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모시고 축구장에 가려는데요. 함께 가실래요?"
'레전드 성우' 배한성씨(70)의 아들, '안양 팬' 배민수군(24)의 '러브콜'에 마음이 동했다. '부모님 모시고 축구장 가기', 쉬운 듯 쉽지 않은 일… K리그 8년차, 열혈 서포터의 꿈이 이뤄졌다. K리그 챌린지 FC안양과 서울 이랜드전이 열린 지난달 21일, 안양종합운동장 앞에서 안양 유니폼을 맞춰입고 '붕어빵' 미소를 짓는 가족을 만났다. 아버지 배한성씨는 "축구장에 관중으로 오긴 평생 처음이다. 우리 아들 덕분에 왔다"며 활짝 웃었다. 가족과 함께한, K리그 90분은 따뜻하고 행복했다.
▶엄마를 '에스코트 레이디'로 초대하다
올해로 '목소리 인생' 50주년을 맞는 국가대표 성우 배한성씨의 막내아들 배민수군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K리그 열혈 서포터다. 고2때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의 매력에 빠진 이후 무려 8년째. 고3때도, 대학 새내기때도, 휴학후 의경으로 복무하는 현재도 주말은 언제나 'K리그와 함께'다.
팀 취향은 특별하다. 잘나가는 빅클럽들은 안중에 없다. 그가 사랑한 첫 팀은 강원FC였다. 연고도 없는 강원의 매력에 푹 빠졌다. "고등학교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처음으로 K리그 서울-강원전을 본 후 강릉 여행에서 홈경기까지 보게 됐다. 가족같은 서포터들, 열정 넘치는 선수들에게 푹 빠졌다"고 했다. 강원 서포터 '나르샤'의 핵심멤버로 활약했던 그는 2013년 K리그 챌린지가 본격 출범한 후 '연고지' 안양으로 '이적(?)'했다. 안양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낸 배군은 이영표, 최태욱, 정조국의 '안양 리즈' 시대를 또렷이 기억한다. 고향팀이 다시 생겼으니 안양 유니폼을 입는 건 당연했다.
5월 초, 구단 SNS를 통해 21일 '레이디스데이' 에스코트 이벤트를 알게 됐다. 경기전 선수와 여성 팬들이 함께 입장하는 행사, 나이제한이 없다는 말에 배군은 어머니 신현호씨(53)의 이름을 몰래 적어넣었다. '당첨' 연락을 받은 후에야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이벤트'를 고지했다. 평소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하는 일이라면 무한지지를 아끼지 않은 '엄마'다. 신씨는 "사실 에스코트 레이디가 뭔지도 몰랐다"며 웃었다. 용기를 낸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 배한성씨도 따라나섰다. 그렇게 8년차 K리그 팬 배민수군 가족의 첫 K리그 나들이가 성사됐다.
▶K리그 팬 8년차, 가족의 첫 축구장 나들이
장내 아나운서의 코멘트와 함께, 선수 입장이 시작됐다. 15번 핫핑크 유니폼을 입은 '엄마'는 15번, 전남 드래곤즈 출신 수비수 김태호의 짝꿍이 됐다. '엄마'가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붕어빵' 배한성 부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들고 기념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부자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에스코트를 마치고 관중석에 올라온 어머니의 얼굴이 상기됐다. "민수야, 고마워, 너무 재밌다. 김태호 선수한테 '오는 공, 다 막으세요'하고 왔어."
이날 안양은 안방에서 거짓말처럼 펄펄 날았다. '엄마의 파트너' 김태호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온가족이 15번을 응원했다. 전반 20분 김태호가 상대의 결정적인 찬스를 온몸으로 막아내자 난리가 났다. "김태호 잘한다. 엄마 기운을 받아서 그래." 민수군이 엄지를 번쩍 치켜올렸다. 축구장이 처음인 부모님을 위해 아들 민수군은 끊임없이 룰과 상황을 설명했다. 스포츠 마니아인 아버지는 축구장에 폭풍적응했다. 어머니 역시 처음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적극적인 관중 매너를 보여줬다. 축구를 진심으로 즐겼다. 전반 30분 정재용의 선제골이 터지자 가족이 벌떡 일어섰다. 하이파이브가 작렬했다.
