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남자, '자아 사망' 시켜고 새 인물로 부활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은 아쉬워, 다시 하고 싶어
가장 행복했던 배역은 '이순신', 가장 하고 싶은 배역은 '안중근'
어릴 때부터 교회 성극에서 예수와 가롯 유다로 좌중을 울리고 웃기던 소년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 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코러스와 단역을 전전하다, 1996년 안방 장롱 앞에서 찍은 사진을 붙여 SBS 공채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
심사위원들은 쫙 빼입은 꽃미남 배우 지망생 사이에서 촌스러운 양복을 입고 와서도 기죽지 않던 평범한 외모의 청년을 합격시켰다. “어디 가져다 놓아도 쓰기 좋다"는 이유였다. 그 말이 ‘사용설명서'가 된 듯 입사(!) 초기부터 몇 년, 그는 ‘어디'인지도 모를 드라마들의 1분 단역으로 오랫동안 쓰였다.
산적 중의 한 명이거나 손님 중의 한 명이거나. 어차피 찍소리 한번 못 내보는 구르는 돌 중의 하나였다.
왜 이렇게 안 풀리나, 다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이민 가려고 비행기 수속까지 해놓았는데, 전화가 울렸다.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을 맡으라는 KBS 이성주 PD의 전화였다. 그는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를 타는 대신 남도 바다의 거북선을 탔다.
“진주성에서 조선 군사 5천이 죽었다. 개 한 마리, 닭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고요하게 각혈하는 이순신의 지문처럼, 2004년부터 김명민의 복식호흡의 대사의 시대가 열렸다. 그렇게 그는 점점 영웅의 영혼을 지닌 ‘최강의 사나이'가 되어갔다.
김명민, ‘잔트가르'. ‘잔트가르'는 몽골어로 ‘우두머리, 최강의 사나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 역을 수행하는 그를 향해, 이방원 역의 유아인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외친 대사도 “저 사내가 잔트가르다!"였다.
이방원이 내리꽂은 칼에 맞고 한숨 쉬며 내뱉은 마지막 유언, “고단하구나, 방원아…”는 영화 ‘친구'의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이후로 가장 많이 회자된 유언일 것이다.
어쨌든 ‘불멸의 이순신’ 이후로 그의 영혼의 DNA엔 ‘영웅적 트라우마’라는 낙인이라도 찍혀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한 사람의 일생이 어떻게 매번 기록을 경신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같을 수 있나.
신체 에너지를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뜨린 ‘루게릭 환자’였을 때도(영화 ‘내 사랑 내 곁에’), 시청자들의 식은 가슴에 야망의 불꽃을 일으키던 ‘명의’(드라마 ‘하얀 거탑’)였을 때도, 히스테릭한 천재 지휘자(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나 딸을 유괴당한 목사였을 때(영화 ‘파괴된 사나이’)도 그는 매번 고통을 관통한 ‘위대한’ 인생을 살아냈다.
폭풍의 언덕에서 맞는 광포한 바람처럼, 가장 앞서 돌진하는 전장의 북소리처럼, 가죽으로 된 목울대에서 공명하는 그 둔중한 목소리로. “무릇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라고 외치며.
김명민은 ‘죽어야 산다’는 말의 기저에 깔린 단순하고 거대한 철학을 이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일이다. 하물며, 연기라는 행위는 ‘자아 사망’이라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새로운 ‘탄생과 부활’로 이르는 길. 그를 통해 드라마는 고전의 바다를 항해하듯 드넓고 웅장해졌고, 영화는 살기 위해 죽음의 강기슭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의 퍼덕거림처럼 가파르고 절박한 생기로 넘쳐났다.
항상 더 멀리 꿈꾸게 하는 배우, 김명민을 만났다. 연기 경력 20년, 여전히 넘치는 스테미너로 주위를 싱그럽게 압도하는 이 ‘최강의 사나이’는 큐사인을 내리면 당장 한 손으로 푸쉬업이라도 할 태세였다. 준비하고 고통받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신념은 여전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 역할을 소화할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지금까지 해왔던 거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일주일에 이틀 촬영을 나갈 때도 있고, 대사 한마디 없이 서 있을 때도 있었죠(웃음). 한 회당 4~6장면만 나올 때도 허다했고요.”
