2차 대전을 겪고 대량생산 시기를 거치면서 상징을 더한 대중적인 옷이 되었다. 전쟁 이전 청바지가 '입을 것이 없어서 입는 옷', '작업에 편리해서 입는 옷'이었다면 전후에는 청바지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와 강인함'을 강조한 이미지가 부각됐다. 전쟁으로 인해 잃었던 자유와 전쟁을 이겨냈다는 강인한 이미지는 말론 브란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거쳐 제임스 딘에서 정점을 찍었다.

1953년 영화 '위험한 질주' 등장인물들이 청바지를 입고 있다 (좌), 1955년 영화 '이유없는 반항' 속 제임스 딘 (가운데·우)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반항적인 청춘을 연기했던 제임스 딘, 록큰롤의 황태자 엘비스 프레슬리가 청바지를 입고 나오자 청바지는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기성세대들과 다르다는 점을 청바지 패션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엘비스(Elvis)의 이름이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의 글자 순서만 바꿔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임스 딘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이 아닌,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젊은 군인들도 주말에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반전과 평화 '히피족'

세계 대전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전쟁을 겪은 기성 세대들의 가치관에 반항하며 패션에서도 반기를 들었다. 저항 문화의 상징으로서 자신들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이 청바지였다.

1960년대 히피 문화와 함께 젊은이들은 청바지에 평화를 뜻하는 심볼 마크를 그려 넣거나 샌들 밑으로 질질 끌고 다녀 끝단이 해지게 만들었다. 반전(反戰)시위와 우드스탁(록 페스티벌)에도 청바지가 함께 했다. 그들은 직접 꽃, 피스사인(Peace Sign), 슬로건 등을 직접 페인팅한 청바지를 입고 히치하이킹을 하며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어느덧 노동자들의 일상복에서 청바지는 젊은 세대들의 이념과 가치관, 메시지를 반영하는 옷으로 진화한 것이다.

한국의 청춘, 통기타와 청바지

미국의 청바지가 퍼뜨린 저항과 청년문화는 한국에서도 그대로 퍼져나갔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70년대 대학입학과 함께 한국에서 최초로 청년문화를 만들어낸 세대이다. 독재정권으로 인한 박탈감과 저항을 담아 포크송을 부르던 이들은 청바지를 입고 자유를 그리워했다.

또한 청바지는 '젊음의 옷'이었다. 80년대에는 교복 자율화와 함께 대학생 뿐만 아니라 중고생들까지도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교복의 자리를 청바지가 대체할 정도로 '학생 패션'의 표본이 되었다.

청바지는 더 이상 노동, 저항, 젊음의 상징이 아니다. 계층과 연령에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과 체형에 따라 즐기는 아이템이 됐다. 청바지를 입었다고 저소득층 노동자로, 단순한 젊은이로, 그리고 저항의 아이콘으로 보지 않는다. 국가 원수들 간의 만남에서도 청바지가 등장할 정도로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성장했고 패션 취향 만큼이나 다양한 청바지들이 탄생했다.

시대별 청바지 유행

청바지는 유행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온 패션 아이템이다. 다른 바지에 비해 바지의 모양과 디테일이 시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60년대 청바지는 히피족의 유행과 함께 화려한 꽃무늬와 문구들로 뒤덮였다. 70년대에는 과장된 나팔바지가 유행했고, 80년대부터는 보이프렌드진, 맘진으로 불리는 밑위가 길고 헐렁한 핏의 청바지가 사랑받았다. 통이 넓고 밑단이 끌리는 힙합바지와, 무릎 아래부터 통이 살짝 넓어지는 부츠컷 청바지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몸에 딱 붙는 스키니진이 대세를 차지했다. 현재, 청바지는 복고 열풍에 맞춰 80년대 유행했던 헐렁한 핏의 청바지와 10여년 전 유행했던 부츠컷 바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브랜드 청바지

8·90년대, 청바지가 패션상품으로 통하면서 주요 소비층인 10대 후반∼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겐 '신분상징' 구실까지 했다. "어느 브랜드 청바지를 입었느냐" "얼마짜리 청바지를 입었느냐"로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