하프타임 퀴즈 이벤트, 장내 카메라가 관중석의 엄마를 비췄다. '준비된 이벤트'인가 싶어 민수군을 돌아봤더니 고개를 젓는다. 레이디스 데이, '핫핑크' 유니폼이 눈에 확 띄었던 모양. 아들의 힌트를 받아 엄마는 퀴즈를 보란듯이 맞춰냈다. 안양 구단이 준비한 상품이 빛의 속도로 관중석에 배달됐다.
후반 9분 김민균의 두번째 골이 들어갔다. 승리를 확신한 민수군이 두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빠, 엄마'와 끌어안으며 뜨겁게 환호했다. 가족의 열혈 응원이 통했을까. 결국 안양이 2대1로 승리했다. 무려 8경기만의 감격 승리, 민수군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빠 엄마가 오셔서 그래! 대~박~, 이게 웬일이야!"
이날 승리 이후 안양은 25일 대구, 1일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안방 3연승을 달렸다. 6위로 올라섰다.
▶축구와 함께 자란 아들, 부모님과 함께 즐긴 K리그
경기 직후 '애처가' 배씨는 "오늘 집사람이 이렇게 좋아할 줄은 정말 몰랐다"며 활짝 웃었다. '아들바보' 어머니는 민수군에게 "다음번에 저 자리에 한번 가보자. 저 자리가 재밌겠다"며 서포터석을 가리켰다.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온가족이 함께 나누며 가족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K리그와 함께 성장한 아들을 향한 부모의 믿음은 굳건했다. 고3때도 공부보다 축구에 미친 아들에게 배씨 부부는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배씨는 "중국 속담에 '한 가지 경험이 없으면 한가지 지혜도 없다'는 말이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지혜로운 아이를 원한다"고 했다. '열혈 서포터' 민수군에게 최고의 서포터는 어머니였다. 배씨는 "아내의 교육관이 남달랐다. 아이에게 공부만 시킬 때 잃게 되는 것들을 이야기하더라. 10대 때 가장 중요한 친구 관계도 잃고. 취미도 잃고… 공부 하나를 위해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자식을 사육하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축구에 미친 고3 아들과 함께 응원도구를 만들었다. "꽃가루를 만든다고 신문지를 끝도 없이 잘랐던 것같다"며 웃었다. 많은 청소년들이 공부 때문에 부모와 척을 진다. 공부 때문에 논쟁하고 싸운다. 어머니 신현호씨는 "'하지 말라'는 말보다는 '그래, 한번 해봐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아들이 곱상하게 생겼지만 사실 와일드하다. 독립적이고 적극적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옮길 줄 안다.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한다"고 했다. 아버지 배씨도 축구와 함께 자란, 씩씩한 아들이 마음에 든다. "아들에게 차를 사줬더니 1년에 4만 km를 뛰더라. 택시기사 못잖다. 전국의 축구장을 다 돌아다니는 거다. 축구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세상을 경험한다"고 했다.
경기후 구단주 이필운 안양시장과 김기용 단장을 우연히 마주쳤다. 배씨와 친분이 있지만 축구장 나들이를 알리지 않았던 터, 반갑게 '승리의 인증샷'을 찍었다. 축구장 1층 전시실, 배씨는 수많은 사진 속에서 눈에 넣어도 안아플 막내아들의 얼굴을 발견하곤 또다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심혈을 기울여 아들의 사진을 찍은 후 흡족해 했다.
축구장 가족 나들이 소감을 물었다. 아버지 배씨는 "오늘 젊고 잘생긴 친구(김태호)가 와이프 손을 잡고 들어가서 별로 기분이 안좋다"고 질투 섞인 농담을 던졌다. "축구장에 가족이 함께 오니 정말 좋다. 우리 아들이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알겠다. 축구장에는 젊음이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며 활짝 웃었다. 어머니 신씨 역시 "자주 아들과 축구장에 와야겠다. 집에서 15분 거리다. 탁 트인 공간에서 함께 소리 지르고 응원하니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것같다"며 미소 지었다.
부모님께 최고의 하루를 선사한 민수군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모든 것이 완벽했어요, 엄마의 에스코트부터 홈 승리까지… 8년간 K리그 팬을 하면서 이렇게 행복하고 뿌듯한 적은 처음이에요."
'부모님 모시고 축구장 가기' K리그 서포터라면 '버킷리스트'에 올려볼 만한 일이다. K리그는 사랑이다. 가족사랑은 멀리 있지 않다. '배한성 가족'이 응원하는 FC안양은 4일 오후 7시 안양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질 부천과의 맞대결에서 홈 4연승에 도전한다. 안양=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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