-고통이 덜해서 갈증이 났겠군요.
“이렇게 편하게 찍어도 되나(웃음). 이렇게 안주를 해도 되나(웃음). 내가 생각했던 정도전은 이게 아닌데…(웃음)”
-김명민이 그리는 정도전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떻게든 명분을 찾아가기에 급급했던 제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혁명가로서 모습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괴짜 같은 모습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쉬워요.”
-온 몸을 던지는 전형적인 메소드 연기자지요. 최근 박신양 씨가 ‘배우학교'에서 보여준 것이 예가 되기도 합니다만, 혹시 ‘배우 학교'는 보셨나요?
“안 봤어요. 그런데 제게 메소드는 한글맞춤법처럼 당연한 겁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첫 연기 수업 과제가 ‘24시간 고양이를 관찰하고 고양이 연기를 해라’였어요. 그때 무릎이 다 까진 채로 고양이가 돼서 소극장을 돌아다녔어요. 배우는 사람 인자에 아닐 비자죠. 아마추어 무대의 비공식적인 배우였던 그 시절부터 그런 가치관이 적립되어 있었어요. “모방을 못하는 자는 창조를 할 수 없다.”
연기하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몸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사물화시켜야 한다. 그게 배우가 해야 할 몫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가 내 몸을 도구로 하는 신체 훈련을 게을리하면 안되는 거죠.”
-그런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서서히 죽어가는 남자를, ‘피스메이커'에서는 흔들림 없이 상체를 곧게 세우고 뛰는 마라토너를. 신체가 그렇게 자유자재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게 한편 놀라워요.
“배우의 몸이 변해가는 중간 과정을 너무 과장해서 마케팅하면 안 돼요(웃음). 흥행 여부를 떠나서 저는 제가 노력 안 하고 만족 못 하는 작품이면 그게 평생 한이 되는 사람이에요.
볼수록 쪽팔리고 창피한 거죠. 배우의 몸만 가지고 홍보를 하는 건 제작사에 컨플레인할 부분이예요. ‘내 사랑 내 곁에'라는 영화는 몸이 본질인 ‘루게릭’ 영화였어요. 한 남자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죽어가면서도 한 여자를 사랑했다, 는 게 포인트였어요.
그런데 주인공이 아파야 한다, 진짜 병에 걸려야 한다는 게 도전 과제였죠. 튼실한 몸과 얼굴로는 그걸 표현 못 해요. CG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건강한 몸으로 연기 하면, 혀나 피부가 화면에 비출 때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렇게 보여서는 안 돼요.
하루 잠 못 자고 한 연기와 이틀 잠 못 자고 한 연기, 푹 자고 나와서 한 연기는 다 달라요. 분장해도 신체 구조가 맥박의 흐름이 다 달라요.”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 죽음 가까이 갈 정도로 신체 에너지를 떨어뜨린 배우는 전 세계 영화 역사상 김명민 씨가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합니다. 촬영 과정을 찍은 메이킹 필름을 보면,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였죠. 반면 오달수 씨와 콤비로 나왔던 퓨전 시대극 ‘조선 명탐정' 시리즈는 좀 달랐어요. 아주 편안해 보이던데요.
“편안하게 보이려고 엄청 노력을 많이 했어요(웃음). 사전 작업을 예로 들자면, 저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 제가 맡을 역할의 그림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져요. 제스처와 얼굴, 몸의 형태까지. 가령 ‘조선 명탐정'은 셜록 홈스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명민하고 이치에 밝은 이 사람을 콧수염으로 표현하면 재미있겠다… 기분 좋을 땐 콧수염이 샥 올라가고, 우울할 땐 콧수염이 축 처지고… 그런 가닥을 잡고 가죠. 제 생각이 연출부와 합의점에 이르기까지의 토의와 실험 과정이 또 치열해요. 실제 촬영에서는 엇박자가 안 나기 위해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하고요.”