80년대 가장 많이 입은 브랜드는 '죠다쉬'이다. 시장에서 파는 이름 없는 청바지와는 달랐던 이 청바지는 당시 '나이키'와 함께 젊은 세대들에게 '멋과 부의 상징'으로 추앙 받았다. 죠다쉬는 가난한 학생의 아이템이었던 청바지를 패션과 부의 아이템 만들었다. 90년대 이후 웬만한 브랜드의 청바지 값은 7만∼9만원 수준이었다. 리바이스, 게스, 캘빈 클라인 진 등 미국 브랜드들이 인기가 높았으며 뱅뱅과 같은 국내 브랜드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였다. 브랜드 청바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이 가열되면서 20만원을 웃도는 제품들도 나왔다.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면서 '젊음'을 강조하는 청바지 브랜드 광고도 각축전을 벌였다.  80년대에는 브룩쉴즈가 "나와 캘빈 클라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말한 파격적인 광고가 화제를 모았다. 90년대, 국내에서도 수많은 청춘 스타들이 국내외 청바지 모델을 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 때 청바지 모델은 스타들의 등용문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프리미엄 진의 탄생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일어난 큰 변화는 가격이었다. 노동과 저항의 상징인 청바지가 명품 대열로 올라서면서 일명 '프리미엄 진'이라는 고가의 청바지가 탄생했다.

'프리미엄 진'은 한 벌에 30~4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청바지를 일컫는다. 브랜드 명성은 웬만한 명품 못지않다. 트루릴리젼, 세븐진, 허드슨진, 락&리퍼블릭, 조스진, 앤틱&데님, 제임스진 등 종류도 다양하다. 니콜 키드먼, 귀네스 팰트로 같은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입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유명세를 탄 브랜드들이다.

이들 제품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경. 이때만 해도 연예인이나 해외 유학파, 패션 관련업 종사자들이 주요 고객층이었다. 2003~2004년 들어서면서 일반인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로드숍에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몇 만원짜리 청바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값이 비싸졌다. 소재도 다양해졌고 무엇보다 디자인이 화려해졌다. "청바지를 입으면 다리가 실제보다 훨씬 길어보인다"는 이유로 청바지를 찾는 여성이 크게 늘었을 정도로 청바지의 디자인 개념이 활동성을 추구해온 이전과 크게 달라지고 있다.

때문에, 청바지 하나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브랜드들이 크게 늘었으며, "너무 대중적이다"는 이유로 종전에는 청바지를 취급하지 않던 고급 패션 브랜드들도 다투어 패션 청바지를 선보이고 있다. CK진,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게스 등 디자이너 청바지 브랜드 이외에 페라가모, 샤넬 등 소위 명품 브랜드들도 청바지 천 소재인 데님을 활용한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입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청바지 차림을 고수했던 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좌), 지난 2013년 방한했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우)
IT 패션의 대명사 '청바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의 공통점은 대표적인 미국의 유명 IT 인사라는 것 말고도 '청바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매일 청바지를 입은 비슷한 옷차림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스티브 잡스는 지루할 만큼 검정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수했다. 그의 옷장을 열면 두 가지 옷이 수십 벌 걸려 있을 거라고들 했다. 주커버그는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행사장에 나타나곤 한다. 그는 매번 같은 옷차림에 대해 "결정해야 할 사항을 최대한 줄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IT업계 청바지 열풍은 지난해부터 패션계를 강타한 놈코어(Nomcore)룩과 관련이 있다. 혁신의 상징인 스티브 잡스가 패션에 전혀 신경을 안쓴듯이 청바지와 기본 티로 코디한 것은 청바지와 멀어졌던 중·장년층에게도 영향을 줬다. '제임스 딘'으로 상징돼 젊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청바지에 대한 인식을 잡스가 바꿔준 것이다.

