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에 도전하는 '디지털 통화'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현금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한 결제 수단은 그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미국 유통업체 아마존이 발행하는 아마존 코인(Amazon Coin)이나 우리나라의 민간 사업자들이 발행하는 전자화폐(e-money)가 그 예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 전자 결제 수단들에는 별도 화폐 단위가 없었으며, 이를 발행하는 기업이 현금과 일대일로 교환을 보장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금이 아니라 현금의 보완 수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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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트코인은 현금의 지위에 도전했습니다. 우선 '비트코인(BTC)'이라는 독자적 계산 단위를 갖고 있으며 1비트코인과 기존 화폐들의 교환 비율은 전문 거래소에서 매매를 통해 결정됩니다(현재 1비트코인의 가치는 미화 520달러 정도 됩니다).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은 외화(外貨)와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국내 거래에서도 환전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운반의 불편과 위험도 없습니다. 현금보다 장점이 많은 것입니다.

한편, 얼마 전에는 비트코인이 마약 거래에 사용되거나 컴퓨터 해커들이 다른 사람 소유의 비트코인을 절취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디지털 통화는 이렇듯 쓰임새 면에서도 진짜 현금의 영역에 아주 가깝게 다가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리플(Ripple)과 라이트코인(Ritecoin) 등 유사한 디지털 통화들이 속속 출현하고 사람들은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의 결제 수단에 관해 대립하는 의견

어떤 사람들은 현금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처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반면,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화폐를 시장 참가자들의 발명품으로 봅니다. 즉 시장 참가자들이 거래 편의를 높이기 위해서 현금을 고안해 냈고, 그것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결제 수단이 등장한다면 현재의 현금을 대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반면 전자 결제 수단이 현금을 대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독일 제도학파처럼 문명사회는 법률이 만든 질서를 통해 작동하며, 화폐제도도 법질서의 하나라고 보는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화폐를 시장 참가자들이 아닌 국가 주권의 산물로 봅니다.

각국은 지금보다 현금이 덜 쓰이길 바라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들은 오히려 전자 결제 수단들이 잘 보급되어서 화폐 제조 비용과 수고가 절감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과 영국 런던 등에서는 이미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을 현금으로 받지 않고 있습니다. 덴마크는 소매점에서 현금 결제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 중입니다. 이런 사례가 확산되면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 정도는 가능할 것입니다.

한국은행도 전자 결제 수단의 확산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올해 초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동전 없는 사회'에 관심과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수년 전부터 전국에 동전 교환 창구를 설치하는 등의 수고를 통해 서랍에 잠들어 있는 동전을 매년 2억8000만개 정도 회수하고 있습니다. 동전 제조 비용이 줄어들수록 한국은행의 수지는 개선되고, 그 절약된 금액은 국고에 환입되어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갑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지폐 사용까지도 제한합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2018년부터 500유로화 발행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은 1000유로 이상의 거액 거래에서 현금 사용을 이미 금지했습니다. 범죄와 테러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디지털 통화와 현금이 공존하려면

결국 미래 사회는 디지털 통화가 동전과 고액권은 대체하지만 여타 지폐들과는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공존 환경을 가꾸는 문제가 숙제로 남습니다.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지급 결제의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사업가들은 그 속에서 블루오션을 기대하지만, 각국의 정책 당국은 머리를 모아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서 있습니다. ▷현금에 도전하는 '디지털 통화'… 새로운 화폐인가 보완재인가

스웨덴서는 은행에 강도 들어도 훔칠 돈 없어

"신도들이 십일조 헌금을 교회에 문자메시지로 보냅니다. 노숙자 자활을 돕는 잡지를 거리에서 파는 노숙자들도 휴대용 카드 단말기를 가지고 다닙니다. 70년대 '머니, 머니, 머니(Money, Money, Money)'란 곡을 만들었던 팝 그룹 아바를 기리는 아바 박물관에서도 지폐와 동전은 받지 않습니다."

작년 말 뉴욕타임스가 게재한 '스웨덴에서 현금 없는 미래가 가까워졌다'는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현금 없는 사회'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지폐와 동전이 스웨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로 미국의 7.7%나 유로존의 10%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낮습니다.

스웨덴 정부에서 오래전부터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사용을 권장했고, 최근에는 '스위시(swish)'라는 모바일 앱을 통해서 스마트폰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도 직불카드를 하나씩은 갖고 다닌다고 합니다.

스웨덴에는 아예 문 앞에 '현금은 받지 않는다'고 써 붙인 상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리에서 현금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스웨덴중앙은행에 따르면 시중에 풀린 지폐와 동전은 작년 평균 770억크로나(약 11조원)입니다. 2008년의 1060억크로나와 비교하면 4분의 1이 넘게 줄어든 것입니다. 시중은행들도 현금을 보유하지 않는 지점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다가 아무것도 훔치지 못하고 잡히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현금 없는 사회로 너무 빨리 이행하다 보니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노약자나 외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필요할 때 현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또 지폐나 동전 같은 실물을 주고받지 않다 보니 소비가 헤퍼지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기사 더보기

2020년 '동전 없는 대한민국' 온다

오전 7시 45분. 지각이다. 전력질주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차, 지갑을 두고 왔다. 주머니엔 1만원 지폐 두 장뿐. 1만원을 꺼내 요금함에 넣고 말했다. "기사님, 1만원 냈습니다." 핸드폰 번호도 입력했다. "삐익, 8700원이 충전됐습니다. 승객님의 계좌 혹은 카드로 송금됐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지마자 회사로 전력질주했다. 역시 부장님은 자리에 계신다. 지각하면 '모닝커피'를 부서 전 직원에게 사야 한다.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 8잔을 주문한다. 잔당 1200원. "잔돈은 마일리지에 넣어드릴까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일리지 400원 충전 완료'라는 문구가 계산대에 뜬다.

점심식사를 하러 나왔다. 설렁탕 한 그릇에 7000원이다. 계산대에 서고 보니 지갑이 없다. 맞다, 지갑을 두고 왔다. 주머니에 있던 현금도 다 썼다. 아침에 버스 거스름돈을 충전한 게 기억났다. 핸드폰을 내민다. "00페이로 계산할게요." "네, 계산 완료됐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내가 '지갑 없어 불편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큰 불편은 없었다. 거스름돈이 계좌나 자주 쓰는 카드로 충전되니 '비상금'이 쌓이는 기분이라고 대답했다. 아내가 물었다. "그치, 요새 동전 안 쓰니까. 혹시 10원 짜리 동전에 뭐가 그려져 있었는지 기억나?" 잘 모르겠다. 본 지 한참 됐다. "다보탑이잖아." 맞다. 경주 수학여행 가서 봤던 그 탑.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동전 없는 거래'를 하기 위한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2015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향후 추진 과제의 하나로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를 제시했다.

한은은 우리나라의 경우 소액결제망이 잘 구축돼 있고 거의 모든 국민이 금융기관에 결제 계좌를 가지고 있어 이 인프라를 이용하면 동전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동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스름돈 등을 카드에 충전하거나 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으로 동전사용을 최소화겠다는 구상이다.

한은이 동전 없는 사회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동전을 만들어 사용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땡그랑' 동전 소리 사라질까…2020년 '동전 없는 대한민국'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