-자기를 변형시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면서 어떤 종류의 희열을 느끼나요?
“재미있어요. 그럴 만큼 멋진 인생을 살다 간 인간들이었으니까요.”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지요?
“아무래도 ‘내 사랑 내 곁에’죠. 저 자신과의 약속. “내가 얼마만큼 하나 보자”라는 일종의 시험대였어요. 가장 힘든 건 미래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하루하루 조금씩 살을 빼는 거예요. ‘이제 그만'이라는 게 없이. 그만이 곧 죽음이었죠.
권투 선수 체중 조절처럼 미리 살을 빼고 들어가는 건 쉬워요. 대본 순서대로 촬영하는 스케줄 속에서 하루하루 0.5kg 조금씩 덜어내야 하는 구조는, 몸이 아니라 정신이 너무 힘들어요. 육체는 오히려 동화되는 기쁨이 있죠.”
-어떻게 견뎌냈나요?
“인터넷 쇼핑을 많이 했어요(웃음). 주인공이 실제 쇼핑 중독자이기도 했는데, 죽어가는 데도 사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끝도 없이 사들이게 되더라고요. 나가서 햇빛 보는 것도 힘에 부치니까. 촬영 끝나고 호텔로 오면 방 앞에 늘 택배 상자가 쌓였었죠. 오죽하면 나중에 크랭크업하고 집에 가는데 트럭 2대를 불렀어요(웃음).”
-여배우 장진영 씨와 함께 한 첫 스릴러 영화 ‘소름'에서는 담배 피우다 기절한 적도 있지요?
“저는 담배를 안 피웠는데, 배역이 골초 택시 기사였어요. 신인 때였고, 한번 리허설 하면 17번을 실전처럼 내리 했어요. 실제 촬영도 10번 정도 테이크를 갔는데, 감독님이 겉담배 피는 걸 허용을 안 하셨어요. 20년째 골초로 살던 스태프도 옆에서 “나 같아도 그렇게 피면 기절하겠다"고(웃음). 윤종찬 감독님이(‘소름' ‘청연' 등을 만든 감독) 정말 지독했어요. 악마 같았죠(웃음).”
-이창동, 윤종찬 같은 분들이 정말 지독하죠. 배우들이 배역의 고통을 통과제의처럼 뚫고 나오길 바라는 방식이니까요.
“그런 부분이 저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배우를 힘들게 해도 어떻게든 정수를 뽑아내니까요.”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의 관계가…(웃음). 요즘 감독들은 나이스해요. 배우들에게 창작의 고통 분담을 안 시키죠(웃음). 영화가 이미 산업화했고, 배우들도 여러 작품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소름' 역할을 위해서 강동구에서 한 달 넘게 택시 운전사로 살았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저는 그런 식으로 배역으로 들어가는 그런 과정을 좋아해요. 밤부터 새벽까지 택시 기사를 하는 동안 너무 즐거웠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명 지휘자 강마에를 연기할 때는 어땠나요? 지휘봉으로 폼만 잡는 게 아니라 실제 지휘자가 되어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헝가리 무곡과 넬라판타지아의 악보를 다 외워서 연주자들을 리드했어요. 그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제가 반 박자를 앞서가야 오케스트라가 그걸 보고 따라와요. 지휘자가 지휘봉을 올리면 그걸 보고 연주가 시작되는 거죠. 그 많은 사람이 지휘봉 하나를 보고 있어요. 자기 악보와 지휘봉 하나만! 지휘자가 흔들리면 정확한 박자를 놓치고, 파트가 뒤섞이면서 개판이 되는 거죠.”
-정말 대단하군요!
“유수의 연주자들이 저의 리드를 따라온다는 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똥 덩어리’라는 말을 던질 때 기분이 어땠나요?
“저야 경멸의 눈초리도 그 말을 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측은하게, 때로는 더 세게 가기도 했어요. 어쨌든 ‘똥 덩어리'를 받아든 표정의 뉘앙스들이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신인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던져도 준비된 반응을 하고요, 베테랑들은 똥과 함께 호흡하니까 그 순간 상대의 당황스러운 눈썹 떨림까지 다 보이죠(웃음).”
