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홈런타자 김태균! 오오오오오오!"
한화의 4번 타자 김태균이 타석에 들어서면 대전 홈 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목청을 높인다. 80년대 팝 스타 릭 애슬리의 'Together Forever'를 개사한 응원가다. 김태균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가면 '홈런'을 연호하던 관중들의 바람이 현실이 된다.
이런 모습은 한국 프로야구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수천, 수만 관중들의 목소리가 하나 되는 응원가 '떼창'이다. 세계 최고 리그인 메이저리그(MLB)와 일본 프로야구(NPB)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영어 강사 커트 코넬리(34)씨는 "미국에선 상상도 못하는 광경"이라며 "한국 야구장에선 끊임없이 응원가가 들려서 경기가 더 즐겁다"고 말했다. 1990년대 시작된 응원가 떼창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 팀으로 번지더니 지금은 한국 야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올 시즌 현재 10개 구단엔 각 100곡 내외의 응원가가 있다. 잘 불리지 않는 노래까지 합하면 1000곡의 '야구 노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팀과 선수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응원가엔 '3대 조건'이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따라 부르기 쉬우며, 선수 이미지에 적합한 음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1년째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을 이끌고 있는 조지훈 단장은 "광고에 자주 쓰이는 올드팝 등 다양한 연령대에 익숙한 음악을 응원가로 많이 쓴다"고 말했다. 홈런 많은 장타자들에겐 무겁고 웅장한 곡이, 발 빠른 선수들에겐 통통 튀는 발랄한 곡이 주로 쓰인다.
좋은 곡을 선점하기 위한 각 팀 응원단장의 경쟁도 뜨겁다. 현재 프로야구 응원단장 10명은 대부분 대학교 응원단장 출신이다. 이들은 '단톡방'(카카오톡 단체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한다. 넥센 김정석 응원단장은 "평소엔 서로의 응원가에 대해 조언하는 친한 선후배지만 신곡이 나오거나, 좋은 곡을 발견하면 앞다퉈 대화창에 '찜'을 한다"고 말했다. 일단 누군가 먼저 '찜'한 곡은 침범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응원가는 공짜가 아니다.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자회사를 통해 1년에 한 번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일괄적으로 원곡에 대한 저작권료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응원가 자체에 대한 저작권도 있을까. 법적 저작권은 없지만, 관례상 구단이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팀을 옮긴 선수가 전 구단에서 불리던 응원가를 계속 쓰고 싶다면 구단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박석민(삼성→NC), 홍성흔(롯데→두산), 오재일(넥센→두산) 등이 팀을 옮길 때 응원가를 가져갔다. LG는 소속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해도 응원가를 내주지 않는 유일한 구단이다. '응원가는 선수가 아니라 LG 팬들의 것'이라는 구단 방침 때문이다.
곡 선정부터 노랫말을 바꾸고 편곡·녹음까지, 응원가 제작엔 통상 1~2주가 걸린다. 제작을 총지휘하는 각 팀 응원단장이 수백 곡 이상을 들어보고 4~5곡으로 추리면 치어리더·프런트와 협의해 최종 선곡한다.
한재권 두산 응원단장은 "지난 시즌 만든 팀 응원가 중에는 8개월 걸려서 완성한 것도 있다"며 "곡 선정을 위해 밤새워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을 때가 잦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재능 기부를 해 주는 팬들이 있다. 한화의 경우, 음악 마니아 팬이 서너 곡씩 응원가를 선별해 보내주기도 한다. 올해 신성현의 응원가도 그 곡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응원가에는 사연도 숨어 있다. LG 임훈은 '소녀의 기도'란 클래식을 응원가로 쓴다. 이 곡은 학교에서 수업 시작 알림음으로 자주 쓰이는데, LG의 선두타자인 그의 역할을 상징한다. 두산 정수빈의 응원가는 남녀 관중이 파트를 나눠서 부른다. 원곡은 남성 밴드 비치보이스의 'Surfing USA'인데, 현장에서 들어보면 "합창 연습 하고 왔나" 싶을 만큼 하모니가 절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