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를 닮은 색… 쪽물 염색 체험

청출어람(靑出於藍). 마디풀과 여뀌속의 식물인 쪽의 녹색 이파리에서 남색(藍) 쪽빛이 나온다. 배춧빛 쪽물에 흰 명주를 넣었는데 쪽물에서 꺼내자 금방 빛깔이 바뀐다. 하늘과 바다를 닮은 바로 그 색깔이다.

쪽빛은 하늘보다 푸르렀다. 중요무형문화재 정관채 염색장이 전남 나주 정관채 전수교육관 마당에 쪽물을 들인 비단과 무명을 말리기 위해 널어놓았다. 꼬박 1년이 걸려 탄생한 쪽물을 입은 천이 5월의 산들바람을 맞아 나부낀다.

전남 나주 영산강 일대는 쪽물 염색의 전통이 길다. 해마다 여름이면 홍수가 나는 영산강변의 농민들은 벼농사 대신 생명력이 강한 쪽을 재배했다. 강물이 범람해도 쪽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유명 목화 산지인 나주에서는 직조와 염색이 함께 발달했다. 그러나 쪽물 염색은 6·25전쟁을 거치며 이 땅에서 잠시 사라졌다. 값싸고 제조가 편리한 화학 염료가 들어오면서 쪽 염색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가 됐다. 영산강변에서도 그 명맥이 끊겼다.

쪽물 염색장 정관채(57)씨는 나주 영산강변에 산다. 정씨는 나주 일대에서 전통 쪽물 염색을 되살려냈다. 2001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115호 염색장으로 지정됐다. 4대째 쪽물 염색을 해왔다는 그의 집 한쪽에는 여전히 할아버지가 쪽물을 낼 때 썼다는 장독이 남아 있다. 그는 "늘 한 가지 색인 화학 염료와는 달리 매번 색이 조금씩 달라 감성적이고 오·폐수 대신 천연비료로 쓸 수 있는 물이 나오는 게 전통 방식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의 손마디는 굵었고 손톱마다 물든 쪽물 푸른빛이 시퍼렜다.

무형문화재가 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인근 영산고에서 미술 교사로 일하고 있다. 한 해가 온전히 쪽물을 만드는 데 들어간다. 봄이면 한해살이 작물인 쪽을 파종해야 하고 삼복더위에 그 쪽을 거둬들여야 한다. 석회와 잿물을 더해 쪽물을 내는 데는 수확한 시점으로부터 두 달이 족히 걸린다. 손도 시간도 많이 가는 작업이다. 정씨는 목포대 미대 1학년이던 1978년 염색을 가르치던 교수님에게서 쪽씨를 건네 받은 인연으로 쪽 염색 장인의 길을 걷게 됐다. 38년 전 일이다.

정씨의 공방 마당에는 간장·된장을 담으면 좋을 것 같은 수십 개의 장독이 늘어서 있다. 땅속이 아니라 땅 바깥에 나와 발효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다르다. 커다란 독의 뚜껑을 열고 고무장갑 낀 손을 넣었다. 두꺼운 고무장갑 너머로 초여름의 태양열로 더워진 염료의 뜨끈함이 느껴진다. 장독에 있어서일까 쿰쿰한 냄새가 영락없는 발효의 현장임을 알린다. 정씨가 작대기 끝에 작은 목침 모양의 나무가 달린 긴 고무래로 독의 물을 힘차게 젓기 시작했다.

짙은 녹색으로 보이던 염료에 거품이 점점 일면서 적갈색에서 보라색 그리고 이내 검푸른 청록색으로 변했다.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하면서 염료의 색이 변화하는 모습이다. “배춧빛 염료가 실타래처럼 고무래에 감겨오죠. ‘물발이 섰다’고 하는데 염색하는 데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쪽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다, 염색장 정관채]

명주 천을 담갔다가 뺀다. 연녹색의 천은 공기와 만나 남색으로 변한다. 전통 쪽물 염색의 매력은 농담(濃淡)이다. 쪽빛을 남색 또는 감색(紺色)이라고 하지만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쪽물은 연한 하늘색부터 까마귀의 검푸르스름한 빛깔까지 낸다. 물을 얼마나, 어떻게 들이느냐의 차이다.

정씨는 “조선시대에는 무관들이 쪽물로 염색한 의복을 입었다”며 “쪽물을 들이면 좀벌레도 오지 않고 향균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음양오행설에 따른 ‘오방색(五方色)’에서 청색은 동쪽을 뜻한다. 쪽이 인도에서 동쪽으로 전파돼 우리나라까지 흘러온 것이 우연 같지 않다. 정씨는 “전통 방식 천연염료로 물들인 쪽빛 옷을 입으면 아토피와 각종 알레르기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도 했다.