-혹시 혼신을 다해 연기하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를 할 때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요. 배우를 그만둘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그 작품을 마지막으로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려고 했어요.”
-아마 열심히 했으면, 그 느낌이 안 났을지도 모르지요. ‘꽃보다 아름다워' 드라마에서 부잣집 아들 명민 씨가 실연에 빠져 있을 때, 엄마 역할 했던 김보연 씨 대사가 생각나네요. “밥 먹어라. 밥 먹으면 또 한두 시간 가잖니.” 그 풍경이 굉장히 외롭고 현대적으로 보였습니다.
“(웃음)참 아이러니해요. 그 드라마를 KBS 정연주 사장님이 보고 “이순신은 바로 김명민이다"하고 찍으셨대요. 어쨌든 저는 제일 열심히 하지 않았던 순간인데, 많은 분이 기억해주고, 또 결정적인 기회가 됐다는 것이요…”
-당시 KBS 임원의 안목도 참 놀랍네요. ‘꽃보다 아름다워'의 그 우울한 부르주아 사내한테서 ‘불멸의 이순신'의 영웅적 에너지를 봤다니… 만약 그 작품들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 뉴질랜드에서 의류 관련 사업하며 잘살고 있을지도 모르죠(웃음).”
-뭘 해도 ‘성실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예전에 대학 때 이태원에서 스키복 판매 아르바이트를 할 적에도 너무 열심히 ‘삐끼' 행위를 해서 매출을 확 올리고는, 유치장에도 갇혔다고 했지요.
“그런데 나중엔 경찰서장까지 스키복 가게의 단골로 만들었어요(웃음). 맡은 부분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쪽이에요. 살아남기 위한 강한 생존 본능 같은 거죠. 그런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뭐든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에 가도 잘하더라고요.”
-어떤 일을 해도 그 자리에 표가 나야 하는 사람이군요.
“네. 청년들한테도 그래요. 정말 거지 같더라고 최선을 다해 버티라고(웃음). 냉정한 사회에서 싸우지 않으면서 이길 수 있는 건 버티는 것 뿐이예요. 그런데 많이들 포기하더라고요.”
-신인 배우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연예계도 링에 오를 수 있는 선수들은 정해져 있잖아요. 하지만 어떻게든 링에 올라가도 버티는 게 정말 쉽지 않죠?
“얼마든지 들어와라. 하하하. 그런데 저는 버티다 버티다 떠나려고 했는데, 운이 좋았던 사례죠. 그리고 적절한 채찍질. 신인 때 무시를 많이 당했는데, 그래서 “어디 두고 보자"하는 오기가 생겼어요. 그때는 인성이 형편없는 PD가 많았거든요. 걸핏하면 개XX라 부르면서 말도 안 되는 모욕을 많이 당했어요.”
-어떻게 견뎠나요?
“내가 잘 돼서 스타가 되면, 당신 작품 질질 끌다가 출연 고사할 거다, 그런 생각 하면서요(웃음).”
-실행에 옮겼나요?
“두어 번 정도. 진짜로 최대한 오래 끌다가 고사했어요(웃음). 그때 막말하던 PD들 지금 다 시골에 가서 농사지으세요. 감각도 떨어진 데다 뒷거래도 많이 했고, 인심을 잃으니까 오래 못 가더라고요.”
-인생이 결국 공평하네요.
“공평해요. 가진 자리에서 오만했던 사람들은 거품 빠지면 그만큼 다 제 자리로 돌아가더라고요.”
-애쓰는 것에 비해 과한 평가와 명성을 얻는 배우가 혹 주변에 있나요?
“(정색하며)그거는 감히 말을 못해요. 제가 그 사람과 24시간 생활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현장에서는 풀어진 연기를 해도 다 제 나름의 준비를 해오니까요.”
-요즘 대세 배우인 유아인, 송중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나요?
