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시즌2 열번째 주인공 이보현 디자이너(왼쪽)가 모델 이영진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셀럽스픽

[스포츠조선 배선영기자]이보현 디자이너의 인생은 어딘지 리얼리틱하지 않다. 한국에서 유독 어렵다는 신발 사업을 성공시킨 그녀의 슈코마보니는 2003년 청담동 골목길의 작은 매장에서 시작됐다. 이후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손을 잡고 전국은 물론 해외에도 진출했고, 슈즈 브랜드로는 최초로 서울패션위크에서 쇼를 선보이기도 한다. 슈콤마보니의 성공 자체도 이미 신화이지만, 이보현 디자이너 역시도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려운 존재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까지 하루종일 신발에만 파묻혀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사무실은 마치 그 인생을 집약해놓은 것처럼 눈을 돌리는 곳마다 가득 쌓인 신발들이다. 그렇지만 또 오로지 신발만 바라보는 외골수는 아닌 것이 여전히 핫 플레이스를 좋아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 무엇보다 '국내 1호 신발 디자이너', '한국의 지미추' 등화려한 수식어들과는 달리 늘 다정다감하고 따듯한 리더십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다.

30대에는 40대에 은퇴해 제주도에서 살 계획을 짰다고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면에서 일을 하고 있고 지금 역시도 "10년 뒤에는 내가 과연 신발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왠지 2026년에도 슈콤마보니의 선장으로 남아있을 것 같은 이보현 디자이너의 에너제틱함이 많은 패션계 인사들의 귀감이 될 것만 같다.

이영진(이하 이)-남성복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다녀온 이탈리아 출장이 오늘의 슈콤마보니의 시작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이보현(이하 현): 너무 옛날 이야기이긴 한데, 남성복 브랜드에서 만 9년을 일했었죠. 중간에 잠깐 스타일리스트도 했었고요. 그 때 배우 손지창 씨가 빈폴 모델로 막 발탁돼 유가 화보를 진행했으니까 정말 오래 됐죠?(웃음) 그러다 이탈리아 출장 때 만난 친구의 지인인 스페인 사람이 '신발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원래는 신발 에이전트로 시작했는데 IMF가 터져버렸고 환율 문제로 못하게 됐죠.

이-오늘의 슈콤마보니에 이런 배경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그 이후에 슈콤마보니를 론칭하기 전까지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현:맞아요. 신발 에이전트를 못하게 되면서 스페인 여행을 떠났어요. 무작정. 여행 갔다온 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자하고 갔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공장을 찾아가서 내가 신발 디자인을 해봐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귀국해서 바로 공장을 소개받아 시작하게 됐죠. 그 때가 1998년이네요.

이-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현:그렇죠. 샘플 하나 만들려면 당시 공장이 있던 북가좌동과 자재를 살 수 있는 성수동을 몇 번을 왔다갔다 했는지 몰라요. 직원 없이 혼자 디자인하고 자재 사고 공장 가고 또 공장에서 안 만든다고 하면 커피 타주고 그랬어요(웃음). 그렇게 1년을 혼자 했는데, 한 달 주문이 만 족이 넘었어요. 그 때부터 직원들을 3명 뽑아 함께 일했죠. 나중에는 나와서 공장 차렸어요. 그런데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기술자 출신이 아니다보니 로스(loss)가 많았어요. 기술자에 휘둘리기도 하고요. 그 공장을 접을 때 쯤 다시 과거 공장을 찾아갔고, 그때 슈콤마보니를 오픈하게 됐네요.

이-와, 정말 감탄만 나오네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슈콤마보니였군요. 그런데 이보현 디자이너가 신발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현:여러가지인데요. 일단 전 무서운 신발은 싫어요. 아무리 시크해도 여성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운동화라도 여성미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또 하루 종일 신어도 덜 불편한 신발이었으면 해요. 하이힐이 편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편안함을 주고 싶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sypo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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