직접 체험해 보았다. 면으로 만든 손수건을 30분 정도 쪽물에 넣었다 빼면서 물을 들였다. 녹색 쪽물에 담갔다 꺼내니 남색으로 빛깔이 바뀌는 게 마냥 신기했다. 염료에 넣었다 꺼냈다를 십수 회 반복하면 남색이 진하게 배어든다. 마르면서 색이 좀 밝아지기 때문에 의도한 빛깔을 내려면 조금 더 진하게 물을 들여야 한다. 염료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수고를 생각하면 미안할 정도로 간단하고 짧은 작업이었다. 손수건을 물에 헹구자 쿰쿰했던 쪽물 냄새가 은은한 향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만들어 보세요

정관채 염색장 전수교육관에서는 손수건(1만5000원), 스카프(5만원) 등의 쪽물 염색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시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예약 필수. 쪽 염색 원단과 각종 작품·유물이 전시돼 있는 전시관에서는 쪽물로 얼마나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는지 직접 볼 수 있다. 전남 나주 다시면. (061)332-5359

경북 청도에서는 감물 염색을 체험해볼 수 있다. 청도 감물염색제품 생산자들이 모여 만든 시설렘 홈페이지(www.siseolem.com)에서 체험 업체를 찾아볼 수 있다. 감물 염색 외에도 계절별로 다양한 염색 체험이 가능하다.

통도사 서운암 천연염색축제: 경남 양산 하북면에 있는 통도사에서는 오는 28·29일 이틀 동안 천연염색축제를 연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천연염색 장인 24팀 327명이 각기 솜씨를 뽐낸다.(055)382-7094

찌고 거르기 수십 번… 하얀 빛깔의 '부드러움'이 탄생했다

재 너머 성권농(우계 성혼) 집에 술 익었다는 말 어제 듣고 / 누은 소 발로 박차 언치(안장 밑에 까는 담요) 놓아 지즐타고(눌러타고) / 아해야 네 권농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 송강 정철

임금도 못 말렸던 주호(酒豪) 정철(1536~1593)이 술을 마시려고 술집이 아니라 친구 집으로 내달렸던 이유가 있다. 한국의 전통주 문화는 가양주(家釀酒) 문화다. 집집마다 직접 술을 빚었단 뜻이다. 약재나 식물, 꽃향기 등을 첨가한 각자 나름의 개성 있는 술이 한때 700여 종에 이르렀단 기록도 있다.

쌀을 빚어 만든 원주(原酒)에서 쌀 찌꺼기를 걸러내고 있다. 막 걸러낸 술이라는 의미의 막걸리는 걸러낸 뒤 2주 안에 마셔야 한다.

이런 가양주 문화는 1916년 일제가 공포한 주세령 세칙을 계기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모든 주류를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하고, 징세 행정 편의를 위해 1개 면에 1개의 양조장 면허만을 내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한국의 근대적인 양조장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 그 당시인 1933년 충남 당진군 신평면에 문을 연 신평양조장은 지금까지 3대를 이어오며 전통주를 빚고 있는 곳이다. 일제의 정책으로 탄생한 곳에서 전통주 문화가 지켜져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일이죠. 조선 시대엔 정말 집집마다 내려오던 술이 있을 정도로 술 문화가 풍요로웠는데. 우리 양조장은 전통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평양조장 김용세 대표가 80년 넘게 쓴 옹기 항아리에 담긴 술을 맛보고 있다.

[막걸리 역사가 느껴지는 양조장 충남 당진 '신평양조장']

[근대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신평 양조장']

신평양조장 3대째인 김동교(42) 부대표는 "우리 양조장에서 만드는 백련 막걸리는 그런 가양주의 현대판"이라고 했다. 1990년대 2대째인 김용세 대표가 사찰에서 스님들이 연잎으로 차를 만드는 것을 보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 이 양조장의 대표 상품인 '백련(白蓮) 막걸리'다. 살균과 정화 효과가 있다는 백련을 직접 키워 딴 잎을 넣어 만든 술이다. 백련 막걸리는 2009년 청와대 전시품목 막걸리, 2012년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살균탁주 부문 대상, 2013년 '영국주류품평회(IWSC)' 브론즈 메달 등을 받았고 2014년에는 삼성 사장단 공식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맛을 인정받았단 뜻이다. 가업을 이어받는 중인 김동교 부대표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양조장 일을 배우면서 알게 된 것이라면 우리 전통주를 빚는 일의 핵심은 정성, 정성, 또 정성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조장의 시설 하나하나를 둘러보며 전통 술 제조 과정을 설명했다.