“매력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그 외 인기는 있지만, 연륜은 조금 부족한 ‘잘 나가는' 청년 배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일단 저는 그래요. 바스트로 번갈아 잡히는 신이 있으면, 그 친구 감정을 위해서 제가 카메라에 안 잡혀도 죽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받쳐주는 연기를 해요. 그래야 그 친구가 자극을 받아서 감정이 올라오거든요. 신인들은 얼굴도 낯설고 화면 장악력도 없어서, 파트너가 애를 많이 써줘야 겨우 연기 좀 하는 것처럼 보여요.
가끔 어떤 어린 친구들은 모든 주변 사람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라요. 자기가 카메라에 안 나온다고 상대 역 바스트 신에 대응할 때 대충대충 하면 서로 죽는 길이에요. 잊지 말아야 할 건 연기는 앙상블이라는 거죠. 현장에서 그런 자아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다음부터는 그 배우랑은 안 하려고 해요.”
-참 클래식한 사람입니다. 타고난 목소리 덕분에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연설에 어울리는 그 목소리는 훈련된 건가요?
“목소리는 부모님께 물려받았지요. 교회에서 중창단을 오래 하기도 했고요. 변성기를 무리 없이 보내고 목을 잘 가다듬으면서 그렇게 됐어요. 목소리 덕분인지 ‘불멸의 이순신’을 하고는 공천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여당 야당 구분 없이 너무 많이 제안을 받다 보니 당시에 살짝 기로에 서기도 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지인들이 “나중에 안중근 역할 하면 진짜 정치해도 되겠다"고들 했죠(웃음).”
-그래서 목소리가 작은 나약한 인간보다 위대하거나 독창적인 인간, 저만치 앞서가는 강렬한 리더의 얼굴을 잘 표현합니다. 일면 영웅과 괴짜를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여요.
“어려서부터 애들 데리고 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골목대장 노릇을 하면서부터 새겨진 잠재된 리더십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가장 큰 영웅은 아무래도 이순신이지요?
“그렇죠. 역사적인 영웅인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일개 배우가 연기할 수 있나, 그런 내적 시달림이 촬영 내내 함께했죠. 104회까지 촬영을 다 마치고는 다시는 사극을 안 하겠다고 했는데…(웃음)”
-지속해서 역사적 위인을 연기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안중근 열사 역할은 꼭 하고 싶습니다. 아이한테 프라이드를 심어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아빠가 배우인데 안중근 역할 했다.' 이런 건 오래 남잖아요(웃음).”
-배역을 결정할 때 아이를 생각하는군요.
“이순신도 집사람이 “나중에 아이가 자랐을 때, ‘아빠가 한때 배우였는데, 최고의 이순신 역할을 했다.’ 이거 하나 간직하면 좋지 않을까?” 듣고 보니 그 말도 맞길래, 이순신만 하고 이민 가려고 했죠(웃음). 그때는 감사하는 마음보다, 마음을 완전히 비웠기 때문에 좀 궁금했어요. 쥐뿔도 없는 나한테 왜 이런 걸 시키나? 도대체 왜?”
-연기 본좌라는 타이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손사래를 치며)‘하얀 거탑' 할 때 나온 별명인데, 이제는 그만 쓸 때도 됐죠. 연기를 볼 때 아예 말문이 막히는 그런 연기가 ‘신의 경지'예요. ‘잘한다'하는 감탄사도 필요 없는. 진짜 잘하면 사람을 보면 그냥 한숨이 나와요. 노래도 그렇잖아요.”
-저는 최근에 ‘캐롤'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경험을 했어요.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의 연기가 압권이었어요. 태생적인 우아함이랄까요. 김명민 씨도 얽히고설킨 러브스토리 ‘클로저'같은 눅눅한 연애 영화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서양 배우들의 우아함 좋죠. 저도 그런 영화 하고 싶지만, 투자가 잘 안 될 거예요. 우리나라는 딱 투자가 되는 영화 공식이 있어요.”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는 투자가 잘 된 편인가요?
