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하기만 했던 아들이 어느 날 중학교에 가면서 게임·폭력 같은 일탈 행동에 끌리고, 평범한 중년 남성이 어처구니없는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진화심리학은 인간 본성에서 이런 '무모한' 행동의 이유를 찾는다. 이른바 '중2병'은 이제 막 번식 능력을 얻은 사춘기 남학생들이 힘과 배짱으로 또래 집단 내에서 우위를 점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성추행은 이성의 단순한 친절을 '성(性)적 신호'로 과대평가한 남성들이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가 불편한가. 어디까지나 학문적 해석의 관점일 뿐이다.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43)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진화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성추행이나 바람기를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알아야 이런 상황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최근 펴낸 '본성이 답이다'(사이언스북스)는 보수와 진보, 도덕성, 폭력 등의 사회 현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빈 서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처럼 "문제는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고, 해결도 인간 본성을 알아야 가능하다"는 주장을 담았다.
최근 나타나는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전 교수는 "기존 남성들이 차지하던 지위와 서열에 여성이 진입하면서 사회적 지위나 연령이 낮은 남성의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에 비해 폭력성이 줄어든 현대 사회는 여성적 공감(共感) 능력이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자질이 되고 있다. 반면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들의 세계에서 '여혐'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 어디를 가든 젊은 남성의 폭력 범죄가 많은 이유도 진화심리학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 마음도 몸처럼 오랜 기간 자연선택을 거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 그는 "TV에서 자주 보는 연예인을 가족이나 이웃의 일원처럼 느끼는 것이 그 증거"라며 "이는 우리가 수만 년 동안 100명 내외의 사람과 무리 지어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인들은 그래서 틈만 나면 TV에 얼굴을 내민다.
이 새로운 학문은 보수와 진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인간의 본성이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백지(白紙)가 아니라 수만 년 쌓인 정보가 누적된 진화의 산물이라면, 좌파로선 계급이나 성차별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어려워진다. 보수는 종교적 이유로 진화론을 불편해한다. "남성의 진화적 성공 가능성은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많이 가질수록 증가하는 반면, 여성은 평생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여러 남성과 접촉할 때 이득이 덜하다"는 주장이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인간 스스로 동물 수준으로 격하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이에 대해 그는 "지구 상 모든 생물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으로 설명이 되는데, 유독 인간의 행동만 설명이 안 될 이유는 없다"고 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결국 찰스 다윈의 후학들이었던 것. 그도 동물학을 먼저 배웠다. 서울대 생물학과에서 학부·대학원을 나왔고, 최재천 교수(현 국립생태원장) 지도로 개미를 연구했다.
입력 2016.05.30. 03:00업데이트 2016.05.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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