"좋은 쌀을 써야 하고 그 쌀로 술을 만들기에 좋은 밥을 제대로 지어야 하죠." 이런 준비 과정은 세미(洗米·쌀 씻기), 침미(沈米·쌀 불리기), 절수(折水·물 빼기)로 나뉜다. 특히 술을 만들기 위해선 쌀알이 탱글탱글한 고두밥을 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밥이 너무 질어지지 않게 절수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 뒤는 증자(蒸煮), 즉 수증기로 쌀을 익히는 과정이 따른다.

술이 발효되면서 탄산이 올라오고 있다.

이어지는 입국(入麴)이야말로 전통주 만들기의 핵심이다. 전분질로 이뤄진 쌀에서 당이 만들어지도록 누룩과 효모를 섞는 과정이다. 큰 통에 담은 쌀에 누룩과 효모를 섞은 뒤 48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쌀과 누룩, 효모가 고루 섞이게 저어야 한다. 신평양조장에선 지금도 이 과정을 기계를 쓰지 않고 직접 손으로 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기계보다 섬세하게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란 이유지만 중노동이기도 하다. 작업이 진행되는 입국실의 온도는 보통 35도까지 올라간다. 그런 곳에서 한 번 섞을 때마다 1~2시간씩 허리를 숙이고 쉴 새 없이 작업을 하니 중노동일 수밖에.

전통 방식대로 손으로 직접 쌀과 누룩 효모를 고루 섞어주고 있는 모습. 허리를 숙인 채로 1~2시간씩 섞어야 하는 중노동이다.

이렇게 섞은 쌀을 발효 항아리에 나눠 담고 적절한 온도(22~25도)로 냉각시킨 뒤 발효·숙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알코올이 생성된다. 김 부대표는 "술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발효 과정에서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매일의 온도 및 습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날그날 상태에 맞춰 발효실 온도를 조정해야 한다. 보통 발효 과정에서 30도 이상으로 온도가 높아지는데, 그러면 술을 망치게 된다. 그래도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로 술을 망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각종 냉각 장치와 함께 신평양조장에서 의지하는 것은 바로 80년 넘게 쓴 옹기 항아리들이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통에서 발효시키면 옹기 항아리를 쓴 것 같은 맛이 절대 안 나요."

발효가 끝난 것을 원주(原酒)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쌀찌꺼기를 걸러내는 여과 및 가수(加水·물 섞기) 과정을 거친다. 흔히 막걸리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막 걸러낸 술이란 뜻이다. "걸러내고 2주 내에 먹어야 하는 게 막걸리죠. 그게 막걸리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백련 막걸리’.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그렇게 만들어진 백련 막걸리를 보고 있자니 군침이 돌았다. 김 부대표는 사발 대신 작은 잔에 따라 마셔보길 권했다. "그래야 술의 향도 더 잘 음미할 수 있거든요." 그 말을 따랐다. 하얀색 부드러운 술을 작은 잔에 졸졸 따랐다. 한 손으로 살며시 들어 입술에 댔다. 코끝에 올라오는 냄새가 간질간질했다. 향기가 말을 거는 듯한 착각에 서둘러 입술을 열었다. 술이 혀를 한 번 감고 들어와 목구멍으로 굴러들어갔다.

양조장 옆 뒷뜰엔 백련꽃이 한창 피었다. 정철의 절창 '장진주사'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한잔 먹세 그려/또 한잔 먹세 그려/꽃 꺾어 술잔 수를 꽃잎으로 셈하면서 한 없이 먹세 그려." 임금도 그를 말리지 못한 까닭이 이해가 됐다.

직접 전통주 빚기 해보세요

신평양조장에서는 간단한 전통주 빚기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전통주 빚기 체험(2시간)은 2만5000원. 이외에도 증류주 체험(3시간·4만5000원)과 누룩전 만들기(1시간30분·2만5000원)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문의 (041)362-6080

경기도 포천 산사원은 전통술박물관과 체험장으로 이뤄져 있다. 1996년에 개장한 전통술박물관은 양조 관련 문헌과 서적 및 유물이 전시돼 있다. 체험은 2시간으로 가양주(3만원), 과실주(4만5000원), 세시주(3만원)를 빚을 수 있다. (031)531-9300

전남 해남 해창주조장에선 막걸리 양조장 견학을 할 수 있다. 1시간 1만원. 막걸리 시음이 포함돼 있다. 간단한 안주도 제공한다. 90년 동안 유지된 일본식 정원도 구경한다. (061)532-5152

간단한 재료와 약간의 정성만 있으면 그럴듯한 술을 직접 빚어서 맛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손쉽게 효모와 누룩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집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개인이 만든 술을 돈 받고 파는 것은 불법이다. 고두밥을 찐 뒤 물과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다. 이렇게 생성된 원주에 물을 섞은 뒤 하루 정도 냉장 보관해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술이 된다. 발효시키는 동안 하루에 2~3번 정도 섞어줘야 한다.