“그것도 공식에 딱 맞는 영화는 아니에요. 전 그래서 좋았어요. 자의적으로 “울어! 웃어!” 이런 강요가 없어서 좋았어요. 그런 영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전 왜 관객들이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울고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야 천만이 되죠.
“정답은 하나! 웃음 곱하기 눈물은 천만!”
-의도적으로 ‘예측된 숫자'를 피해가나요?
“결과물을 보고 가지 않으려고 해요. 성취감은 돈하고 바꿀 수 없어요. 백그라운드가 확실한 영화는 누가 봐도 안전하고 보장이 돼 있죠. 만약 그런 영화하고 신인 감독에 투자도 가까스로 된 영화가 있다고 쳐요. 그런데 그 신인 감독의 영화가 새롭고 손 볼 것도 많고, 배우의 역량에 따라 다르게 나올 법하고, 감독이 저를 몹시 원한다면(웃음), 저는 작은 영화에 모험을 걸어요.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들도 처음부터 거장은 아니었어요. 저와 하는 신인 감독들이 저를 발판으로 설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영화'는 안 한다는 거지요?
“그런 건 고사를 하게 돼요.”
-칸이나 할리우드에 가고 싶다는 꿈은 꾸지 않습니까?
“그것만큼은 제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웃음). 칸이나 할리우드로 입성하는 거장 감독들은 몇 안 되고 반대로 배우들은 많죠.”
-박찬욱, 봉준호를 비롯한 작가주의 감독들은 좀 더 ‘비어 있는' 도화지 같은 상태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배우로서 김명민에게 내재한 힘이 너무 세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멋쩍게 웃으며)그냥 안 맞는 거 같아요. 그분들이 좋게 봐줬으면 안 불렀을 리가 없어요. 좋다 좋다 해도 내가 볼 때 아니면 아니잖아요.”
-한계를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한참을 고민하다가)순간 순간 한계를 느껴요. 오늘 촬영하다가 내일 촬영분, 모레 촬영분을 보면 한계를 느껴요.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데, 이 사람 관점으로 봐야 하는데, 그 관점으로 안 보일 때. 제가 예전에 했던 것들에서 끌어와서 재사용하려고 할 때, 그때 한계가 느껴져요.
배우가 힘든 게 역할이 바뀔 때 톤이나 목소리는 바꿀 수 있어요. 그런데 가장 감추기 힘든 것은 웃음소리, 울부짖는 얼굴, 눈물, 절규, 이런 것들이죠. 소리도 다르게 질감도 다르게 해야 하는데, 매번 자기 과거를 생각하면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을 흘리면 비슷한 근육을 사용하고 눈물 온도도 똑같아요…(깊은 한숨)”
-송강호는 시대극이나 판타지를 해도 사투리를 씁니다. 나라는 개인의 습관과 타인의 몸이 좀 섞여도 되지 않을까요?
“내가 그렇게 안 해도 섞여 있어요. 완벽하게 나를 지울 순 없어요. 다만 마지막까지 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거죠. 로봇처럼 칩을 꽂아서 되는 것은 아니니까, 끝까지 가보는 거예요.”
-존경하는 한국 배우는 누굽니까?
“안성기 선배님. 옆에서 보면 진짜 저렇게 좋은 분을 우리가 이렇게밖에 대우를 못 하나 싶어서 답답해요. 또 한 분의 인간문화재급이 이순재 선생님. 나이가 핸디캡이 될 수 있는데, 동료 배우로 봐도 대단하지요. ‘베토벤 바이러스'할 때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시 맡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조재현 선배가 했던 사극 ‘정도전'은 안 봤어요. 워낙 잘 하셨을 테죠. 다만 제가 이번에 했던 연기의 아쉬움이 커서 다시 할 수 있다면 ‘정도전'을 꼭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혁명을 꿈꾸는 햄릿 같은 인간을 표현하고 싶은가요?
“네. 한편으로 또라이 기질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정도전은 이상과 명분이 강한 진짜 사내였어요.”
-언제 내가 ‘사나이’라고 느끼나요?
“남자 후배들이 “형님, 형님”하고 따를 때죠. 여자들은 저랑 좀 안 맞아요. 불편하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가장인가요?
