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결혼 2년 차 최모(여·30)씨는 지난 5일 시할머니 생신을 축하하는 시댁 모임에 갔다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미리 가계도까지 그려 시댁 어른들의 이름과 관계, 호칭을 달달 외웠지만 예상치 못하게 '남편 사촌동생의 아내'가 온 것이다. 최씨는 "내 또래라 반가워 말을 붙이고 싶었는데 혹시라도 호칭이 틀릴까 조마조마해 1시간 내내 밥만 먹다가 왔다"고 했다. 최씨가 몰랐던 호칭은 '동서'였다.
자녀가 1~2명뿐인 핵가족화 현상이 굳어진 데다 친척 간의 왕래가 줄어들면서 가족 관계 호칭을 모르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본지가 20~30대 100명을 대상으로 친족 호칭에 대한 문제를 냈더니, '아내의 남동생의 아내'를 일컫는 말인 '처남댁'을 아는 이는 16명밖에 되지 않았다.
10개 문항 중 정답률이 50%를 넘은 것은 형수(90%), 처제(87%), 매형(74%), 아주버님(60%) 등 4개였다. 반면 처남댁을 비롯해 질부(24%), 서방님(31%), 올케(32%), 매부·매제(22%), 제부(45%)는 정답률이 50%를 밑돌았다. 주로 '배우자의 형제자매'나 '형제자매의 배우자' 등 가까운 사이를 묻는 질문이었으나 정확한 호칭을 쓰는 이는 드물었다.
인척(姻戚) 관계 호칭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결혼 전 호칭을 그대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회사원 이모(28)씨는 얼마 전 형과 결혼한 형수를 여전히 '누나'라고 부르고 있다. 이씨는 "결혼 전에 누나라고 부르다가 결혼하자마자 갑자기 호칭을 바꾸기가 어색하다"고 했다. 결혼 2년 차인 최모(34)씨도 아내의 언니를 '처형'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 '○○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최씨는 "처형 남자친구까지 4명이 함께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인데 굳이 딱딱한 호칭 때문에 관계가 멀어지고 싶지 않다"며 "형식적 예의를 지키는 것보다 가족끼리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장소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시대적 상황 변화에 맞게 전통적인 가족 관계 호칭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