흙 다듬어 불에 굽기까지… 고운 자태의 그릇은 '기다림'이다

작업실 문을 열자 흙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에선 쉽게 맡아볼 수 없는 자연의 향이다. 풀밭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서울 구로동에 있는 '빚다도예공방'이다. 안쪽엔 이제 막 만들어진 물렁물렁한 흙색(色) 컵부터 가마에서 초벌을 끝낸 단단한 황토빛 도자, 알록달록한 색이 칠해진 완성품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물레 성형의 핵심은 힘 조절이다. 손에 힘을 많이 줄수록 도기의 두께는 얇아진다. 아기를 다루듯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흙을 만져가며 원하는 모양을 만든다.

작업실 창고에는 전기로 된 가마가 놓여 있다. 근처만 가도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공방의 조용현 대표는 "과거엔 사람들이 나무를 넣어 화력으로 도자기를 구웠지만, 불을 붙이고 유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지금은 전기 가마를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물레를 이용해 컵을 만들어봤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컵 두께를 너무 얇게 잡아 한쪽이 허물어졌다. 충분한 시간을 투여하기보단 잘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 생긴 결과였다. 이를 지켜보던 조 대표는 "조급해하지 말고 힐링하는 마음으로 과정을 즐기라"고 조언했다. 울퉁불퉁했던 컵의 표면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니 말끔해졌다.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물레 위에 점토를 올려놓고 회전력을 이용해 둥근 형태의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 성형(成形), 가래떡처럼 흙을 빚어 위로 쌓아올리는 흙가래(코일링) 성형, 점토를 판처럼 밀어 직각 작업을 하는 점토판 성형 기법이 있다. 도자를 빚을 때 사용되는 물레 성형은 도예 공방에선 중·고급자 코스에 해당된다. 초보자가 곧바로 하기엔 난도가 높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도예를 체험하기엔 최적이다. 과거엔 발로 물레를 일일이 돌리며 도자를 만들었지만, 요즘엔 페달만 밟으면 저절로 돌아가는 전기 물레를 사용한다.

물레 성형은 처음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익는다.

물레 성형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물레 위 흙 기둥의 중심을 탄탄히 잡아주는 것이다. 물레 위 기둥 모양의 흙 점토를 올려놓고 뻑뻑해지지 않게 물을 적셔가며 여러 번 올리고 내리며 중심을 잡아야 한다. 기둥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아야 중심이 잘 잡힌 것이다. 기둥의 중심을 잡는 과정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 것과도 같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지만 몇 번 시행착오를 겪으면 감(感)을 잡게 된다. 중심이 잡혔다면 흙의 중간 부분에 엄지손가락을 넣어 구멍을 만들어 원하는 만큼의 깊이를 만든다. 안정적인 두께와 원하는 만큼의 깊이를 갖춘 도자 모양이 나오면 와이어를 사용해 하단 기둥에서 잘라 분리시킨다.

흙으로 도자기 모양을 만들었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다. 실온에서 도자를 건조시킨 뒤 섭씨 850도 가마에서 굽는 초벌을 하고 이를 식혀야 한다. 이후 유약을 입혀 섭씨 1250도에서 다시 굽는 재벌을 해 9시간 정도 식혀야 끝난다. 모든 과정을 거쳐 하나의 도자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주 정도. 단 하나의 과정이라도 빠트리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가마에서 굽는 과정 중 흙의 수분이 날아가 원 크기보다 15~20% 줄어들기 때문에 도자를 빚을 땐 원하는 크기보다 조금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물레 성형을 하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남녀 주인공이 로맨틱하게 물레를 돌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뒤에서 부둥켜안은 채 물레를 돌리는 일은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자칫 다른 생각을 하면 모양이 헝클어지거나 단면에 구멍이 나버리고 만다. 잡념을 버린 채 물레를 돌리고 있으니 무엇 때문에 내 자신을 닦달하며 나날을 지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조급함은 사라지고 차분해진다. 모든 게 빨리 이뤄지는 현대에서 도예는 '느림'과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자기 체험 여기서

서울 구로동 빚다도예공방은 강사가 1대1 로 도자기 빚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전화로 시간을 정하고 공방에서 원하는 것을 만들면 된다. 전문가가 늘 있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퇴근이 늦은 직장인을 위해 수요일과 목요일은 저녁 10시까지 운영, 월~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요일 휴무) 연다. 강남, 홍대, 성북, 강동에도 지점이 있다. 070-7530-3829

서울 양재동 길상도예는 취미반과 전문가반이 따로 운영된다. 전문가 과정은 입시나 자격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물레 성형도 기초·중급·고급반으로 나눠진다. 070-7642-8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