“(쑥스러워하며)일과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가장입니다.”
-어떻게 장담할 수 있지요?
“일이 없이는 가정이 없고, 가정이 없이는 일이 없어요. 분명한 건 일을 못 하면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핑 돌아요. 일을 안 하면 저는 정말 시름시름 앓아요. 함께 놀러 가도 껍데기처럼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거든요. 한 달 이상 쉬면 그런 증상이 나오기 때문에, 가족들은 ‘아빠가 빨리 일터로 돌아가길' 바래요.”
-학창 시절 성극 무대에서 처음 맡은 배역이 예수였죠?
“예수님, 베드로, 가롯 유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나오는 역할은 다 했죠.”
-그때부터 배역에 사명감을 느꼈나요?
“신이 “너는 배우 해라”고 찍어서 태어난 것 같아요. 그런 게 아니라면 제가 이렇게 하나의 꿈을 향해 온 몸을 던진다는 게 이해가 안 되죠. 배우의 기원을 따져보면 제사장, 결국 무당이에요. 배워서 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자기가 배우로 태어난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죠. 평생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아도 이 사람이 말만 하면 재밌고, 주위에 사람이 모이고, 그러면 신기하다, 그러면서 그냥 일상을 사는 거죠. 배우는 자기가 90% 타고난 배우라는 운명을 알고, 거기에 10%의 노력을 더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10% 노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타고난 기질을 망칠 수도 있어요.”
-작가와 감독, 배우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었던 기억을 꼽아본다면요.
“(망설임 없이)‘하얀거탑’이죠. 안판석 감독님하고 깊게 교감을 했어요.”
-‘하얀 거탑'에서 천재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잘 때도 ‘실과 바늘'을 쥐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더군요. 연기 이외에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까?
“혼자서 북한산을 등반해요. 제 별명이 북한산 날 다람쥐예요. 일주일에 3일 정도, 시간이 있을 땐 무조건 등산을 합니다. 족두리봉부터 백운대까지 가서 다시 반대로 내려오면서 북한산을 반으로 쪼개버립니다(웃음). 9시간 등반을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죠.”
-배우로 산 지 얼마나 됩니까?
“방송국 데뷔가 1996년이니까, 꼭 20년이 됐네요.”
-그동안 도전 중독자였다고 자평하나요?
“제가 욕심이 좀 강해요. 대중에게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가고 싶어 해요. 대중 앞에서 퇴보하는 것은 못 참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이외수 선생이 ‘청춘불패’라는 에세이에서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사람,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제일 나쁜 놈이랍니다. 연기할 때도, 살아갈 때도 그런 ‘나뿐인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아이가 2004년 4월 5일에 태어났어요. ‘불멸의 이순신'을 할지 말지를 4월 4일까지 답을 주기로 했는데, 아내가 12시간 진통을 하는 바람에 까먹었어요. 병원에서 감독님의 전화를 받고, 그 순간 ‘이순신이 되겠다.' 결정했어요.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서 준 선물이죠.
저를 배우라는 원점으로 돌려놓은 ‘이순신'으로 KBS 연기대상 대상을 받을 때도 행복했어요. 고 최진실 선배님, ‘해신'의 최수종 선배님도 같이 후보에 있었는데, 대상 발표 직전, 스태디탬 카메라가 저를 향해 스윽 다가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언제 가장 자랑스러운가요?
“저는 자랑스러운 적은 없어요. 대신 프라이드는 있어요. “이 배역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 그리고 하고 난 후, “이 순간 나만큼 잘한 사람은 없을 거야.” 세뇌하죠. 남들에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 하는 말이에요. “김명민, 네가 진짜 잘한다"고. 그렇게 세뇌하지 않으면 연기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절박하군요.
“만족이 없어요. 탤런트 김영애 선생님도 현장에서 모니터를 잘 안 보세요. “어휴~ 난 화면을 못 봐. 너무 괴로워. 진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 딱 제 마음입니다.”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인가요?
“노력하는 배우, 그리고 자기 분수를 아는 배우.”