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최근 인천 송도에 있는 A대학 기숙사의 아들 방에 들렀던 김민지(가명·46)씨는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퀴퀴한 냄새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기겁을 했다. 남학생 세 명이 함께 쓰는 방은 그야말로 폭탄을 맞은 듯했다. 냄새의 주원인은 며칠 전 야식으로 먹다 남아 썩어가던 치킨과 각종 체취. 김씨는 "책상 위엔 옷이나 빗, 책 같은 온갖 물건과 쓰레기가 널려 있었고, 바닥엔 회색 먼지가 공처럼 뭉쳐 굴러다녔다"며 "방에 딸린 욕실엔 머리카락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그간 애를 잘못 키웠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잔소리를 하려다가 천진난만한 애 얼굴을 보고 '아직 어린애다' 싶어서 청소를 싹 해주고 왔다"고 말했다.

각 대학교 기숙사들이 지저분한 학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부분 학교가 공용 복도와 화장실 등을 제외한 개인 방은 각자 청소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고교 졸업 때까지 공부만 하느라 집안일을 안 해본 학생들에게 청소나 정리는 '배운 적 없는 비교과 활동'이다. 지난해 인천의 B 대학 기숙사에 있었던 이민호(가명·21)씨와 안민정(가명·21)씨도 "성별을 불문하고 돼지우리같이 지저분한 방이 아주 많은 건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한 친구네 방 화장실은 한 학기 내내 청소를 안 해서 세면대와 변기에 검고 푸르고 빨간 곰팡이가 잔뜩 피었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화장실을 청소하기 싫다며 매번 볼일 보러 복도 공용 화장실에 가더라"고 말했다. 공용 화장실은 학교가 고용한 미화원이 매일 관리한다. 청소 문제로 룸메이트와 다투는 사례도 종종 있다. 안씨는 "깔끔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만나면, 결국 깔끔한 학생이 다 치우고 다음 학기에 방 교체를 신청한다"고 했다.

페이스북 캡처

부모가 자녀 방을 치우러 기숙사를 방문하는 건 흔한 일이다. 경기도 C대학 김미영(20)양은 "부모님이 방문차 오셨다고 하면 보통 청소 목적이라고 보면 된다. 한두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오시는 분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가사 도우미를 기숙사에 보내는 부모도 있다. 서울 D대학 김철수(가명·19)군 방엔 2주에 한 번씩 가사 도우미가 온다. 수위에게 '어머니'라고 둘러대고 들어와 방을 치운다. 빨래는 한데 모아 가져가 다음 방문 때 세탁해온다. 김군 친구는 "김군 어머니께서 '청소나 세탁에 대해 알 필요 없다. 공부에만 집중하라'며 보내주신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학생들이 몸만 커졌을 뿐 생각은 여전히 부모 그늘에 있는 '어른 아이'라고 지적한다. 이연정 순천향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지금 한국은 공부 잘하는 것이 곧 착한 것이자 도덕적인 것으로 여기는 기형적 사회다. 공부 외의 것은 부모가 대신해주는 식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방 청소를 부모가 해주는 건 물론이고, 공부를 위해서라면 친척 장례식이나 명절 가족 모임 등 중요한 행사에 빠지는 것도 합리화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이렇게 자란 학생들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해 결국 직장에서 인내심을 요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크다"면서 "어릴 적부터 방 정리, 속옷 빨래, 설거지 등 자기 할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하도록 교육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