[[만물상] 富者의 옷장]

[[조명숙의 패션 스트리트] 몰개성의 보호색, IT 패션 동의하십니까?]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청바지가 일상복인 아재 홍순언 에그피알 대표, 시계와 체크무늬 재킷으로 포인트를 줘 '직장 아재' 청바지 공식을 보여준 김은 신세계백화점 브랜드 전략 담당
청바지를 입는 중년들

중년들이 청바지를 다시 입기 시작했다. 많은 중년들은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청바지를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故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보고 옷장 속 청바지를 꺼내 들었다. 사실 이들은 청바지를 입는 이유로 "익숙하고 편해서"라고 답할만큼 청바지와 가까운 세대이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교복 자율화 세대로 학창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청바지를 입었다. 특히 1980년대 국내 첫 출시된 '조다쉬' 청바지는 당시 10~20대 연령층의 최고 패션 아이템이었다.

외국계 증권사 대표 출신으로 기업 투자 전문가인 김석헌(53)씨도 대학교 때 처음 청바지를 입었다. "1학년 때부터 몸에 딱 맞는 조다쉬 청바지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게 크게 유행했죠. 청바지를 입는 것은 영화관에 가는 것과 비슷해요. 어릴 적부터 영화를 즐겨 봤던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영화관에 가잖아요. 청바지도 마찬가지예요." 89학번인 김은씨 역시 "청바지가 좋아서 입는다기보다는 집에 청바지가 있어서 입는다"고 말한다. 청바지는 젊은 사람들만 입는 바지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들 '조다쉬' 입어봤잖아 아재들의 청춘, 靑바지!]

[21만원에 나만의 맞춤형 청바지… 139만원 키톤 '블루진'은 다 팔려 ]

2008년 트루릴리젼에서 전지현을 내세워 만든 청바지(좌), 2015년 전지현을 모델로 한 유니클로 청바지(우) 늘씬한 몸매의 대표주자 전지현은 대표적인 청바지 모델로 사랑받았고, 많은 여성들에게 다이어트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청바지와 몸매

여성들에게 청바지는 함부로 선택할 수 없는 아이템이다.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몸매를 드러내는 청바지가 인기를 끌었다. 그 중 스키니진은 몸의 라인을 드러낸다는 점 때문에 각광 받았다. 같은 시기 '쌩얼'이라고 불리는 화장기 없어도 예쁜 얼굴이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청바지 역시 있는 그대로의 몸매를 드러내도 아름다울 수 있는 스키니 진이 주목을 받았다. 입기 어렵기 때문에 패션에 민감한 여성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청바지를 매력적으로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이 늘었고, 청바지는 여성스러움과 섹시함을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본래 편안함과 간편함으로 사랑받았던 청바지는 꾸미지 않는 매력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것과 별개로 여성들에게는 결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아니게 된 것이다. 수많은 브랜드들은 이 같은 현상을 재빠르게 감지해 여성의 몸매 라인을 강조한 청바지 광고들을 선보였다.

또한 몸매 보정 효과를 가지고 체형 별로 단점을 보완하는 청바지들이 등장했다. 디자인, 워싱 정도, 박음질의 위치에 따라 다리가 길이, 허벅지의 굵기 등이 달라보였다. 몸매를 결정짓는 아이템이 되면서 청바지를 살 때 만큼은 더 신중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2005 지금] 공포의 '스키니 팬츠' 10㎏ 빼고 드디어 입었다]

지난 10년간 여성들의 몸매를 죄였던 청바지는 최근 다시 통이 넓고 루즈한 핏으로 변화하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무한경쟁과 장기 불황에 지친 사람들이 차림에서만큼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청바지는 만들어진 이래 시대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초창기 광부들의 작업복으로 시작한 청바지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는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저항의 상징으로, 7·80년대에는 독재에 억압된 젊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경제가 호황이던 90년대에는 부와 개성을 나타내는 패션 아이템로 기능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입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고 있는 중이다.

[통 크게 돌아온 청바지]

[진, 더 이상 날 구속하지마]

 참고문헌  :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TBWA KOREA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